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함께 살기’에 대한 사색 외국에 터를 잡은 동생이 올 연말까지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며 이 땅을 찾았다. 바다를 사이에 놓고 떨어져 있으니 만나기도 어렵고, 평소 전화도, 인터넷 메일이나 채팅도 잘 하지 않아 서로 연락도 잘 못하고 지내는 편이다. 그나마 한 해 한 번씩 한 달 정도 다니러 오니까, 그때 얼굴도 보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10대 시절에는 가족이라며 함께 어울려 지내던 동생들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나름의 생활을 꾸리고 있는 만큼,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좀더 각별한 친구처럼 생각할 따름이다. 핏줄로 맺어진 사이는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생각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결혼, 혈..
잠깐 동안의 결혼 시절, 시댁이 지방이라 명절 때면 그 고단한 귀성인파에 합류해야만 했었다. 결혼 전까지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피곤하게 시댁에 도착해서 앉아볼 틈 없이 온종일 음식 장만을 했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제기와 놋그릇들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차례상을 준비했지만 차례 지내는 곳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차례상을 물리면 또 그 그릇들을 닦기에 바빴다. 물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혼 후, 명절을 다시 생각해보며 그리고 명절은 내게 잊혀졌다. 이혼 후, 명절을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출가외인이었던 딸이 명절에 오고, 안 오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더욱이 딸 많은 부모님은 늘 명절 다음 날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