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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미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 이후 멕시코를 방문하다④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10년간 활동해 온 박남희님이 최근 멕시코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만난 여성노동자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왔습니다. 미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 이후 변화하는 멕시코 사회의 모습과, 그 속의 여성들의 활동을 5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아름답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관광지 오아하카(Oaxaca)
 
노동자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인 ‘실라’(Centro Investigacion Laboral y Asesoria Sindical)의 초청으로, 오아하카로 향했다. ‘노동조합과 교육활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나는 2006년 일어난 교사들의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듣게 되었다.
 
멕시코시티에서 7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오아하카로 향하는 길은 아름다웠다. 멕시코는 정말 넓고, 다양한 풍경을 가졌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바위산들도 있고, 울창한 산림도 있었다. 옥수수 밭이 한없이 펼쳐지고, 선인장이 자라고, 또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겨웠다.
 
오아하카에 가기 전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곳을 방문한 대부분 사람들이 평화롭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관광지로, 오아하카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2006년 교사노동조합이 시작한 시위를 시발점으로 ‘대중의회’(Popular Assembly)가 만들어졌고,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무고한 시민 26명이 사망했다. 오아하카 사람들이 비폭력으로 진행한 천막농성이 중앙 정부의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는 사실에 대해, 관광객들은 아는 이가 드물었다.
 
2006년 광장을 울린 교사들과 시민들의 함성
 

▲ 2006년 교사노동조합 집회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여성들의 시위 장면.

 
루시오는 48살의 영어선생님이다. 그녀는 21년을 교사로 일했고, 교사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 지는 11년이 된다고 한다. 루시오는 2006년 오아하카에서 일어난 교사들의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그녀는 새롭게 태어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2006년 5월, 교사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학생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할 것(시골에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오랜 시간 걸어서 오기 때문에 아침 간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대한 정부 예산을 확대할 것(학생들에게 책과 교육 재료를 제공할 것), 그리고 교사들이 노동자로서 노동법에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 5가지 요구안을 가지고 투쟁을 시작했다.
 
교사들은 소깔로(도시 중심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다. 이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하면서 그 동안 침묵 속에 가려졌던 지역 사안들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부패한 중앙 정부의 비리와, 많은 땅을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하면서 원주민들이 땅을 잃어버리게 된 것, 또한 이런 문제를 제기한 환경운동가가 실종된 사건 등.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루시오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말 놀랐다. 지역 주민들이 그 동안 참고 침묵하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줄 아무도 몰랐다. 또 교사들이 단지 자신의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학생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시민들이 인정하게 되면서, 너무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투쟁을 지원했다. ‘Section 22’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7만 명에서 7만 5천 명으로 늘었다.”
 
특히 시민들이 교사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함께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루시오는 눈물을 흘렸다.
 
“지역 주민들은 식사와 물, 커피, 빵, 휴지를 조달해주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특히 10월, 군인들이 몰고 온 탱크가 바리케이트를 부수려고 했을 때, 나이 든 여성들이 먼저 앞장서서 맨 몸으로 나가 탱크를 손으로 막았다. 나는 이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오아하카 원주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2006년 6월 14일 주정부가 투쟁하는 교사들을 연행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했지만, 오아하카 시민들이 우리를 막아주었다. 오아하카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오아하카에서 태어났지만, 15살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가 자랐고, 도시 사람이다. 그 때 이후로 오아하카가 나의 뿌리임을 평범한 일반사람들을 통해서 찾게 되었다.”
 
대중의회의 원칙 ‘전원이 합의할 때까지 논의한다’ 

 

▲ 'Section 22’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루시오.  

 
6월 14일 주 정부가 폭력적으로 교사를 연행하려고 하자, 오아하카 지역의 4백여 개 조직들이 대중의회(Oaxaca’s Popular Assembly를 구성했다.
 
루시오는 18살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11년 전에 이혼을 했고, 아버지의 집이 있는 오아하카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뛰어들게 된 2006년 오아하카 교사노동조합의 투쟁, 대중의회(Popular Assembly)를 결성한 경험이 자신을 이렇게 변화시킬 줄 몰랐다고 한다.
 
“대중의회는 참여자 전원이 동의하고 결정할 때까지 논의하고, 회의하고, 논쟁했다. 이 개념과 방식은 바로 오아하카 ‘원주민’들의 정신이다. 처음에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전원이 합의하기 위해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결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처음에 나는 정말 답답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긴 시간을 서로 논의하고 논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돈인가! 이것은 서구의 사고 방식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토론시간이 필요하다.”
 
멕시코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간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노동조합 간부에 대해 엄청난 회유(돈, 접대 심지어 마약까지)가 들어오고, 그 방식이 먹히지 않으면 협박을 한다고 한다. 지금도 실종이 되는 노조 간부들이 있다고 한다.
 
루시오 뿐 아니라, 많은 오아하카 시민들이 2006년 대중의회를 결성한 경험을 통해 변화하게 되었다.
 
“2006년 투쟁은 오아하카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새로운 젊은 세대가 사회운동의 주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오아하카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원주민 언어로 ‘GUELAGUETZA’라는 게 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우리들이 투쟁할 때 오아하카 사람들이 이 정신을 실천했다. 나는 내 뿌리를 찾았다.”
 
루시오와 대화를 마치고 소깔로 광장으로 나왔다. 이곳이 바로 당시 교사들이 천막농성을 하던 곳이다. 그녀는 “저기 3개의 거리까지 사람들과 함께 농성했다”면서, 거리에 벽보를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벽보의 내용은 2006년의 투쟁을 기억하는 ‘집회’를 알리는 거리 포스터였다.
 
오아하카에서 루시오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녀는 몹시 바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랴, 지역공동체 활동을 하랴, 또 여성위원회 활동까지 그녀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내가 함께하겠다”는 원주민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오아하카에서 만난 루시오는 나의 친구이다.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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