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맘 때였던 것 같다. 긴 소매 옷으로 갈아입은 한참 뒤인데도, 그 날만은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넓은 길 대신, 늘 하던 대로 지름길인 좁은 논둑을 따라 걸을 때마다 풀섶 가장자리에 맺힌 이슬이 한없이 맨 발목을 쓸며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더 으스스 추웠던 것 같다. 그날 아침은 이렇게 추웠고, 무엇보다도 슬펐다. ‘운동회 날’인 것이다. 소풍 때면 그렇게 잘 오던 비가 왜 운동회 때는 절대로 오지 않는지….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운동회는 예방주사 맞는 것만큼 괴로웠던 행사였다. 달리기를 특별히 못하던 나는 출발을 알리는 화약 딱총소리도 무서웠지만, 사람들 시선으로 가득 찬 운동장에서 꼴찌, 아니면 그 다음으로 달리는 게 정말 싫었다. 도착점은 쉽게 나타나 주질 않았고, 아무리..
[정인진의 교육일기] 교실의 ‘규칙’에 대해 토론하는 아이들 위 글은 수년 전 가르쳤던 한 학생의 경험을 토대로 ‘규칙’에 대한 토론을 위해 만든 텍스트다. 지난 주, 아영, 태준, 한결, 혜진이 수업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공부한지 꼭 4개월이 되었을 뿐인데 자세하게 이유를 제시하는 실력도,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실력도, 모두 많이 늘었다. 그래서 2학년생이 하기에 조금 어렵지만,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보고 싶어 수업으로 골랐다. 텍스트를 읽고, 머리를 푸는 문제로 는 질문을 했다. 혜진이는 조용히 먹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면서, ‘조용히 먹지 않으면, 얘기를 하느라 밥이 잘 안 넘어가고 제한 시간 안에 먹지 못할 수 있어요. 또 너무 시끄러워서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귀를 따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