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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 (1) 멕시칸-코리안 여성이 말하는 ‘국경’ 
 
<일다> www.ildaro.com 새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3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미국으로 이주한 ‘멕시칸-코리안’ 레인보우 도

*저자 소개: 레인보우 도(Rainbow Doe)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연구자이다. 그녀는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주한 한인 3세이다. 그녀의 조상인 이주 1세대는 1905년 한국에서 멕시코 유카탄으로 왔다가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현재 레인보우 도는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고 사이의 ‘국경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인류학과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예술 보호와 관련해 공부했고, 라틴아메리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그녀는 토착민의 관점에서 본 국경 문제와, 미국 샌디에고에 이주한 미스텍(Mixtec) 원주민들에 관해 폭넓은 연구를 하고 있다.
 
멕시코행 배를 탄 나의 한국인 증조할머니
 
나의 탯줄은 세계 여러 곳에서 온 할머니들과 이어져있다. 그 할머니들 중 한 분이 바로 나의 한국인 증조할머니 ‘마리아 카나 드 리’(Maria Canña De Rhi)이다.
 
멕시코 정부는 할머니의 멕시코 여권에 ‘일본인’으로 국적을 표시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한국 이름은 사라졌다. 20세기 초 구한말, 당시 10대였던 나의 증조할머니는 일본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조국에서 탈출했다. 할머니가 멕시코에 도착한 직후, 한국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이곳에 온 한국인들은 유카탄 주 헤네켄(애니깽) 농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마리아 카나와 여동생,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돌아갈 땅도, 집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마리아 카나가 자신의 첫번째 혼혈 손녀인 ‘엘리자베스 리 로자노’를 안고 있는 사진

1905년, 한국인들을 태운 배가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 주의 살리나 크루즈 항구에 도착했다. 그 배에는 약 1천3백 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주로 남자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이들은 네덜란드인 트레이더가 낸 광고를 보고 이민을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트레이더는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가 고용한 인물이었다.
 
배에 탄 한국인들은 계속되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배고픔으로부터 탈출한 것이었다. 신문에 난 광고에서는 멕시코 행을 멋진 ‘투자 이민’처럼 포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고대로 조국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멕시코에서 안전하게 살며 일을 해 돈을 모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그럴듯해 보이던 제안은 곧 사기임이 드러났다.
 
한국인 가족들은 배에서 내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유카탄 주의 프로그레소로 이송됐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소지품을 모두 빼앗겼고, 힘든 노동을 요하는 헤네켄 농장으로 배치됐다. 헤네켄은 용설란과의 커다란 식물로, 배를 부두에 묶을 때 쓰는 밧줄을 만드는 재료이다. 헤네켄 산업을 이끌고 있던 것은, 멕시코의 지배 계층에 해당하는 부유한 혼혈 멕시코인 ‘메스티조’들이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헤네켄 농장에 수입되어야 했던 이유는, 멕시코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인 멕시코 원주민 마야족이 자신들의 땅을 훔치고 자신들을 노예로 이용한, 유럽화된 멕시코 정부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역사에서 이 사건은 ‘계급 전쟁’(caste war)이라고 불린다. 때문에 이 지역에 새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강제 노동자였던 마야 유카테크족의 언어와 문화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멕시칸-코리안’ 나의 가족들
 
한국인들이 도착할 당시는 멕시코의 근대화 시기였고 황금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진보와 질서라는 유럽의 이상에 맞춰, 멕시코 토착 계층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며 그 낙후성을 은폐하려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계몽주의의 주류 철학인 실증주의가 고무된 시기였다. 그에 따라 멕시코의 토착 유산들은 공공연히 부정되고 거부당했다. 또한 유럽의 이상에 맞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나의 한국인 가족은 멕시코에서 살면서 수많은 편견과 맞부딪혀야 했다. 이것은 또한 과거 멕시코인 할머니들과 모든 ‘일하는 여성’들의 땅을 약탈하는 데에 쓰인 식민 토대가 되기도 했다. 나의 한국인 할머니와 뿌레페차와 프랑스인, 스페인인, 미스텍(멕시코의 아메리칸 인디언), 독일인, 올메크의 피를 이어받은 내 모든 할머니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재편’이라는 광대한 변화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고된 삶을 살았다.
 
