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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문제에 대해 한발 깊이 이해하기
  
최근 장애여성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높아졌음을 실감할 때가 자주 있다. 장애여성들이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부단히 자신들의 경험과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간혹 ‘장애여성의 문제를 한마디로 설명해달라’는 요구에 부딪칠 때마다 곤혹스러워지곤 한다. 장애여성 안에는 유형별, 정도와 계층별로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므로, 장애여성이라는 공통점만 가지고 장애여성의 문제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논리가 궁핍함을 절감할 때마다, 여성운동에서도 주변화되어 있고 장애인운동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장애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아프게 확인하게 된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조건은, 중첩된 차별 낳아
 
그동안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을 두고 ‘이중의 차별’이라고들 표현하곤 했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애인으로 살기도 어려운데 여성이라는 조건까지 갖고 있으니 얼마나 어렵겠냐는 차원에서, ‘이중의 차별’ 논리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논리가 반영되어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에 관한 법률>에서 장애여성의 경우 고용장려금을 두 배로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여성 당사자의 감수성에 비춰보건대, 장애라는 조건과 여성이라는 조건을 같은 비중으로 보는 논리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단순히 합쳐져서 장애여성의 문제를 만드는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이중의 차별’ 논리로는 유형별, 정도별, 계층별로 장애여성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반영할 수가 없다. 게다가 장애문제와 여성문제 모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그러한 조건을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한 탓에 그 두 가지 조건이 단순하게 합쳐질 뿐만 아니라, 장애와 여성이라는 조건 그 자체가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복합적인 문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령,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장애여성은 장애남성에 비해 교육률이 현저히 낮다. 즉 장애여성 중졸 이상 학력이 32.8%로, 장애남성(63.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2008년 장애인실태조사)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되지 못한 학교환경의 문제는 남녀 공통적인데도, 장애여아의 경우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환경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도를 할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장애남성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이후 중첩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는 점이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고, 자립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평생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데…. 그렇다면 제도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장애여성이 장애남성과 비교했을 때 두 배의 어려움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별을 경험하리라고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서 “다중적 차별” 대상으로 명시
 
그러므로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은 ‘이중의 차별’보다는 ‘다중의 차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장애여성을 “다중적(multiple) 차별”의 대상으로 명시하였는데, 이는 당시 협약에 장애여성 조항을 별도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했던 한국 장애여성들의 합의사항이었고 전 세계장애인들이 동의해준 내용이었다.
 
“각국은 장애여성과 장애소녀가 다중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하고 동등한 향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6조 제1항)
 
“다중적(multiple) 차별”이라는 정의가 우리 장애여성의 경험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나, 적어도 이중의 차별보다는 장애여성 감수성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으로서 세계장애인들의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여성들 스스로의 목소리로 우리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할 수 있었고, 그것이 UN이라는 무대에서 공식화되었다는 점은 세계 장애여성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다중적 차별”을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장애여성의 언어로 풀어서 표현하자면, 아마도 “경험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학생으로서의 경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경험, 여자로서의 경험, 직장인으로서 경험을 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하는 분리와 배제가 우리가 겪는 차별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바라보는 노골적인 무시와 천대의 시선도 물론 문제지만, 더 슬픈 건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 그로 인해 부단히 부딪치고 깨지면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장애여성에겐 실패와 성공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 가운데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사회에서 지금 장애여성들은 이제까지 강요당해왔던 다중적인 차별을 깨치고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록 그 과정이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지라도, 아무도 보호와 사랑의 이름으로 묵인해왔던 처음의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부단히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을 통해 장애여성의 언어와 법률적, 학술적 언어가 일치하게 될 그날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는다. 

- 김효진님은 <오늘도 난, 외출한다>의 저자이며, 장애여성네트워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일다
[장애여성] 좀더 평등한 연애를 바라며 [ ] 대중매체엔 착한 장애여성만 있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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