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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5)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매실나무 꽃눈이 쌀알만해졌다. 어쩌면 삼월 초순에 눈발이 날릴지도 몰라. 바람도 불어서 춥기도 할 거야. 매해 그랬으니 너도 알고 있을 거라며 말을 건넸다.
몰캉해진 밭고랑을 밟다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었다. 층층계단 논바닥 군데군데 거름이 뿌려져 있다.
그 옆. 사과나무 가지마다 유인 추를 다는 할머니 모습이 보인다. 추가 모자라는 줄기는 끈으로 묶어 지지대에 동여매고 있다. 사과나무 가지가 위로만 뻗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할머니네 사과나무는 살아 있다. 산 것은 서로에게 희망을 품게 한다.
기어이 삼월이 오려나 보다. 오려는 것은 오고야 마나 보다. 달력 한 장 넘기면서 ‘삼’이라는 숫자를 보기가 두려워 ‘사’라는 숫자로 두 달을 산적도 있었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한 그날도 삼월 초순이었다. 그 날의 슬픔이 나를 이끌고 가도록 수굿해지려고 한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비난 받을 일 없이 들판으로 산길로 걷고 있다. 울다가 허기가 지면 돌아와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신경질적이 되거나 마당 쓸던 빗자루를 팽개치는 특이한 일상들을 요 며칠 계속하고 있다.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감정의 변화들은 독립하지 못한 채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 시간. 그 곳이 내 죄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었을까? 자식을 잃은 슬픔에 혼절을 거듭하는 내게 가해진 언어폭력이 정당한 걸까?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고무되게 만들었을까?
삼 년 육 개월을 살다 간 아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볼 수 없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덜덜 떨고만 있었다. 언니 정신 차려. 사고야 그냥 사고가 난 거야. 옆구리를 부축한 아우의 말이 들린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무 말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야 했다.
집구석에서 애도 못 보는 년. 새끼 잡아먹은 년. 또렷이 들리는 말을 피해 구석자리로 파고드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아이 신발을 가슴에 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아우가 감싸 안았다. 인사 드리라는 아우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시어머니 뒤로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시선을 피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요 새댁. 여자가 죄가 많으면 자식을 친다는 OO님 말씀을 명심해요.
너무 하신다는 아우의 화난 음성으로, 뭉쳤던 신발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정수리에 꽂힌 말에 의식이 또렷해 졌다. 참척(慘慽)을 당한 일이 내게 몹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것은 죄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앉았다. 천주교 봉사단원들의 기도 소리를 타인이듯 따라 했다.
미장원에 가자는 말에 아우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언니가 미친 건 아닌지 불안한 표정이다. 샴푸를 하고 드라이를 하는 동안에도 난 울지 않았다. 검은 코트를 가져오게 준비 시키고 성당 공원묘지에 예약을 했다.
작은 봉분을 만들어 놓고 남자 몰래 그곳을 드나들었다. 묘지 입구에 두 팔 벌린 예수 상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다. 당신도 서서 오줌 싸니 편하겠다며 비웃었다. 당신조차도 내 지지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다. 당신한테도 책임질 그 누가 있어야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일다 www.ildaro.com
[윤춘신의 생활문학] 익명의 눈물에 대하여 | 오른쪽 여자 왼쪽 여자 | 위자료는 누가 받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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