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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주민 여성들 새로운 역사쓰기
<일다>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9)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 이야기.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아프리카, 미대륙 침략의 역사와 지식의 파괴 

대학생 시절, 지극히 서구적인 방법론을 따르는 미국식 논문에 멕시코 원주민이던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가 내게는 가장 큰 고민이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선조들의 지식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작업은 끝없는 소용돌이의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자들이나 사원, 서적 및 예술적인 건축물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던 지식은 미대륙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전부 파괴되어 버렸다.
 
미대륙을 마음껏 파괴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15, 16세기에 공포된 로마 교황의 교서였다. 이 교서를 통해 교황은 미대륙 원주민은 영혼이 없는 이교도이므로 복음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교 교리를 주입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침략자들은 이교도에게는 영혼이 없으므로, 거주하는 영토에 대한 권리가 없으며 그들의 지식은 곧 악마의 지식이므로 파괴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교황 알렉산더 6세는 1452년과 1454년, 아프리카를 겨냥해 교서를 공포했고 1493년, 그 대상을 미대륙으로 확대했다.
 
우리는 그대들(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에게 이 문서를 통하여, 로마 교황의 이름으로, 이슬람교도 및 이교도 등 모든 그리스도의 적은 거주 지역을 불문하고 생포하여 복종시키고 그들의 왕국과 영토 등 모든 소유물을 찾아내어 포획한 뒤 (중략) 영원히 노예로 삼을 것을 허하노라.

아프리카, 남아시아, 미대륙에 걸쳐 엄청난 규모의 파괴가 이루어졌지만, 다행히도 지식은 그 나름의 길을 따라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우리 선조들로부터 배웠다.
 
미대륙 지식 말살 전쟁이 시작된 지 500년이나 지났음에도 주술사들은 여전히 선조들이 행하던 바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다. 수많은 도서관과 책이 불 타 사라졌지만, 지식의 전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 구전만큼은 파괴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지구와 인간의 치유를 돕는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

2004년, 전세계의 다양한 약재에 관심이 큰 미국 여성들이 뉴욕시 포에니시아에서 주최한 한 회의에서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위원회는 다양한 약재들을 다루는, 세계 각지에서 온 주술사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할머니들은 페요테(peyote) 선인장이나 ‘산토스니노스’(santos ninos, 성스러운 버섯)인 아야후아스카(ayahuasca)와 이보가(iboga)같은 전통 약재를 이용하여, 춤이나 허브, 영매 등의 방법을 통해 치유를 행하는 분들이다.

이 열세 분 할머니들의 공동목표는 어머니 지구와 세계인들의 치유를 돕는 것이다.
 
13인 위원회가 발족된 2004년부터 할머니들은 일 년에 한 번 각자의 고향에 모여, 식민주의와 세계화가 불러온 파괴 때문에 여전히 후유증을 앓고 있는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치유하는 의식에 올리고 있다.
 
그들은 지역사회의 땅과 그 땅을 지키는 이들, 또 아픈 이들을 위해 일주일간 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이 주술사 여성들은 그저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장인 앤 로센크랜스(Anne Rorencranz)의 말처럼 기도와 비전, 그리고 공통의 열망을 통해 뜻을 함께 한다.
 
할머니들은 멕시코, 티벳,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의식을 치렀고 달라이 라마를 위한 의식도 치른 바 있다. 올해는 네팔에서 여덟 번 째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 

▲  2004년 발족한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 구성원들   © 레인보우 도

마거릿 브핸 - 체넨 아라파호족(族), 미국
리타 픽타 블루멘스타인 - 유픽족, 미국
아마 봄보 - 타망족, 네팔
훌리에타 카시미로 - 마카텍족, 멕시코
플로르데마요 - 마얀족, 나카라과
마리아 앨리스 콤포스 프레이어 - 브라질
세링 돌마 얄통 - 티벳
비트리스 롱-비지터 홀리 댄스 - 오글라라 라코타족, 미국
리타 롱-비지터 홀리 댄스 - 오글라라 라코타족, 미국
에그니스 필그림 - 타켈마 실레츠족, 미국
모나 폴카 - 호피-하바수파이족, 미국
클라라 시노부 이우라족, 브라질
버나뎃 르베이놋 - 오민족, 가봉

열세 분 할머니가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창조적이면서도 특정 지역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주술사이자 통역사인 미국인 앤 로센크랜스가 할머니 열세 분을 한 자리에 모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영적인 세계와 우리의 물리적 육체 사이를 ‘통역’하고 ‘다리’를 놓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그녀는 말한다.
 
백인인 앤은 이보가 버섯과 페요테 선인장 같은 약재를 다루는 할머니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지만, 식민국가의 억압적 구조상 종종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원주민 주술사 여성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교육 수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특권층 여성과 비주류 여성이 창조적인 만남을 가져, 억압적 지배 구조를 무너뜨리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은 앞으로 일곱 세대에 걸쳐 인류를 이러한 억압의 고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할머니들은 교황의 교서가 공식적으로 철회될 수 있도록 바티칸과 소통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 교황 교서란 바티칸이 15, 16세기에 공포한 것으로, 복음 전도 및 미·아프리카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교서로 인해 양 대륙에 온갖 약탈과 살해, 강간, 노예제도가 판을 쳤던 것이다.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는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더 이상 유효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 원주민들의 지식과 삶의 방식을 모욕하는 이 교서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서신을 교황에게 보냈다. 2008년에는 직접 로마에 방문해 바티칸 앞에서 미 원주민의 춤을 추며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바티칸 당국 및 교황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은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들의 편지 역시, 과거 교서 철회를 요구했던 다른 서한들과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는 주류 가톨릭이 여전히 권력과 부를 얻는 데에만 치중할 뿐, 무고한 숱한 사람들의 삶과 지식이 파괴된 것은 책임을 회피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티칸에서는 어떠한 답신도 오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자신들을 억압해 온 지배 구조와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할머니들의 공로는 의미가 크다.
 
북 캘리포니아의 아라파호족 주술사 남성 루더포드와 여러 원주민 할머니들은 여성이 영적 의식을 주관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고대 사회에서는 나이 많은 여성들의 협의회와 남성들의 협의회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지역사회 전체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남성 지도자를 임명하는 것은 바로 여성 협의회의 몫이었다. 이러한 체계를 통해 양성은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역사회를 이끄는 데에도 양성 모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열세 분 할머니들의 왕성한 활동은 과거 영적 의식을 주관하던 여성들의 시대가 부활하려는 첫 징조일지도 모른다.  (레인보우 도)
 
[관련 자료 링크]

원주민 할머니 13인 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http://www.grandmotherscouncil.org
13인 위원회 첫 회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AvlrJskWAk&feature=relmfu
1493년 교황 교서 철회 운동 http://www.manataka.org/page155.html
 
[번역: 권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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