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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로서 ‘나’의 위치와 책임을 함께 고민하다
[필자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님은 2008년 서비스유통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노총과 각 지역 시민단체와 연계해 백화점과 유통업체에 ‘의자 놓기’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작업복을 입은 채 퇴근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건강문제를 알리고,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으로 알려온 활동가로서, 의자 캠페인과 환경미화원 캠페인을 실시하며 그 과정에서 깨닫고 고민하게 된 내용을 진솔한 글로 담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의자는 놓였지만 여전히 앉지 못하는 노동자들
▲ 서서 일하는 서비스직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 위한 "의자 놓기 캠페인"이 2008년 전국적으로 전개됐다.
2008년 전국적으로 번진 의자 캠페인(“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앉을 권리를!”)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줬다. 노동부도 실태파악에 나섰고, 의자를 놓으라고 사업주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2009년 초까지 전국 대형할인점 계산대에는 대부분 의자가 놓였다. 캠페인을 시작할 당시 ‘의자가 놓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10년 오늘, 여전히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다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있다. 의자는 놓여졌지만 점장들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마트가 아닌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직원들이 모두 서서 일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곳에 의자가 놓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의자캠페인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현실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하였을지 모르나, 실제 현실을 그다지 바꿔놓지는 못한 듯하다.
의자캠페인을 시작할 때 이러한 한계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자’를 말함으로써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또 당사자들에게는 본인들이 가진 ‘권리’를 알게 하고자 했다. 캠페인을 통해 여기까지는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의자에 앉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결국 노동자들이 선택할 문제였고,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점장이 눈치를 주더라도 ‘나는 앉아야겠다’며 용기를 내는 이들이 나와줘야 하고, ‘우리 매장에는 왜 의자가 없냐’며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 개개인에게 이런 용기를 기대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만약 대형마트 한 곳에서 계산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의자를 놓게 만들었더라면, 이 사례는 주변의 다른 마트로 확산되면서 ‘실제로 앉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도록 이끌었을지 모른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조직되면서 본인들의 앉을 권리를 위한 싸움을 벌여나갔다면, 일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조직되어 있지 못한 개개인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의자 캠페인은 ‘주위의 따뜻한 관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노동자의 조직화가 답”이라는 뻔한 결론을 내리고서, 필자는 의자캠페인이 거둔 소기의 성과에 대해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원치 않는 서비스가 ‘끼워팔기’ 되고 있는 현실
개인적으론 동네 마트에서 계산할 때마다 ‘의자에 앉으실 수 있느냐’, ‘의자캠페인을 아느냐’, ‘당신의 권리니까 힘들 때는 잠깐 앉아서 다리를 편하게 하시라’ 등등 여러 얘기를 나누곤 했다. 몇 달이 지나자 노동자들과 얼굴이 익어 서로 안부도 묻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로 의자에 앉아 계신 노동자를 보면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우리 동네 딱 한 곳의 마트에서밖에 맛볼 수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의자를 버젓이 뒤에 놓고도 앉지 못하는 마트 노동자를 보게 되거나, 편의점에서 의자 없이 서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보면서 불쾌함은 점점 커져 갔다. 전에도 어디에선가 느꼈던 불쾌감인지라 정체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고객으로서, 원치 않는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젠가 한 패밀리레스토랑에 들렀다가 거기서 무릎을 꿇고 서빙하는 모습을 본 후, 과도한 서비스에 불쾌하여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게 된 일이 있다. 다행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패밀리레스토랑이 더 많았으며, 대체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었던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서 일하는 서비스’를 불편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객들이 그런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지 않다면?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어딜 가든 내가 원치 않는 서비스들이 ‘끼워팔기’ 되고 있다는 것.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도 서서 일하는 서비스를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공정무역커피가 있듯 공정서비스 편의점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려나?’ 고객으로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지냈다.
작업복 입은 채 퇴근하는 환경미화원의 근무환경
© 민주노총이 진행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 선전물
그러던 중, 의자캠페인의 후속 사업으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환경미화원의 노동실태를 조사했고, 2010년 들어서면서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환경미화원 캠페인은 ‘고객’인 나를 더욱 분명히 인식시켜주었고,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청소 업무는 지자체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에 직영으로 관리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지자체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며, 청소서비스의 질 개선 등을 빌미로 지자체의 청소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추진되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청소 업무의 민간 위탁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그 결과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들의 산업재해율은 더 증가했고, 임금은 낮아졌으며, 복지는 후퇴했다. 실태조사 결과, 심지어 일을 마치고 몸을 씻을 수도 없는 조건에서 근무하는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지역주민’으로서 나는 지자체의 청소업무 민간 위탁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낸 세금을 아끼고, 나를 위해 청소서비스의 질을 개선해 준다는 이유를 들어 환경미화원을 민간 위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경미화원의 월급을 깎고, 씻을 시설을 없애고, 작업복을 덜 지급함으로써 청소비용을 절감한 것이라면, 지역주민으로서 나는 환경미화원의 노동을 착취하는 공범이 되는 셈이다. 이번에야 말로 ‘원치 않는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를 행사하겠노라 마음 먹었다.
