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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못한 ‘전시 성폭력’문제, 일본 시민사회의 과제는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인도(人道)에 반하는 강간 및 성노예 제도’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왕(日王) 히로히토와 일본국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2001년에서는 그 최종 판결로 ‘성노예 제도’에 대한 심판과 일본이 가해국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10년, 그간 일본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시민사회는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지난 달 27일, 일본의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여성∙전쟁∙인권학회’ 주최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 10년을 맞이하며: 헤이그 판결 실현을 위한 과제와 전망> 심포지엄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과서 “일본군위안부” 삭제, 피해자들 소송 모두 ‘패소’
 
▲ wam 박물관 입구 사진  © 일다 - 윤정은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비롯해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가 꾸준히 채택되었다. 이에 힘입어 일본 안에서도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의견서 채택 및 법률안 제출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삭제했다. 일본 내에서 열린 10건의 관련 재판도 모두 기각됐다.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에서 일하고 있는 와타나베 미나(渡辺美奈)씨는 이런 일본 상황 속에서 “어른들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문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동과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 대한 역사교육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생색내기로 자주 내세우는 ‘국민기금’(국가의 사실 인정과 사죄 없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피해자 보상)도 “정부가 지출했다는 48억 엔 중 11억3천500만 엔만 피해자에게 전달되었다”며, “사라진 36억 6500만 엔의 사용처”를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법학자 마츠모토 카츠미(松本克美)씨는, 지난 10년간 최고판결까지 갔던 “일본군위안부” 및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소송 10건이 모두 패소된 사실과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원고측에 대한 청구 기각의 법적 근거가 “법의 정의와 공평성을 심각하게 해친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판인가”라고 비판했다.
 
당시 재판부는 “전쟁 이전(戰前)에는 국가의 권리작용에 의해 개인에게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을 질 근거조문이 없었다(국가무답책의 원리)”,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불법행위에 입각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었다(시효∙제척기간)” 등의 이유로 소송을 기각시켰다.
 
다수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 어떻게 알릴 것인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이 열리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났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그리고 전시 성폭력 문제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안팎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며 2009년 8월 정권 교체에 성공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정권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기대한 일본시민사회에 짧은 기간에 벌써 많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주요 공약이었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일본 시민사회는 6월 취임한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을 상대로 운동을 전개하려고 준비 중이다. 올해 2월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2010”이 발족됐다. 전국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지역에 맞는 활동과 전국 단위의 활동을 병행하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각 선거구의 국회의원에 “일본군위안부” 피해 실태를 알리고, 지방의회에서 관련 의견서 및 결의를 채택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역사학자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씨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향후 “공문서와 전기(戰記)∙회상록 등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실증적 조사”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전시 성폭력 문제를 뒷받침하는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억과 증언, 발화’ 못지않게 계속되어야 할 것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실조사”이며, “가해자의 논리와 사건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하야시씨는 특히 젠더, 민족, 계급 등 복합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다각적 접근과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의 시민 네트워크를 넓히고, 한국이나 대만 등 피해국과 연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wam’의 와타나베 씨는 인터넷에서 왜곡된 역사에 관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웹 문서 작성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우려에서다. “일본의 경우 우 편향적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어 이를 바로잡는 작업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호흡을 가다듬고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과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데에 공감했다. (서윤아)
 
[관련 기사] ‘일본군위안부’ 결의는 보통사람들의 힘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日내부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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