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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뭐 먹고 살래]
 
그는 없다. 작년, 감자 심을 때 저 세상으로 갔다는 그의 흔적 위에 내가 산다. 허물어지는 흙 담과 쥐 굴로 연기가 폴폴 새 나오는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고 불 냄새를 맡는다. 마당 가득 연기가 퍼지니 구름 위에 뜬 집이 된다.
 
구름 한가운데 섰다. 마당 입구에 서있는 매실나무를 확인하고 집 뒤란을 돌아 대나무 숲을 끼고 걷는다. 이곳에 살면서부터 마당 앞길보다는 집 뒤로 돌아 걷기를 즐겨한다.
 
산허리 중간쯤에 그가 팔아먹지 못한 비탈밭이 있다. 에스자로 휘어진데다가 크기도 백여 평 남짓한지라 돈이 되질 않았나보다. 갈아먹어도 좋다는 그의 아들내외 언질이 있었으니 내게 허락된 땅이다.

평수도 맞춤해서 농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땅 문이 열리면 쪼그리고 앉아서 두둑을 만들고 그곳에 쌈 거리를 즐비하게 심을 테다. 아침저녁으로 다 뜯어 먹어야겠다. 잇몸에 눌러 붙은 푸성귀가 진력이 날 때쯤이면 호두나무, 배나무, 감나무에게 다가가 손 내밀면 된다.
 
낙향을 한 나를 염려하는 K에게 자랑하는 유실수와 땅이다. 몇 푼이나 한다고 사먹으면 된다고도 한다. 무슨 인생이 살면서 사먹으면 되는 것들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드는지 알 수가 없다.
 
새끼도 배불리 먹고 나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건 밥과 김치뿐이었다. 신선한 과일은 이가 시려서 못 먹는 신세가 되곤 했다. 먹을 것 앞에서 쪼잔해지고 먹을 것 앞에서 상심을 했다.
 
전국에서 제일 싸게 판다는 땡마트에서도 내 장바구니는 늘 헐렁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피해서 빙글빙글 맴을 돌 때마다 허전했다. 땡마트 로고가 새겨진 자체 브랜드 우유와 땡마트 두부가 일반 두부보다 싼 것도 참고 먹을 만하다. 수입산 바나나와 중국산 마늘을 사고 수입산 냉동 삼겹살을 사면서도 ‘쌈 채류’만큼은 친환경으로 생산된 걸 먹고 싶었다.
 
골병든 사과를 절반 값에 사와서 썩은 부위를 도려내면서 깨달았다. 열다섯 평 영구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도시 빈곤계층인 나는 ‘안전한 먹거리’에서 제외된다는 사실. 운동화 한 켤레로 사철을 견디면서 운동화로 출입할 수 있는 곳만 다니는 내가 ‘착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 고비용을 부담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껍질째 먹어도 된다는 싱싱한 사과를 베어 먹는 즐거움은 미안하지만 잊어달라는 말이었다.
 
땡마트에 진심으로 미안했다. 전국에서 제일 싸게 영업하는 매장에서조차 통과 고객이거나 걸핏하면 시식용 만두나 축을 냈으니 미안한 일이다. 허리춤에 찬 박카스가 열병이 되도록 뛰어다녀도 우수고객이 되기는 틀려 버렸다.
 
도시에 빌붙어 살면서 죽기 전 소원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와 아삭거리는 야채 좀 먹고 싶었노라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만족한 삶의 조건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참 쪽팔리는 소원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몸뚱이로 낙향을 한 내가 삶의 대단한 철학이 있는 줄 오해한다. 더 많이 벌어서 더 좋은 걸 사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도시 노동자이거나 농촌 노동자이거나 고단하기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천한 목숨이니 땅에 빌붙어 살기로 했다.
 
산골짜기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 밤사이 얼었다가 짧은 겨울 햇살에 까치 주둥이가 파고들지 못한 감이 내 몫이다.  대나무 장대로 나무 가지를 꺾었다. 이가 시리도록 언 감을 주워 먹는 일이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K가 내게 질문한 대답이다.  이어진 글보기-> 언 땅에서 함께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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