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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예’가 된 비정규 교수들
“이게 뭔지 아시죠? 갖고 싶으신가요?”
신부가 꺼내 든 것은 만 원권 지폐다.
“이 돈이 땅에 떨어져도 갖고 싶으신가요? 네, 저는 주울 겁니다. 왜 그럴까요?”
미사 강독 시간에 등장한 지폐로 인해 사람들이 낮게 웅성거린다. 미사 집전을 맡은 이상윤 신부는 말을 잇는다.
“이게 돈이니까요. 이 종이 한 장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돈 한 장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더 소중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배웠습니다.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다. 어떤 가치보다 존중받고 지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배움에 역행하는 일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가 사람보다 돈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며 그는 45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람의 가치를 배우는 ‘학교’에 몸담았던 이다. 유서에는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자로서 인생을 살려고 했던 결과가 이 지경으로 추락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날 미사는 고 서정민 박사를 추모하고 시간강사 국회 앞 농성 1000일을 기념하는 미사였다. 조선대 서정민 강사는 5월 25일 밤, 자택에서 연탄불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
언론은 그의 죽음을 두고 최근 교수임용 탈락을 비관하여 벌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유서에는 금품을 요구하는 교수임용의 비리와 논문 대필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B교수님을 처벌해 주세요. B교수와 쓴 모든 논문(대략 54권)은 제가 쓴 논문으로 이름만 들어갔습니다. (중략) 교수 한 마리가 1억5000만, 3억 원이라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 대략 2년 전 전남의 모 대학 '6000만 원', 두 달 전 경기도 모 대학 '1억 원'이더군요. 썩었습니다. 수사 의뢰합니다.’
1998년 이후 8명의 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시간강사의 현실을 빗댄 농담 하나가 있다.
“교수님, 연구실이 어디세요?”
학생이 묻자, 시간강사가 대답한다.
“서울 나 9448”
강사가 말한 건 자신의 차번호였다. 연구공간도, 휴게공간도 없이 강의하는 대학을 떠돌아다니는 보따리장사 신세. 2006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학에서 시간강사에게 배정한 공동연구실은 평균 136명 당 1개, 휴게실은 69명 당 1개라고 한다.
시간강사라 불리는 ‘비정규교수’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그대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해고의 용이함을 갖추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시간강사의 시간당 강의료는 최저 1.7만원, 최고 5만원이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시간을 주 4.2시간이라 밝혔으니 이는 평균 연봉 400만~500만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강사료만이 아니다. 서정민 박사는 유서를 통해 정교수-비정규 교수의 종속관계를 고발했다. 교수임용에 있어 정교수의 권한이 막강하기에 시간강사의 입장에서는 교수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교수사회의 강고한 카르텔은 시간강사 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을 막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시간강사는 전임교수의 부당한 대우와 비리를 눈 감을 수밖에 없다. 서정민 박사의 유서에 적힌 ‘교수와 제자=종속관계=교수=개’라는 말을 그저 과장이라며 지나칠 수 없는 현실이다.
“돈으로 가치를 산 사람이 진정한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유서에 따르면 서정민 박사가 10년 동안 쓴 논문은 55편에 다다른다. 1년에 무려 5편이 넘는 논문을, 그것도 대다수는 대필논문을 쓴 것이다. 오직 교수임용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 그들이 교수의 꿈을 품던 학생시절, 적립금 확충을 위해 대학원을 확장하고 대학원생을 유치하던 대학과 전임교수들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
이상윤 신부의 강론이 이어진다.
“진정한 가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그 진실이 고통을 받고 쫓겨나는 현실입니다. 돈으로 가치를 산 사람이 진정한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비정규교수 문제를 다룬 한 논문(한국비정규교수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적 고찰/김원열)은 많은 시간강사들이 ‘우월의식과 노예의식이 철저히 내면화’되었다고 진단했다. 정규직 교수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순종해야 했던 이들은 보상심리로 교수 임용에 대한 비현실적인 꿈을 강화한다. 강사가 임용에 목을 맬수록 교수의 비리와 횡포는 커져간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노예제도는 완성된다.
