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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와 산부인과의사회, 모자보건법 개정안 제안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산부인과 고발 조치가 발단이 된 ‘낙태 죄’ 논쟁 속에서, 최근 의사협회 측이 12주 이내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본인 동의’만으로 시행할 수 있게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12주라는 기준은 “의학적으로 시술이 안전한” 기간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5일 <모자보건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2차 토론회>를 개최하여, 법 개정안 내용을 소개했다.
 
인공임신중절수술, 여성의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인공임신중절 '합법화'를 외치는 시위대 (미국 워싱턴디씨. 2007) ©출처: National Abortion Federation (prochoice.org)  

 
개정안은 12주 내엔 본인의 동의만 있으면 인공임신중절시술을 할 수 있으며, 임산부가 미성년일 경우 부모 동의에 의해 시행할 수 있게 했다. 12주 이후엔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증가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나 “의학적 사유” 등에 한해 상담을 거치도록 했다.
 
출생 후 생존이 가능한 시기인 24주 이후는 원칙적으로 임신중절을 금지하지만,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두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여성의 몸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여성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여성의 출산권의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개정안의 방향을 설명했다.
 
또 이 개정안을 만드는데 있어서 형사정책연구원과 고려대, 연세대 의료법연구소 등이 제시한 내용과 외국의 예를 참고했으며, 미국의 인공임신중절수술법을 적용한 연방대법원 판례 기준을 검토했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피해 등 ‘제한 사유’ 입증 어려워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이 ‘12주부터 24주까지 산부인과 의사와의 상담만을 제안’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 “의사와의 상담은 의료적 상담에 제한하고, 다른 사유에 대해선 사회복지사 등 의사가 아닌 사람의 상담이 적합”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12주와 24주 사이에 임신중절시술을 허용하는 ‘제한적인 사유’를 두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개정안은 현행 모자보건법에서와 같이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로 관할 기관의 확인이 있는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된 경우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관계기관의 확인’을 받거나, ‘혈족 또는 인척간의 임신’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성년 임산부의 특수한 상황 고려할 필요
 

한편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임산부가 미성년자일 경우 부모의 동의를 요구한 조항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임신한 십대들이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두려워 시간을 지체하다 수술 시기를 놓치거나 불법시술소를 찾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2005년 고려대에서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수술 당시 임신 기간은 12주 미만이 96%로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0대 여성의 경우는 달랐다. 12주 이후에 시술을 한 비율이 12%에 달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임신 사실을 숨기다가 뒤늦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정 연구원은 이러한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 15세나 16세 미만 임산부와 16세 이상을 구분하여, 전자는 부모 동의를 구하되 후자는 판사의 결정으로 대신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에선 주에 따라 미성년 임산부의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해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 곳도 있으며, 부모 동의를 요구하는 곳에서도 미성년자가 부모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을 경우 부모의 동의 대신 판사의 판단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성년 임산부가 부모의 학대나 방임의 희생자일 경우, 미성년이나 의사가 관계 기관에 보고하면 판사에게 가지 않고서도 (부모 동의가) 면제” 될 수 있다.
 
모자보건법을 실제 ‘지킬 수 있는 법’으로
 
고려대의 전국인공임신중절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체 35만 건의 시술 중 단 4.4%만이 당시 모자보건법 상 ‘합법’이었다. 나머지 95.6% 불법시술 중에서 90%는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한 것이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인공임신중절을 법으로 금지하고 강제하는 것은 “미혼모의 급증, 원정 인공임신중절수술, 성폭력 피해자의 원치 않는 분만 등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만 부채질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하여 규정한 모자보건법을 “국민들이 지킬 수 있는 법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시술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전문가적 견해와 의료 윤리에 입각해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국외에서도 사회 경제적 사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기간에 따라 허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은 1948년 이후부터 사회 경제적인 이유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당사자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평생 고통 받을 당자사도 여성”이라고 말하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결정할지 말지는 국가도, 배우자도, 의사도 아닌 여성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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