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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의 결혼 시절, 시댁이 지방이라 명절 때면 그 고단한 귀성인파에 합류해야만 했었다. 결혼 전까지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피곤하게 시댁에 도착해서 앉아볼 틈 없이 온종일 음식 장만을 했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제기와 놋그릇들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차례상을 준비했지만 차례 지내는 곳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차례상을 물리면 또 그 그릇들을 닦기에 바빴다. 물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혼 후, 명절을 다시 생각해보며

그리고 명절은 내게 잊혀졌다. 이혼 후, 명절을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출가외인이었던 딸이 명절에 오고, 안 오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더욱이 딸 많은 부모님은 늘 명절 다음 날이 되어서야 시댁에서 돌아온 딸들과 그 가족들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푹 젖어 있는 부모님에게서 그것에 대한 서운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리어 그렇게 라도 잊지 않고, 딸들도 부모님들을 챙기는 것이 기뻐 보였다.

그러나 나는 올해부터는 모든 명절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 뵙느냐 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명절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지난 번 부모님 댁을 들렀을 때, 이제 명절에는 들르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내 말에 어머니는,
“그래, 명절 전이나 다음날 오면 되지.” 하시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모두 준비한 음식을 그저 손님으로 와서 맛있게 먹다가 또 챙겨 주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집에 돌아갈 수 있는데, 굳이 명절 전후로 부모님을 찾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니, 엄마! 엄마 보러 언제든지 오겠지만, 추석이라는 이유로, 혹은 설이라는 이유로는 더 이상 안 온다고!”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신다.

“엄마, 명절이 여자들에게 뭐야? 남자들의 조상님들 모시는 제사에 남의 집 여자들이 뼈빠지게 음식 장만해서는 남자들은 절만 하고, 그렇게 일하는 엄마는 제사상에 한 번이라도 절해 봤어?”

“........”

“꼭 시댁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딸들이 제사에서 뭐라고? 오로지 남자들의 잔치인 명절을 여자들이 뭐하게 즐겁다면서 왔다 갔다 하겠어? 나는 이제 그런 명절은 챙기지 않기로 했어. 그러니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어.”

어머니는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혹시 당신의 며느리였다거나 아들이었어도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을 지는 의문이다.

딸이 명절을 거부할 때는, 사람들은 ‘여자가 뭐라고?’하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명절을 거부하기로 한 사람이 며느리였을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며느리는 아무 차질 없이 제사준비며, 음식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은 말할 것이다. ‘네 년은 조상도 없냐?’고.

이미 명절이라는 것이 한국국민의 절반을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남자들의 잔치’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성들은 자신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명절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을 만들자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즐기는 축제로서 설이나 추석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소위 전통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지속해 온, 남자들의 집에 모여 그 집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는 식의 명절 풍습을 우선 폐기한 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유교식 명절 풍습 자체가 이미 철저히 가부장적인데, 그 틀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명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나도 어느 지점에서부터 이 문제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한가위가 빨리 오길 꿈꿔본다. 윤하의 다시 짜는 세상/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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