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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2)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이 상징하는 것
국경은 인접해있는 국가들이 그어놓은 선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품고 있는 불안을 상징한다. 그래서 국경은 본질적으로 국민이 아닌, 국가가 우선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에는 ‘보안 강화’가 되겠고, 멕시코의 경우엔 ‘마약밀매 통제’가 이에 해당한다.
▲ 티후아나 운하에 새로 건설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미국은 “정신분열증 국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분개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럼없이 테러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인격이 내제되어 있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다중인격장애 내지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격 분열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 정부 또한 국경을 넘는 것에 대해 ‘목숨을 거는 무모한 일’이라며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밀입국 금지 표시를 설치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미국 측에서는 잠재적 테러분자로 간주하는 멕시코 밀입국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멕시코 전체 소득 중에서 두 번째로 큰 수입원이다.
이렇게 노골적인 자기 모순이 더욱 심화되는 곳이 바로 국경 지역이다. 국경은 미국과 멕시코 양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 정부나 지방당국의 관할이 아닌 연방정부의 관할 지역이다. 멕시코와 자국 영토를 분리하고, 국토안보부의 지휘 하에 접경 지역의 안보를 강화할 목적으로 무려 40억 달러를 들여 작년에 완공한 3차 국경장벽을 건설한 것도 주정부가 아닌 미 연방정부의 결정이었다.
혹자는 국경 지역의 핵심 이슈는 국가들간의 알력과 군국주의이지, 여성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경 문제에는 당연히 여성 밀입국자와 여성 마약밀매상, 인신매매 피해자, 그리고 접경지역의 여성국민들도 관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화된 ‘군대’와 정치가들이 통제하는 필터로써의 국경의 역할만이 부각된 나머지, 여성문제는 언제나 국경과 관련한 논의에서 부차적인 취급을 당한다.
접경 지역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줄곧 침묵을 강요 받아온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발굴하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멕시코 국경을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 티후아나에서 열린 ‘슬럿워크’에 참여중인 여성들
최근 미-멕시코 국경지역인 티후아나에서 열린 ‘슬럿워크’(Slut Walk)에 참여한 남성과 여성, 아이들은 이러한 여성문제 중 일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슬럿워크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는 캐나다 토론토 경찰의 발언에 반발해 세계 전역에서 진행된 시위다. 시위대는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유발론’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법당국의 무지한 태도를 비판하고 반성을 촉구했다.
멕시코의 티후아나 시위대는 여성살해, 직장 내 성희롱,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한 여성을 감금하는 바하 캘리포니아 주의 중절금지법(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여성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옷차림을 핑계로 ‘헤픈 여자’ 낙인을 찍으며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멕시코 교회와 정부의 이중적인 도덕관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바로 국경 너머인 미국 샌디에고에서도 ‘슬럿워크’가 열렸다. 그러나 국경을 사이에 둔 양쪽 지역이 주목한 여성 이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가령 티후아나의 경우 임신중절수술과 마약거래는 불법이지만, 성매매는 합법이다. 반면 샌디에고에서는 임신중절수술과 의학 치료용 마리화나를 판매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성매매는 불법이다. 접경 양쪽 지역에서 서로 상충하는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첫 눈에 보기에도 멕시코라는 국가는 성매매를 원하는 이들을, 그리고 미국은 인공임신중절수술과 합법적 마리화나 매매를 원하는 이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게다가 ‘불법’이라고 해서 해당 범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규제의 대상이 아닐 뿐이다. 불법이라 해도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범죄나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관리들에 의해 음성적 범법 행위가 오히려 늘어난다.
국경 지역을 두부 자르듯 명확히 자를 수 없듯이, 국경을 사이에 둔 양국의 이슈에도 차이점이 있는가 하면 비슷한 맥락도 있다. 멕시코에서든 미국 샌디에고에서든,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멕시코), 호객행위를 했다는 이유로(샌디에고) 낙인 찍히고 처벌 당하는 쪽은 성매매 여성이지, 성 구매자가 아니다.
여성살해, 이민자의 눈물, 생태계 파괴…국경의 모습
▲ 십억 달러 들여 세운 국경 장벽. 바다에까지 이어진다.
국경 지역에서 여성살해(feminicide)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여성살해란,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성혐오 살인범죄이다. 피해자의 연령은 다양하며, 살해 방식이 매우 잔인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조사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과테말라의 경우 2000년 이후 여성살해로 희생당한 여성이 5천여 명에 이른다.)
접경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살해 문제는 ‘이주 문제’와 더불어, 이민자를 마약상과 동일시하는 경찰과 군 경비인력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경 안보’라는 안보에 대한 국가의 남성화된 측면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안보’(무기와 군대를 통해 국가를 지킨다)만을 최우선으로 삼게 되면, 군대가 가지고 있는 불균형한 속성상 가부장제 국가의 한계가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여성살해, 이민자 사망률, 그리고 생태계 파괴를 당연하게 여기는 현재의 미국-멕시코 풍조에서 그 한계가 잘 드러난다.
제3세계 사람들을 제1세계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세워진 장벽이, 조화롭고 아름다웠던 접경 지역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그레이그 레인오프(Graig Rainoff) 감독은 남미 전 대륙에서 모여든 370여 종의 새들의 보금자리인 티후아나 강어귀가 파괴되는 과정을 <벽>(The Wall)이라는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다. 장벽에서 침식된 흙먼지와 쓰레기들이 강어귀에 쌓이면서 생태계가 훼손되어가는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규제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를 다른데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일들을 돌아보며 진정으로 책임지는 데에 쓴다면 말이다. 이를테면 ‘이주’를 둘러싼 문제 등 인간이 자초한 여러 불행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미국과 멕시코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더 이상 정신분열을 앓지 않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레인보우 도) [번역: 권이은정]
* 미-멕시코 접경지역 및 ‘슬럿워크’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곳
http://notexasborderwall.blogspot.com/2011/07/how-much-do-border-walls-cost-just.html
http://www.commondreams.org/headline/2009/10/02-5
http://laprensa-sandiego.org/featured/the-wall-documenting-the-environmental-and-social-impact-at-the-border
http://www.slutwalktoronto.com/about/what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대안언론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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