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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교육일기] 교실의 ‘규칙’에 대해 토론하는 아이들  

<관용이는 학교에서 급식을 합니다. 그러나 급식시간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엄마와 아빠, 동생과 그날 있었던 일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밥을 먹는데, 학교에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밥만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용이의 담임선생님은 식사 중에 조금이라도 떠드는 학생이 있으면, 청소당번들을 도와 청소를 하게 합니다. 청소를 하기 싫어서라도, 관용이는 조용히 밥만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수년 전 가르쳤던 한 학생의 경험을 토대로 ‘규칙’에 대한 토론을 위해 만든 텍스트다. 지난 주, 아영, 태준, 한결, 혜진이 수업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공부한지 꼭 4개월이 되었을 뿐인데 자세하게 이유를 제시하는 실력도,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실력도, 모두 많이 늘었다. 그래서 2학년생이 하기에 조금 어렵지만,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보고 싶어 수업으로 골랐다.
 
텍스트를 읽고, 머리를 푸는 문제로 <밥을 조용히 먹는 것과 친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을 했다.
 
혜진이는 조용히 먹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면서, ‘조용히 먹지 않으면, 얘기를 하느라 밥이 잘 안 넘어가고 제한 시간 안에 먹지 못할 수 있어요. 또 너무 시끄러워서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귀를 따갑게 만들어요.’ 라고 이유를 밝혔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자유롭게 먹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 중, 아영이는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 교과서(말하기, 듣기)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내 생각을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제법 거창한 이유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반에는 어떤 규칙이 있습니까?> 물었다. 그것들 중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골라, 이유를 쓰라고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결이는 ‘ 복도에서 뛰어다니지 않기, 우리 반 학급 책을 서랍에 두고 다니지 않기, 급식을 받을 때, 만약 급식을 쏟으면 혼난다’를 뽑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답했다. 그는 ‘급식을 쏟았을 때 “괜찮아”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야, 너 왜 급식 쏟아!”라고 큰 소리로 뻥뻥 소리치는 것이 정말 싫다’고 대답했다.
 
태준이는 ‘받아쓰기를 많이 틀리면 다른 반으로 가라고 한다. 교과서를 가져 오지 않으면 혼난다. 복도를 뛰어 다니면 혼난다’를 제시하고, 맨 처음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받아쓰기를 많이 틀려도 혼만 낼 것이지, 다른 반으로 가라고 하는 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의 선생님도 잘못했을 때, “책가방 싸!” 하며 다른 반으로 가라고 하신다고 태준이의 이야기에 힘을 보탰다.
 
“그래서 정말 다른 반으로 쫓겨난 애가 있었어?”
호기심 어린 내 질문에 아이들은 입을 모아,
“휴, 다행히 그런 아이는 아직 없었어요!”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의 이런 작전이 2학년 아이들에게는 아직 통하나 보다. 그들의 순진함이 귀여워 나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 다행이다!” 했지만, 그들은 선생님이 자기들을 아무 데도 보낼 수 없다는 걸 곧 알게 될 것이고, 선생님의 이런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음 문제로는 <앞의 관용이 담임선생님처럼, 선생님 마음대로 규칙을 정해 놓고 그것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좋은가>에 대해 물었다. 혜진이는 좋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어른이고 학급의 대장이시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려고 하신다. 그래서 선생님은 좋은 규칙을 정해 주시고 우리들은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이유를 들었다.
 
한결이는 나쁘다고 대답했다. ‘선생님 생각만으로 규칙을 정하면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규칙을 정하지 못해 속상하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한결이는 ‘1~40번까지 선생님의 책상에 가서 무엇을 규칙으로 하겠다고 말해서 정하면 좋겠다’고 나름대로 해결책도 제시했다. 
 
그렇다면, <규칙과 그에 따른 벌을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물었다. 아이들은 이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것들을 제법 잘 찾았다.

1) 아이들과 의논한다.
2) 벌은 아이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한다.
3) 지키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은 시키지 않는다.
4) 고통이 심~~~한 벌은 내리지 않는다.
5) 벌은 1년에 3번 이상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어른들이 흔하게 규칙으로 정하는 것들 중 규칙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나는 대로 찾아보는 것이 남았다. 이번 문제는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쓰게 하고 있다. 그런데 아영이는 네 개나 찾았다.

1) 필통을 안 가져왔다고 손을 들라고 하는 것은 나쁘다.
2) 받아쓰기를 못한다고 다른 반으로 가라는 건 나쁘다.
3) 교과서 안 가져올 때, 책상 위에서 손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4) 공부 잘 하라고 하면서 머리를 때리면, 머리가 더 나빠진다.
 
또 태준이는, ‘공부(수학)로 머리를 과하게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안 된다’를 뽑았다. 후자는 혜진이도 골랐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못 먹게 하는 것보다 억지로 먹도록 하는 것이 더 큰 벌인가 보다. 나라면 ‘오늘 저녁은 굶어라!’ 라는 벌을 받는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은데, 억지로 먹게 하는 게 더 괴롭다는 아이들의 의견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사고 없이 잘 보살피려면, 질서도 잘 지키게 해야겠고, 엄격하게 하는 것도 불가피하겠지만, 아이들을 조금만 더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규칙을 공부할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학교에서 정말 쓸데없는 규칙을 너무 많이 정해놓고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칙들 속에서 나는 권위주의를 읽는다. 
(※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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