이 논문은 비정규 교수 문제의 진단을 마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대학생들은 현대판 노예인 비정규직 교수에게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한국의 교수 충원률은 50%를 웃돈다. 대학 강의의 40% 가까이를 비정규교수가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용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은 정교수에 비해 강의료가 10%밖에 들지 않는 시간강사를 사용함으로서 절약되는 비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학의 비용 절감 앞에 ‘큰 교육大學 ’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몇 달 전 한 대학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취재했을 때, 그녀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하나같았다.
“어떻게 대학이, 명문대라는 이 대학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쥐가 나오는 휴게실, 점심값도 받지 못하고 먹는 찬밥, 최저임금에 시달리던 미화 노동자들의 말이었다.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씁쓸했다. 사람이 아닌 돈의 가치를 우선하는 건 그녀들이 소속된 대학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신자유주의 방식의 대규모 대학 구조조정을 벌여온 중앙대는 구조조정에 반대한 본교 학생들에게 퇴학 및 징계를 내려 ‘두산대’라는 빈축을 샀다. 삼성이 재단을 인수한 성균관대에서는 2001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의 재산증여 과정을 다룬 만화가 실린 교지가 2시간 만에 전량 회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사학자본’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들이다.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권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학에 맞서 1000일 넘게 싸우는 이들이 있다.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이하 ‘투본’)이다. 이날 미사가 이루어진 장소는 투본 농성장 앞 거리였다. 투본 김동애 본부장은 2001년 부당한 계약해지에 맞선 법정 투쟁을 시작으로 10년을 대학을 상대로 싸워오고 있으며, 투본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남편 김영곤 씨는 노동운동 출신으로 현재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동애 씨는 법정투쟁 과정에서 강사의 법적인 신분이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강사의 법적 지위가 없는지 몰랐어요. 아무런 근거 없이 강사가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는지…….”
시간 강사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교육노동자’라는 특수성은 정작 대학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이 지식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강사의 교원지위를 박탈한 이후, 33년간 시간강사들은 보호 받을 법적권리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김동애, 김영곤 씨는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3년여 동안 농성 투쟁을 하고 있다.
강론이 끝나고 기도를 하는 시간, 방송국과 신문사 카메라들이 김동애 씨를 찍기에 분주하다. 눈을 감은 김동애 씨의 얼굴이 지쳐 뵌다. 앓았다고 한다. 1000일 넘게 길바닥 생활을 한 탓도, 악의적이라 의심받는 농성장 옆 국민은행 건물의 공사 소음 때문만도 아니었다. 고 서정민 박사의 유서 때문이었다. 유서는 김동애 씨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동애 교수님! 투쟁에 함께 하지도 못했습니다. ... 저도 당신과 같은 생각입니다. ‘교수와 제자 = 종속관계 = 교수 = 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
교원지위를 회복시키지 못해 또 한 사람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김동애 씨를 괴롭혔다.
“교원지위 문제를 제기하는 게 열악한 환경 때문이냐. 그러면 ‘강사료 인상만 하면 되는 거냐’ 그래요. 아니에요. 서정민 선생님의 유서에는 ‘주종관계를 알려 주십쇼’라고 적혀있어요. 그건 뭐냐면 교수와 강사, 하나는 교원이고 하나는 법적 지위가 없는 알바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에요. 교수와 강사의 주종관계를 해소하려면 같은 선생의 위치가 되어야 돼요. 수평적 위치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권리가 필요한 거예요.”
미사가 끝나고 김동애 씨는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대학에 수많은 서정민 선생님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저는 천 일이 되던 이천 일이 되던, 만 일이 되던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저도 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모멸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가 4대 보험, 강사료 몇 푼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갖은 왜곡과 비난을 당하면서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일제 이후로 청와대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대학 자본 앞에 시간강사들이 목숨을 끊어도 그때만 지나면 그만입니다. 언론에서 농성 1000일이라고 저한테 와서 초점을 맞춰주는 것도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면 서정민 박사의 죽음이 묻히기 때문입니다.” (희정)
[르포작가 희정의 기사] “박봉에 죽어라 일해도, 한마디 못했어” | 환경미화 노동자들 자긍심 찾기
“이게 뭔지 아시죠? 갖고 싶으신가요?”
