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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원주민여성 故아틀린을 기리며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10)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마야인 故카타리나 카릴로 트속을 추모하며
마야 키체족 직조 기술자이자 젊고 총명했던 나의 벗 故카타리나 카릴로 트속의 삶과 죽음을 기리며 글을 시작한다.
‘아틀린’이라고도 불리던 그녀의 부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은 지난 4월 26일 목요일 새벽 6시. 과테말라 익스타후아칸시(市) 치리혹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였다.
세계와 인류의 기원, 마야의 신화와 역사에 관한 성전 ‘포폴 부(Popol Vuh)’를 지은 민족인 과테말라의 마야 키체족은 500년 간 외세의 침략과 테러에 시달려왔다. 테러의 양상은 군부 정권의 압제에서부터 심각한 자원 약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마야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테러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거주 지역인 서부 고지대에서 주로 발발했던 과테말라 내전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내전이 지속된 30여 년 동안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은 공식적으로는 막을 내렸지만, 인구의 51%에 해당하는 원주민들은 여전히 군부의 탄압과 마약 카르텔이 장악한 정치권의 횡포에 고통 받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마야력(曆)에 대한 연구는 여러 고급 연구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위대하고 방대한 유산을 남긴 이들의 자손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극심한 가난과 폭력은 과테말라 시골 전역을 병들게 하고 있다. 과테말라 인구의 12%가 국제 빈곤선보다도 소득 수준이 낮다. 또한 과테말라는 서반구에서 여성학살이 가장 빈번한 나라 중 하나로, 2001년부터 집계된 미해결사건만 5천 건이 넘는다.
▲ 아틀린이 2009년 샌디에이고를 방문할 때 받았던 두 번째 미국 비자 © 레인보우 도
원주민 여성인 알타 아틀린의 죽음도 이러한 배경-극심한 가난과 하찮게 대우받는 원주민여성의 인권-과 무관하지 않다. 아틀린의 아버지가 고열 증세를 보이는 딸을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의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환자를 방치했던 것이다. 고열에 시달리던 그녀는 그날 밤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과테말라에 방문해 그녀의 미국 비자 발급을 도우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불과 작년 8월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올 여름에 미국에 방문할 계획이었다.
당시 나의 과테말라행의 주된 목적은 아틀린이 속한 ‘신새벽 여성위원회(New Dawn Women's Committee)'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2008년부터 위원회와 함께 시작했던 문화교류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를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는 그들이 손수 만든 상품이 중간업체를 거치지 않고 미국 시장에 곧바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2008년, 나는 평화봉사단 단원 한 명과 치리혹스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 닉 더 라 푸엔테와 함께 위원회 여성 두 명이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었다.
나는 위원회의 직조 기술자들을 미국에 있는 내 집으로 초청해, 여러 지역 축제에서 그들이 상품을 팔 수 있도록 관련 행사를 기획하는 방식으로 과테말라 직조 기술자들을 도왔다. 이렇게 생긴 과테말라 옷과 직물의 판매수익 중 일부를 지원받아 5년 간 내 연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위원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북바인딩(bookbinding) 워크숍과 바느질 교실도 개설했다. 강의는 나의 멕시코 예술가 친구가 맡았다.
과테말라는 대다수 원주민이 최하위 계층을 차지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위원회 회원인 엘라와 아틀린이 비자를 발급 받은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료나 부유한 메스티조 같은 최상위 계층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자가 거절된다.
▲ 과테말라 신새벽 여성위원회 회원들. 왼쪽 끝이 최연소 회원이었던 아틀린, 오른쪽 끝이 위원회 대변인 엘라. 두 여성은 2008년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 샌디에이고에 방문했다. © 레인보우 도
아틀린이 살던 곳은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수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외국 땅에 사는 낯선 이를 믿고 의지하는 데에도 겁이 없었다. 아틀린은 자신의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샌디에이고와 티후아나를 방문했다. 2012년 6월에는 그녀의 세 번째 미국 여행이 이루어졌을 터였다.
그녀를 우리 집으로 초청하고, 나 또한 그녀의 고향에 초청받았던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녀는 스페인어를 잘 하진 못했지만 나와 깊이 소통하고 텔레파시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우연히 그녀를 떠올린 지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꼭 연락이 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녀가 두 번째 미국 여행을 계획할 당시, 그녀는 미국에 혼자서 방문하기를 원했고 나에게 자신의 비자 발급을 도와주기를, 우리 집에서 머무르게 해주기를 부탁했다. 그 때 그녀는 한 달간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녀와 이민의 현실에 대해, 그녀의 재능과 비자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그리고 미국인과 남미 이민자 사이의 계급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중미 사람들이 멕시코를 건널 때 맞부딪히는 갱과 경찰의 끔찍한 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 것이 많았지만, 반대로 내가 얻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직조 기술에 대해, 원주민 여성들이 겪는 국가적인, 문화적인 장애물과 식민화의 한계를 자신이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일면 반항적이면서도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랑스러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을에서는 자신을 ‘미친 여자’ 혹은 ‘헤픈 여자’로 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마을에서 요구하는 기혼여성(대부분의 원주민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결혼한다)의 상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탐험도 여행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 친구나 위원회 회원의 남편이 아내의 생활을 제약하고, 아내의 활동을 지지하기는커녕 질투하고 때리기까지 하는 것을 줄곧 보아왔다고도 했다. 그녀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도 싫어했고 벗어나길 바랬다.
폭력적인 여성 혐오와 극심한 가난이라는 굴레에도 굴하지 않고, 두려움을 버리고 비자를 얻은 이 젊은 여성은 결국 마을 전체의 귀감이 되었다. 그녀가 묻히던 날, 그녀를 가까이하던 이들과 적대시하던 이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고인을 애도했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의 가족과 친척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부분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자 손실이었다.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주기를 살다가 떠났다고 믿는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고, 그녀의 가르침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아틀린은 내 인생의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이 되었다. 이제 그녀의 영혼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쉴 수 있도록, 그래서 그녀의 힘이 그녀가 생전에 알고 지내던 모두의 마음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그녀의 비행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녀의 지혜와 호기심과 용기를 떠올리면, 그녀의 재능을 배운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한 시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틀린 카타리나 카릴로 트속이 편히 잠들길 바라며.
▲ 왼쪽에서부터 아틀린의 여동생, 그녀의 사촌, 아틀린, 그녀의 남동생들, 조카들, 그녀의 어머니. 과테말라 치리혹스에서 만든 전통 키체족 복장을 입고 뒤에 서 있는 이가 필자 레인보우 도. © 레인보우 도
덧붙여, 마야 직조 기술자들의 미국 방문 사업을 믿고 지지하며 연대해준 신새벽 위원회 여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올 해 1월, 위원회에서 북바인딩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도와준 캐롤리나와 박은경에게도 특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레인보우 도)
[관련 자료 링크]
* 과테말라에 만연한 여성학살:
http://www.womensviewsonnews.org/2010/11/the-forgotten-98-femicide-in-guatemala
* 과테말라의 소수민족 및 원주민 현황
http://www.unhcr.org/refworld/country,,MRGI,,GTM,,49749d163c,0.html
* 폭력이 난무하는 멕시코-과테말라 국경 지역
http://www.cipamericas.org/archives/5339
[번역: 권이은정]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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