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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언 땅에서 함께]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금원산 정상에서 골바람이 불어온다. 정수리로 들어온 바람을 어금니로 물었다. 바람을 삼키지 않은 체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털신 밑에서 오도독 눈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일부러 녹지 않은 눈길을 밟았다.
 
읍내 나가는 이장님 차를 얻어 타고 딸과 목욕탕엘 다녀오는 길이다. 하루 네 번 운행하는 버스 차 시간을 놓쳤다. 다음 차 시간에 맞추려면 한 시간을 길바닥에서 떨어야 한다. 인근에 사는 친구 집까지 걷기로 했다. 내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해야겠기에 목욕탕까지 와달라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채 십 분도 걷지 못하고 가지 않겠단다. 거의 다 왔다고 딸을 달래면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딸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등 뒤에서 “엑”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 소리가 뒷덜미를 낚아챌까 봐 빨리 걸었다. 뛰고 싶었다. 팔 년 동안 들어온 소리에 진저리가 쳐졌다.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의 음성 틱 소리가 잦아들었다. 음성 틱이 가라앉았으니 발을 구르고 팔을 떨어대는 운동 틱이 동시에 반응할 차례다. 대인지뢰를 밟은 듯 꼼짝 없이 서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가 없다.
 
“엄마”
“엄마아”
 
바람을 타고 소리가 온다. 나를 부르는 소리. 그 소리를 몸이 먼저 듣는다. 뒤를 돌아 딸을 바라보았다. 약 부작용에 생리가 멈춘 딸. 약을 끊자니 틱이 심해지고, 먹자니 부작용이 반복되는 딸에게 다가갔다.
 
“택시타면 차비가 팔천 원이래.”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딸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옹색했다. 다시 몇 걸음을 걷는 딸을 앞장세워서 뒤에서 걸었다. 딸은 발뒤꿈치를 부츠 중간쯤에서 눌러 신었다. 아직도 발이 자라는 걸까.
 
손바닥만한 운동화가 밤새 쑤욱 자라나기를 저녁마다 운동화 앞에서 풀무질을 했었다. 아이의 신발이 내 신발보다 커질 때 빈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 무엇도 내게 요구하는 게 없을 줄 알았다. 내 털신보다 더 큰 신발을 신는 딸의 때를 밀어주면서 화가 났다.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는 나는 한부모이며, 아빠 없는 딸은 ‘결손가정’ 아이다. 아프지도 말고 다치지도 말고 자랐어야 했다. 그래야만 결핍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내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자식이 가슴에 빛나는 훈장이 되어서 ‘혼자서도 잘 키웠다’라는 소리에 목말라했다.
 
세상에 대해 행세할만한 한 가지로 남겨 놓은 게 자식이다. 그 하나는 포기되는 게 아니었다. 완치가 되지 않는 딸의 질병을 수용할 수 없었다. 두어 걸음 걷다가 발바닥을 탁탁 치거나 온갖 소리를 다 내면서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본다. 딸의 모습이 흔들린다. 한걸음만 더 다가섰다.
 
딸의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팔꿈치에서 팔목으로 다시 손가락까지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다. 손 보자기를 만들어 아이 손을 감싸주었다. 허공에서 두 개의 팔이 솟았다 떨어진다. 나도 틱을 한다. 뒤에서도 앞에서도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나란히. 

[윤춘신의 생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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