나는 스스로 이주자가 되고, 특정 국가에 정착하지 않은 신분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내 할머니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멕시칸-코리안’이라는 내 뒤섞인 유산은 미국에서 자라면서 훨씬 더 많이 흔들렸다. 처음에 나는 가족들과 함께 바하 캘리포니아의 티후아나 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그곳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대다. 티후아나는 미국의 부유한 주, 캘리포니아로 가는 관문이었고, 경제적 요충지였다. 멕시코 유카탄의 한국인 가족들이 미국 바하 캘리포니아로 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와 어머니는 좀더 많은 기회를 갖기 위해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로 이주했다. 부모의 이혼을 통해 우리 가족은 각각 티후아나와 샌디에고에 떨어져 살게 되면서, 말 그대로 국경을 사이에 두고 흩어지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는 동남아시아인들처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처럼, 멕시코인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이주한다. 서로의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해도, 이주민들은 모두 ‘배제’와 ‘통합’의 문제를 경험한다.
 
한국-멕시코-미국,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다
 
티후아나와 샌디에고 지역에서 자라면서, 나에게 있어서 ‘국경’은 우리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이슈들 -전쟁과 폭력, 이민, 강제노동-을 이해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경은 내게 분리의 고통을 치유하고 창조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국경은 1세계와 3세계 사이의 분열과 불평등, 상호간의 문제를 생생히 드러내 준다. 이 두 세계에 사이에서의 긴장과 죽음, 폭력 때문에 어떤 이들은 국경을 “벌어진 환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경’에는 국가가 국가 스스로와 국민들을 어떻게 제한하는지, 그 내용과 방식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누가 ‘국경’과 분리의 개념을 만들었는지 물어보는 것은 통합을 위한 좋은 출발이다.
 
국경은 우리 내부의 경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실험실이다. 나는 가족 역사의 영향으로, 국경이 지역적 의미를 넘어 다른 나라의 국경 상황과 비교함으로써 역사와 인류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토착민과 여성, 국경에 대해 연구했다. 서구의 이론이 아닌 멕시코 토착 철학을 이용해 최근 <대지의 미스텍족 인식에 관한 재건>이라는 논문을 썼다. 논문에 필요한 자료는 미국 이주자인 미스텍족 치료 주술사와 함께 모은 것이다. 또, 미국의 3세계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그녀들은 경험과 이론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서로 된 작업결과물을 갖지 않는다.
 
2010년 가을, 나는 멕시코의 오아하카에서 한국의 대안매체인 <일다>의 기자를 만났다. ‘우연’이란 말은 이 놀라운 조우를 지나치게 축소한 표현일 것 같다. 그때의 만남 덕분에 이 칼럼이 탄생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나는,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멕시코에 버려진 내 한국인 할머니들과 한국 사이의 부러진 고리를 찾고 화해하는 방법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일다>의 기자가 내게 칼럼을 의뢰했을 때, 한국과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격스러웠다.
 
이 칼럼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한국으로까지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과 북아메리카 대륙 모두에 적용되는 지역적, 세계적 문제에 대한 교차점을 찾고 싶다. 지배국가들의 결정은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분리를 연결로, 독백을 대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칼럼을 우리가 빚지고 있는, 땅을 잃은 모든 할머니들에게 바친다. [번역: 손안지연]
 
* 멕시코 한국인들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곳
http://articles.latimes.com/2008/aug/16/local/me-koreanmex16
http://www.zum.de/whkmla/sp/0708/junbeom/junbeom1.html#present
http://fromstrangertokin.blogspot.com/2007/08/five-generations-on-mexicos-koreans.html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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