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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사람들

지구화의 대안, 원주민 여성에게 배우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7. 15. 19:41
<일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2011년 세계여성학대회 (상) 
 
[필자 소개: 박남희님은 초등학교 졸업 후 전자조립공장과 봉제공장에서 일했으며, 1981년 노동야학과 인연을 맺고서 줄곧 노동운동가로 살아왔습니다. 올해 1월, 지난 10년간 활동해 온 전국여성노동조합 활동을 마무리하고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양한 여성, 노동, 공동체그룹과 만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7월 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 '여는 마당'  ©박남희

 
7월 3일부터 5일 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세계여성학대회(Women's Worlds 2011)가 열렸다. 각국의 여성학자와 여성정책연구자, 여성활동가와 예술가들이 서로의 경험과 담론을 나누는 이 대회는, 1981년 이스라엘에서 처음 개최돼 3년마다 대륙을 돌아가며 열리고 있다. 30년째 맞이한 올해 대회에선 1천600여명이 참여해 ‘지구화’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연대를 모색했다.
 
지구화는 ‘자본’이 중심이 되어 세계를 새로운 제국주의 질서로 재편하고 있다. 지구화는 필요에 따라 소수의 여성들을 권력으로 포함시키지만,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을 배제하고 고립시켜 결과적으로 ‘빈곤의 여성화’를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구화’는 세계여성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으며 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2011년 세계여성학대회는 여성들의 연대의 힘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희생양인 캐나다 원주민여성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 가난과 분쟁 속에 있는 여성들
 
대회의 “여는 마당”에서부터 원주민여성의 환영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안에, 자본이 중심이 된 지구화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힘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메시지였다. 생명을 주는 하늘과 땅, 식량을 주는 식물과 동물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공기와 물과 불, 그리고 조상과 후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진 알레스카 여인 모나카의 소리 공연은 원주민 문화와 삶의 가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단전에서 우러나는 그녀의 소리는 동물소리 같기도 했고, 슬픔의 느낌, 분노의 느낌을 표현했으며, 여성의 힘과 에너지를 행사 참여자들 모두에게 전해주었다.
 

▲ 2011 세계여성학대회 '열린 토론' 모습   ©박남희

 
이번 대회의 가장 큰 논의의 장이었던 “열린 토론”에는 원주민과 이주민, 무슬림여성, 장애여성 등 다양한 위치와 경험을 가진 12명의 여성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캐나다의 원주민여성 모니카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백인사회와 달리 “어른을 공경하며, 지역의 문제를 공동체구성원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에 대한 강제 이주정책을 펴고 학교를 폐쇄하는 등 원주민 문화를 위협했으며, 그 속에서 여성들은 공동체문화를 지키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인도여성 데바키는 여성운동의 역사가 서구여성운동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아프리카 여성, 인도여성 등 3세계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왔지만, 그 내용을 세계여성운동사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이티에서 온 다니엘리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사회경제활동 참여에는 ‘유리천정’(여성의 경제참여에서 상위로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 정도가 아니라, “단단한 콘크리트 천장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 좌중을 공감의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종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안드레아는 자신이 속한 교회조직에서는 노래와 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와 같은 즐거움을 주는데, “왜 여성운동은 심각하고, 즐길 수 없는지” 질문했다. 그녀는 “혁명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라면서, “우리가 스스로 현재를 창조하며, 여성운동도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자본’이 중심이 되는 지구화를 이길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그림을 그리는 에디피스는 대회 기간 내내 ‘시와 음악과 함께하는 전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부모의 고향은 이라크인데, 그녀가 아주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나왔을 때, 에디피스는 아주 강한 성격의 소유자인 자신의 할머니의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봤다고 했다. 그녀의 그림은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전쟁, 그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원주민여성 582명 실종’ 정부에 책임촉구하며 가두행진
 

▲ 2011년 7월 5일, 세계여성학대회 참가자들이 실종된 원주민 여성 582명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며 연대 가두행진을 했다.    © 박남희

 
7월 5일, 세계여성학대회 참가자들은 캐나다에서 실종된 원주민여성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며 연대가두행진을 했다. 무려 582명의 원주민여성들이 실종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종된 여성들이 백인이 아니라 원주민이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의 역사는 제국주의 역사와 자본주의 역사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터전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문화를 빼앗기고 말을 빼앗긴 채, 주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화’에 대응하여 대안을 찾는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원주민여성들의 문화이다. 자연생태계 속에 인간도 한 부분이라는 것, ‘성장과 발전’을 신봉하는 자본주의의 ‘소비’ 문화와 개인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불어 나누는 삶이 곧 대안이기 때문이다.
 
열린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원주민여성들이 손수 만든 작은 북을 선물로 받았다. 이 북은 여성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치유와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원주민여성들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식물과 동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북을 만들었다고 했다.
 
2011년 세계여성학대회는 내가 뽑아 쓰는 휴지 한 장, 쉽게 마시는 생수 한 병,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옷과 음식과 신발.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만들었는지, 생산의 주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하게 했다. 우리 안의 공동체와 연대에 대해 생각해보며 어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찾아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계여성들의 연대 속에서 ‘자본’ 중심의 지구화를 이겨낼 희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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