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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NAFTA이후 멕시코 여성노동자들과 만나다②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10년간 활동해 온 박남희님이 최근 멕시코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만난 여성노동자들 이야기를 일다www.ildaro.com에 전해왔습니다. 미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 이후 변화하는 멕시코 사회의 모습과, 그 속의 여성들의 활동을 5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수출자유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생활

▲ 태하칸 수출자유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만났다.  © 박남희

 
8월 19일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4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간 곳은 태하칸(Tehacan) 수출자유지역이다. 이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수출자유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여기선 유명 메이커들의 청바지를 생산한다.
 
그러나 외국자본인 청바지 회사들은 현재 상당 수가 멕시코보다 임금이 더 싼 니카라과, 혼드라 등 중앙아메리카 쪽으로 이동한 상태다. 2001년에 7만5천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일했던 이곳이 지금은 4만5천명으로 줄었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임금은 하루 65페소(한화 약 6천5백원) 기본금에, 나머지는 청바지를 생산한 수만큼 돈을 가져가는 ‘객공제’ 방식으로 받는다. 일감이 많을 때는 밤을 새우며 일하지만, 일감이 없을 때는 급여가 적어 생활해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여성들은 적게는 8년에서 많게는 20년 가까이 수출자유지역 공단에서 일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근무 조건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열악해지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쉽게 자신이 일하던 공장이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갑자기 일할 곳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란다.
 
나 역시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로, 서울 구로공단(지금의 디지털단지)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공단에는 큰 규모의 봉제공장들이 있었는데, 점차 주변에 작은 하청공장들이 생겨나 대체되더니, 이제는 그나마도 사라져 거의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존재한다. 공장은 싼 임금을 찾아서 중국으로, 아시아와 남미로, 그리고 개성공단으로 옮겨갔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한 모임에서 ‘축제’를 즐기다
 

▲ 노동자센터의 생산공동체 회원들이 선물한 가방과 공동체 로고를 담은 티셔츠. (왼쪽 앞줄이 필자)     © 박남희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임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20년 동안 공단에서 일하면서 세계적인 유명 메이커 청바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임금을 주지 않아, 그녀는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7월부터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참석한 모임은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그 동안 진행된 법적 절차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위해 투쟁기금 액수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나는 봉제노동자로, 또 활동가로 살아왔던 나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또한 1980년 말 산업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봉제, 신발, 전자 등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3천 명에서 5천 명까지 한 공장에서 일했던 일터가 어느 날 없어졌다. 그 이후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은 식당과 서비스직종 등에서 비정규직 신분으로, 하청과 용역회사 직원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 모임에선 멕시코 전통음식인 타코를 만들었다. 지역여성들까지 함께 참여해 즐겁게 저녁식사를 했다. 한끼의 식사가 동네축제가 되는 것을 보았다. 이들과 함께 저녁을 보내며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무 바쁜 일상으로 인해 간편한, 또는 배달음식으로 한끼를 때우고 일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우리는 비싼 음식과 고급 브랜드 의류, 그리고 좋은 집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선전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동네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축제는 사라져갔다. 전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함께 나누는 한끼 식사가 소중했다. 서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누었다. 먼 곳에서 온 나를 이곳 멕시코 여성들은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다.
 
태하칸 원주민의 딸 레이나 이야기
 

▲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원주민 여성 레이나.     ©박남희 

 
노동자센터인 “Colective Obreras Insumisas”를 조직한 레이나는 태하칸 지역 원주민의 딸로 이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수출자유지역공단 여성노동자가 되어 10년을 일했다. 그녀는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여성의식에도 눈을 떴다고 한다. 지금 레이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레이나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노동자센터는 2년 전에 결성됐다. 이곳에선 여성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설명하고, 노동조합의 역할이나 모성보호 등에 대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영화 상영도 한다.
 
2010년에 공단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현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포럼을 열면서, 이 단체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고 한다. 여러 연구단체와 지방정부에서도 함께 여성노동자 관련 정책을 의논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특히 지역 탁아소 설치 문제와 수출자유지역의 ‘협약서’를 만드는 일 등 중요한 이슈에 대해 지역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특히 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은 너무 힘들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단결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사측은 바로 공장을 폐쇄하고 옮겨버리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1970년대처럼 회사 측에서 이미 설립한 노동조합이 있어서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는 일도 과제라고 했다. 그래도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니까 단결해야 한다고, 레이나는 힘있게 말했다.
 
그녀는 봉제공장에서 10년을 일하면서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또 심장이 좋지 않아서 손톱과 발톱이 하얗게 부어 있었다. 그럼에도 레이나의 모습은 참 씩씩했다. 화통한 웃음과 목소리를 가진 그녀, 여성노동자들을 열심히 조직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립을 위한 생산공동체를 만드는 여성들
 
또 한편으로 노동자센터는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생산공동체를 만들어, 공장이 다른 나라로 옮겨간 이후에도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현재 12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 생산공동체는 재활용품 청바지를 이용해 가방을 만들어 주문판매를 하고 있다. 헌 청바지는 대학교나 다른 사회조직, 성당 등을 통해 얻고 있으며,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18년을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마리아는 “생산공동체는 쉽지 않고, 또 이미 실패한 사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공장이 폐쇄되고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봉제노동자들은, 우리 힘으로 희망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멕시코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일터와 어려운 삶의 조건을 이겨내고자 부지런히 스스로를 조직하고, 힘을 모으며, 새로운 대안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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