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동상 앞에서 이이효재 “조선조 사회와 가족”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찾아가 할 말을 잃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십 년이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 더욱 싱싱하고 원기 왕성했다. 건물에도 ‘싱싱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하늘 아래 우뚝 선 그 위용은 기억보다 더 거칠 것 없었다. 이건 되레 당황스러울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는 몸처럼 건물도 그렇다고 여겨 적당히 빛바랜 호젓함을 상상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학교는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도 붉은 벽돌에 이끼 하나 끼지 않았으며 양 옆에 신축 건물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 서 있는 나는 작게 느껴졌다. 검은 재킷에 회색치마를 입은 여..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카트 낸시 M.헨리 “육체의 언어학”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 영화 (부지영 감독, 2014)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이든 여성 청소노동자가 자신이 부당 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굽힌 몸을 일으켜 관리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장면이었다. 일하면서 늘상 허리를 굽히고, 지시에 복종하느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눈을 내리깔아야 했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상대를 직시하는데, 그 눈에 담겨 있던 허망함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에 가슴이 울컥했다. 이 영화는 권력을 사이에 두고 지배와 복종이 어떤 몸짓과 목소리와 눈빛으로 관철되는지, 또한 생존권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싸울 때 무엇보다 그 몸짓과 목소리와 시선이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