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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4)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위자료는 누가 받을 수 있지]
현관에 놓인 남자의 구두 먼지를 털다가 구두약이 신발장 어디에 있는지 잊었어. 조기비닐을 말끔하게 긁어내고 지느러미가시를 다듬다가 가시에 엄지손가락을 찔렸어. 행주 삶는 양푼 위로 보글거리는 비누 거품이 부르르 흘러 넘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콩나물도 덤을 주는 아주머니를 찾아 재래시장엘 가는 길이 재미없어졌어. 고등어가 싱싱하지 않다면서 아가미까지 들춰보다가 미안했어. 미리 타박을 놓으면 백원쯤 깎아주고 그 백 원을 아꼈다고 가계부 쓴 건 자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남자 와이셔츠 소매에 칼날 같은 주름이 두 개나 잡혔어. 고무줄 치마를 만들어 입던 자투리 천도 벌려진 가위 입 사이에 갇혀 있었어.
새털처럼 가볍게 남자 어깨에 팔을 두르는 건 무게와 상관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남자 귓가에 미주알고주알 종달새 소리를 내는 것 또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았어.
만족한 결혼생활은 순백의 각설탕처럼 희디흰 속 살결을 가진 여자의 것이라고 했어. 여자는 자고로 받을 복이 많아야 한다고도 했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어. 당신은 회개하라 말을 했고, 당신은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 통회하라 했고, 당신은 전생을 이해하라고 했어.
날마다 속죄를 하는 내 몸이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처럼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어. 건조해진 몸뚱이에 남자의 위로가 있기를 기대했어.
남자에게는 자신의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어. 너 때문에 화가 나며, 너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며, 너 때문에 바람을 피우게 되니 좀더 잘하라고 했어.
그는 내게,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알려줬어. 그 말에 모가지가 절로 떨어졌어. 그 말이 내 자궁의 덫처럼 느껴졌어. 여자 하기 나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
품에 안은 두 아이의 머리 가마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선택할 시간은 도리질을 아무리 쳐도 슬그머니 내 가까이 와있었어.
“헤어져”
차마 이혼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었어. 그 말을 선택하면 지금도 넘쳐나는 내 등짐의 죄들이 납덩이처럼 더 무거워질까 봐 두려웠어. 이혼을 포장한 헤어지자는 단어를 남자는 정확히 알아들었어.
“그거는 잘난 여자들이나 하는 거지. 밥만 먹고 똥만 싼 주제에”
남자는 생각보다 영악했어. 벌써 위자료를 생각하고 있었어. 재산 증식에 일조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난 전업주부였어. 밥을 너무 많이 먹었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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