신부가 꺼내 든 것은 만 원권 지폐다.
“이 돈이 땅에 떨어져도 갖고 싶으신가요? 네, 저는 주울 겁니다. 왜 그럴까요?”
▲ 故서정민 박사를 추모하고 '투본'의 국회 앞 농성 1000일을 기념하여 농성장 앞 거리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다. ©'투본' 제공
“이게 돈이니까요. 이 종이 한 장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돈 한 장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더 소중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배웠습니다.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다. 어떤 가치보다 존중받고 지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배움에 역행하는 일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가 사람보다 돈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며 그는 45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람의 가치를 배우는 ‘학교’에 몸담았던 이다. 유서에는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자로서 인생을 살려고 했던 결과가 이 지경으로 추락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날 미사는 고 서정민 박사를 추모하고 시간강사 국회 앞 농성 1000일을 기념하는 미사였다. 조선대 서정민 강사는 5월 25일 밤, 자택에서 연탄불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
언론은 그의 죽음을 두고 최근 교수임용 탈락을 비관하여 벌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유서에는 금품을 요구하는 교수임용의 비리와 논문 대필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B교수님을 처벌해 주세요. B교수와 쓴 모든 논문(대략 54권)은 제가 쓴 논문으로 이름만 들어갔습니다. (중략) 교수 한 마리가 1억5000만, 3억 원이라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 대략 2년 전 전남의 모 대학 '6000만 원', 두 달 전 경기도 모 대학 '1억 원'이더군요. 썩었습니다. 수사 의뢰합니다.’
1998년 이후 8명의 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시간강사의 현실을 빗댄 농담 하나가 있다.
“교수님, 연구실이 어디세요?”
학생이 묻자, 시간강사가 대답한다.
“서울 나 9448”
강사가 말한 건 자신의 차번호였다. 연구공간도, 휴게공간도 없이 강의하는 대학을 떠돌아다니는 보따리장사 신세. 2006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학에서 시간강사에게 배정한 공동연구실은 평균 136명 당 1개, 휴게실은 69명 당 1개라고 한다.
시간강사라 불리는 ‘비정규교수’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그대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해고의 용이함을 갖추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시간강사의 시간당 강의료는 최저 1.7만원, 최고 5만원이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시간을 주 4.2시간이라 밝혔으니 이는 평균 연봉 400만~500만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강사료만이 아니다. 서정민 박사는 유서를 통해 정교수-비정규 교수의 종속관계를 고발했다. 교수임용에 있어 정교수의 권한이 막강하기에 시간강사의 입장에서는 교수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교수사회의 강고한 카르텔은 시간강사 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을 막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시간강사는 전임교수의 부당한 대우와 비리를 눈 감을 수밖에 없다. 서정민 박사의 유서에 적힌 ‘교수와 제자=종속관계=교수=개’라는 말을 그저 과장이라며 지나칠 수 없는 현실이다.
“돈으로 가치를 산 사람이 진정한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2009년 고려대학교의 비정규 강사 대량 해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투본'제공
이상윤 신부의 강론이 이어진다.
“진정한 가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그 진실이 고통을 받고 쫓겨나는 현실입니다. 돈으로 가치를 산 사람이 진정한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비정규교수 문제를 다룬 한 논문(한국비정규교수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적 고찰/김원열)은 많은 시간강사들이 ‘우월의식과 노예의식이 철저히 내면화’되었다고 진단했다. 정규직 교수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순종해야 했던 이들은 보상심리로 교수 임용에 대한 비현실적인 꿈을 강화한다. 강사가 임용에 목을 맬수록 교수의 비리와 횡포는 커져간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노예제도는 완성된다.
