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6) 벨 훅스「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 은 폭력의 시대에 평등과 자유의 꿈을 꾸는 여성들의 생각과 삶을 소개하는 페미니즘 책 여행입니다. [편집자 주] 언젠가 한 남성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성 평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진보한 것으로 보아야하지 않은가. 예전에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진 것 아니냐”고.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남성의 전유물이던 정치의 영역에 여성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까지도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우리 사회가 적어도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버틀러의 논의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생물학..
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5) 주디스 버틀러「젠더 트러블」 언젠가부터 가장 어려워하는 글쓰기 중에 하나가 바로 ‘자기소개서’가 되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실로 엄청난 질문에 때로는 500자로, 때로는 A4용지 5매 이상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쭉 나열해 놓고 종합하면 그것이 ‘나’가 될까. 그래서 어떤 곳은 친절하게도 몇 가지 범주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 항목들에 대한 답을 성실히 채워 가면 그가 ‘알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해 알 수 있겠다,고 말하듯이.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실제의 나와는 또 별개로 사실상 여러 범주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범주들 중에는 단 한 번도 질문을 제기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