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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8)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출렁대는 양은주전자 주둥이로 막걸리가 찔끔거린다. 흙먼지 내려앉은 무릎을 타고 종아리를 거친 막걸리가 고무신에 고인다.

 
양조장 지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땟국물이 흐르는 찐득거리는 검정 고무신에 한 모금 나도 한 모금. 신작로 한길 가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양은주전자를 내려놓고 쉬어가는 참이다.
 
고무신 가득 흙을 퍼 담아놓고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왕자표 운동화에 새겨진 왕관 쓴 단발머리 왕자님을 그렸다. 애비 에미 있는 집 자식들만 신는 거라는 할머니는 ‘욕쟁이’라고 글씨도 새겼다.
 
소방서 옆 양조장까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는 날에는, 해찰하지 말라는 할머니 말을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신작로 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흘리지 말고 살살 걸어가라는 양조장 할머니는 나만 보면 욕을 한 바가지씩 해댔다. 저 년을 낳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한다. 저 집 할머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말도 한다. 그 할머니를 멀거니 바라만 보았고 인사는 한 번도 하지 않은 듯하다.
 
내 나이 아홉 살 무렵이었다. 외가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동안 옆집, 뒷집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그림자만 보여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거나,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욕은 내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줄기차게 따라 다녔다.
 
또 해찰하고 오느냐는 할머니의 눈은 번들거렸다. 여름 내내 할머니의 짝짝이 젖통은 늘어진 런닝구에서 출렁댔다. 할머니 등짝을 차지한 돌배기 아우의 모가지도 덩달아 흔들렸다.
 
토방에다 막걸리 주전자를 던져놓고 줄행랑을 쳤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숨어서 해 넘어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넘의 땅 부쳐 먹기 심이 든다는 한탄이나, 저 어린 새끼들을 뭣을 해먹일지 폭폭하다는 말 따위는 매미 소리에 파묻히곤 했다. 탱자나무 가시로 땅바닥만 긁고 있었다. 뙤약볕을 피할 그림자 한 조각 걸리지 않았다.
 
편지 써야 하는데 어디 숨어있느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 나왔다. 글 모르는 할머니가 서울로 식모살이 하러간 엄마한테 편지를 쓰게 했다. 말을 징글맞게 안 듣는 내가 편지 쓰는 일만큼은 착하게 잘 들었다.
 
할머니가 ‘행이 보아라’라며 당신 딸의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내가 듣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당신 딸의 이름만 부르고 한참을 가만히 있을 때, 우표를 부쳐야하는 편지인지 우표 값으로 만화가게를 가도되는지 제법 궁리를 하곤 했다.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아닌 편지는 똥통에 던져 버리기 일쑤였다.
 
연필심에 침을 발라 가며 꾹꾹 눌러쓴 ‘너거 새끼는 잘 있다’는 편지는 서울로 가지 못했다. 우표 값만 손에 꼭 쥔 채 팔랑개비처럼 나풀거렸다. 만화가게를 향해 씽씽 달려가는 동안 여섯 살배기 둘째 아우가 혼자 마당을 뱅뱅 돌거나, 갓 돌 지난 막내아우 모가지가 할머니 허리춤에서 데룽거리는 것쯤은 잊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역 앞에 있는 만화가게까지 나를 잡으러 오질 못했다. 한 여름 땡볕에서 빈 젖을 아우에게 물린 채 나를 기다렸지만, 우표만 부치고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양조장과 소방서를 지나 역전에 다다를 때까지 숨이 턱까지 차도록 내달렸다. 말끔하게 씻어놓은 흰 고무신을 신은 할아버지가 역전 읍내 시장 통을 돌아 나오고, 나는 만화가게로 파고들었다.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걸어가는 할아버지는 쎄가 빠지게 심이 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밀가리 개떡을 쪄야 새끼들이 먹을 것인디 밀가리가 떨어졌다는 궁색함도 드러내지 않았다.
 
논일 밭일로 고무신짝이 벗겨진 줄도 모르는 할머니 신발과 할아버지 고무신은 달랐다. 뫼똥옆에 있는 밭에 갈 때도 제 몸보다 더 큰 네모난 건전지를 고무줄로 묶은 라듸오를 들고 다녔다.
 
난 할아버지를 무척 따르고 좋아했다. 할머니는 이런 나를 두고 욕을 하겠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등판에 꿀범벅이 된 땀띠를 기억한다고 말하면 덜 섭섭해 할까.
 
ⓒ일다 www.ildaro.com 누구를 위한 정조인가  | 위자료는 누가 받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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