환경미화원의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국회에서 발표하자, 언론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의자캠페인’과 같이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환경미화원들을 조합원으로 둔 민주연합노조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역별 캠페인을 전개하고 민간 위탁의 문제를 알려내기 시작했다.
생활인으로 소비자로 지역주민으로서 ‘역할 찾기’
© 민주노총이 진행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 선전물 중에서
그리고 이제 ‘지역주민’으로서 내 역할을 할 때라고 판단했다. 송파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인 시위를 할 계획이었는데, 트위터를 통해 ‘송파촛불’ 활동을 하는 친구를 알게 되어 의기투합했다. 지역 시민단체들에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의 실태를 알리고, 송파구에서 ‘환경미화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송파구청 측에 “나는 민간위탁 청소서비스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길이 열린 것이다.
5월 한 달 동안 송파구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환경미화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요구안도 만들어졌다. ‘송파촛불’과 ‘송파시민연대’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지역주민이 ‘원치 않는 청소서비스’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6.2 지방선거 전에 송파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청소업무 민간 위탁에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지방선거에서 환경미화원 문제에 관심을 가장 크게 보여준 구청장 후보에게 망설임 없이 표를 주었다. 그는 낙선하였지만, 내 표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지금, 송파시민연대에서는 인근 강남과 강동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환경미화원의 권리를 위해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연대기구를 제안했다. 그밖에도 다른 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도 이 운동에 동참할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게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서비스노동자나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문제를 조사하고 알려내는 연구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소비자로서 지역주민으로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당한 일들에 맞설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생활 속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이 나를 핑계로 하여 일어나고 있다. 다른 선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의자캠페인을 하면서 만들어진 나의 불편함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김신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련 기사 보기]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서비스직 여성 건강 |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자긍심 찾기
[필자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님은 2008년 서비스유통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노총과 각 지역 시민단체와 연계해 백화점과 유통업체에 ‘의자 놓기’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작업복을 입은 채 퇴근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건강문제를 알리고,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으로 알려온 활동가로서, 의자 캠페인과 환경미화원 캠페인을 실시하며 그 과정에서 깨닫고 고민하게 된 내용을 진솔한 글로 담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의자는 놓였지만 여전히 앉지 못하는 노동자들
▲ 서서 일하는 서비스직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 위한 "의자 놓기 캠페인"이 2008년 전국적으로 전개됐다.
2008년 전국적으로 번진 의자 캠페인(“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앉을 권리를!”)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줬다. 노동부도 실태파악에 나섰고, 의자를 놓으라고 사업주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2009년 초까지 전국 대형할인점 계산대에는 대부분 의자가 놓였다. 캠페인을 시작할 당시 ‘의자가 놓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10년 오늘, 여전히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다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있다. 의자는 놓여졌지만 점장들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마트가 아닌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직원들이 모두 서서 일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곳에 의자가 놓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의자캠페인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현실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하였을지 모르나, 실제 현실을 그다지 바꿔놓지는 못한 듯하다.