이 논문은 비정규 교수 문제의 진단을 마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대학생들은 현대판 노예인 비정규직 교수에게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한국의 교수 충원률은 50%를 웃돈다. 대학 강의의 40% 가까이를 비정규교수가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용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은 정교수에 비해 강의료가 10%밖에 들지 않는 시간강사를 사용함으로서 절약되는 비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학의 비용 절감 앞에 ‘큰 교육大學 ’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몇 달 전 한 대학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취재했을 때, 그녀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하나같았다.
“어떻게 대학이, 명문대라는 이 대학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쥐가 나오는 휴게실, 점심값도 받지 못하고 먹는 찬밥, 최저임금에 시달리던 미화 노동자들의 말이었다.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씁쓸했다. 사람이 아닌 돈의 가치를 우선하는 건 그녀들이 소속된 대학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신자유주의 방식의 대규모 대학 구조조정을 벌여온 중앙대는 구조조정에 반대한 본교 학생들에게 퇴학 및 징계를 내려 ‘두산대’라는 빈축을 샀다. 삼성이 재단을 인수한 성균관대에서는 2001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의 재산증여 과정을 다룬 만화가 실린 교지가 2시간 만에 전량 회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사학자본’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들이다.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권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학에 맞서 1000일 넘게 싸우는 이들이 있다.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이하 ‘투본’)이다. 이날 미사가 이루어진 장소는 투본 농성장 앞 거리였다. 투본 김동애 본부장은 2001년 부당한 계약해지에 맞선 법정 투쟁을 시작으로 10년을 대학을 상대로 싸워오고 있으며, 투본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남편 김영곤 씨는 노동운동 출신으로 현재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동애 씨는 법정투쟁 과정에서 강사의 법적인 신분이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강사의 법적 지위가 없는지 몰랐어요. 아무런 근거 없이 강사가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는지…….”
시간 강사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교육노동자’라는 특수성은 정작 대학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이 지식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강사의 교원지위를 박탈한 이후, 33년간 시간강사들은 보호 받을 법적권리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김동애, 김영곤 씨는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3년여 동안 농성 투쟁을 하고 있다.
강론이 끝나고 기도를 하는 시간, 방송국과 신문사 카메라들이 김동애 씨를 찍기에 분주하다. 눈을 감은 김동애 씨의 얼굴이 지쳐 뵌다. 앓았다고 한다. 1000일 넘게 길바닥 생활을 한 탓도, 악의적이라 의심받는 농성장 옆 국민은행 건물의 공사 소음 때문만도 아니었다. 고 서정민 박사의 유서 때문이었다. 유서는 김동애 씨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동애 교수님! 투쟁에 함께 하지도 못했습니다. ... 저도 당신과 같은 생각입니다. ‘교수와 제자 = 종속관계 = 교수 = 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
교원지위를 회복시키지 못해 또 한 사람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김동애 씨를 괴롭혔다.
“교원지위 문제를 제기하는 게 열악한 환경 때문이냐. 그러면 ‘강사료 인상만 하면 되는 거냐’ 그래요. 아니에요. 서정민 선생님의 유서에는 ‘주종관계를 알려 주십쇼’라고 적혀있어요. 그건 뭐냐면 교수와 강사, 하나는 교원이고 하나는 법적 지위가 없는 알바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에요. 교수와 강사의 주종관계를 해소하려면 같은 선생의 위치가 되어야 돼요. 수평적 위치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권리가 필요한 거예요.”
미사가 끝나고 김동애 씨는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대학에 수많은 서정민 선생님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저는 천 일이 되던 이천 일이 되던, 만 일이 되던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저도 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모멸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가 4대 보험, 강사료 몇 푼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갖은 왜곡과 비난을 당하면서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일제 이후로 청와대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대학 자본 앞에 시간강사들이 목숨을 끊어도 그때만 지나면 그만입니다. 언론에서 농성 1000일이라고 저한테 와서 초점을 맞춰주는 것도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면 서정민 박사의 죽음이 묻히기 때문입니다.” (희정)
[르포작가 희정의 기사] “박봉에 죽어라 일해도, 한마디 못했어” | 환경미화 노동자들 자긍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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