의자캠페인을 시작할 때 이러한 한계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자’를 말함으로써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또 당사자들에게는 본인들이 가진 ‘권리’를 알게 하고자 했다. 캠페인을 통해 여기까지는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의자에 앉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결국 노동자들이 선택할 문제였고,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점장이 눈치를 주더라도 ‘나는 앉아야겠다’며 용기를 내는 이들이 나와줘야 하고, ‘우리 매장에는 왜 의자가 없냐’며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 개개인에게 이런 용기를 기대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만약 대형마트 한 곳에서 계산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의자를 놓게 만들었더라면, 이 사례는 주변의 다른 마트로 확산되면서 ‘실제로 앉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도록 이끌었을지 모른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조직되면서 본인들의 앉을 권리를 위한 싸움을 벌여나갔다면, 일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조직되어 있지 못한 개개인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의자 캠페인은 ‘주위의 따뜻한 관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노동자의 조직화가 답”이라는 뻔한 결론을 내리고서, 필자는 의자캠페인이 거둔 소기의 성과에 대해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원치 않는 서비스가 ‘끼워팔기’ 되고 있는 현실
개인적으론 동네 마트에서 계산할 때마다 ‘의자에 앉으실 수 있느냐’, ‘의자캠페인을 아느냐’, ‘당신의 권리니까 힘들 때는 잠깐 앉아서 다리를 편하게 하시라’ 등등 여러 얘기를 나누곤 했다. 몇 달이 지나자 노동자들과 얼굴이 익어 서로 안부도 묻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로 의자에 앉아 계신 노동자를 보면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우리 동네 딱 한 곳의 마트에서밖에 맛볼 수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의자를 버젓이 뒤에 놓고도 앉지 못하는 마트 노동자를 보게 되거나, 편의점에서 의자 없이 서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보면서 불쾌함은 점점 커져 갔다. 전에도 어디에선가 느꼈던 불쾌감인지라 정체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고객으로서, 원치 않는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젠가 한 패밀리레스토랑에 들렀다가 거기서 무릎을 꿇고 서빙하는 모습을 본 후, 과도한 서비스에 불쾌하여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게 된 일이 있다. 다행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패밀리레스토랑이 더 많았으며, 대체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었던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서 일하는 서비스’를 불편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객들이 그런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지 않다면?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어딜 가든 내가 원치 않는 서비스들이 ‘끼워팔기’ 되고 있다는 것.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도 서서 일하는 서비스를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공정무역커피가 있듯 공정서비스 편의점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려나?’ 고객으로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지냈다.
작업복 입은 채 퇴근하는 환경미화원의 근무환경
© 민주노총이 진행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 선전물
그러던 중, 의자캠페인의 후속 사업으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환경미화원의 노동실태를 조사했고, 2010년 들어서면서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환경미화원 캠페인은 ‘고객’인 나를 더욱 분명히 인식시켜주었고,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청소 업무는 지자체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에 직영으로 관리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지자체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며, 청소서비스의 질 개선 등을 빌미로 지자체의 청소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추진되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청소 업무의 민간 위탁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그 결과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들의 산업재해율은 더 증가했고, 임금은 낮아졌으며, 복지는 후퇴했다. 실태조사 결과, 심지어 일을 마치고 몸을 씻을 수도 없는 조건에서 근무하는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지역주민’으로서 나는 지자체의 청소업무 민간 위탁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낸 세금을 아끼고, 나를 위해 청소서비스의 질을 개선해 준다는 이유를 들어 환경미화원을 민간 위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경미화원의 월급을 깎고, 씻을 시설을 없애고, 작업복을 덜 지급함으로써 청소비용을 절감한 것이라면, 지역주민으로서 나는 환경미화원의 노동을 착취하는 공범이 되는 셈이다. 이번에야 말로 ‘원치 않는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를 행사하겠노라 마음 먹었다.
환경미화원의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국회에서 발표하자, 언론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의자캠페인’과 같이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환경미화원들을 조합원으로 둔 민주연합노조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역별 캠페인을 전개하고 민간 위탁의 문제를 알려내기 시작했다.
생활인으로 소비자로 지역주민으로서 ‘역할 찾기’
© 민주노총이 진행한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 선전물 중에서
그리고 이제 ‘지역주민’으로서 내 역할을 할 때라고 판단했다. 송파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인 시위를 할 계획이었는데, 트위터를 통해 ‘송파촛불’ 활동을 하는 친구를 알게 되어 의기투합했다. 지역 시민단체들에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의 실태를 알리고, 송파구에서 ‘환경미화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송파구청 측에 “나는 민간위탁 청소서비스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길이 열린 것이다.
5월 한 달 동안 송파구 민간 위탁 환경미화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환경미화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요구안도 만들어졌다. ‘송파촛불’과 ‘송파시민연대’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지역주민이 ‘원치 않는 청소서비스’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6.2 지방선거 전에 송파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청소업무 민간 위탁에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지방선거에서 환경미화원 문제에 관심을 가장 크게 보여준 구청장 후보에게 망설임 없이 표를 주었다. 그는 낙선하였지만, 내 표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지금, 송파시민연대에서는 인근 강남과 강동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환경미화원의 권리를 위해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연대기구를 제안했다. 그밖에도 다른 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도 이 운동에 동참할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게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서비스노동자나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문제를 조사하고 알려내는 연구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소비자로서 지역주민으로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당한 일들에 맞설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생활 속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이 나를 핑계로 하여 일어나고 있다. 다른 선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의자캠페인을 하면서 만들어진 나의 불편함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김신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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