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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들이 공동 출자한 영농조합법인 텃밭

 

몇 년 전 청소년육성재단의 지원으로, 히로시마 세라죠라는 곳에 연수를 다녀왔다. 그곳의 여성농민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산물을 생산-가공-유통시키는 카메리아라는 협업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곳 여성들도 농업과 농촌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처지에서 농산물 수입개방 문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을 쏟아냈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활짝 핀 야생들꽃에 직접 가격을 매긴 바코드를 붙여 직매장에 내다파는 할머니의 모습, 집에서 만든 다양한 수제 햄 등 전통음식을 상품화해 파는 일, 특히 인상적이었던 카메리아는 여성농민들이 공동 출자하고 지방정부 지원을 받아 제과제빵, 도시락 사업 등을 하는 영농종합법인이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법인이라고 하는데, 지역특성을 반영해 여성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6차 산업모델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많이 부러웠다.

 

세라죠의 여성농민들이 부러웠던 만큼, 한국에 돌아와서 할 일이 많아졌다.

 

할머니들로부터 전통지식과 지혜를 전수받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논 끝에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사람들과 여성농민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할머니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전통방식으로 농사 짓고, 전통지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신 할머니들의 지혜를 전수받는 사업을 진행했다.

 

전통지식을 전수받아 담근 강원도 막장

지금까지 된장, 고추장을 시작으로 한과, 두부, 발효음식, 김치, 과일주 등을 복원하고, 미래세대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전통음식을 전수받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할머니들은 , 그런 걸 배워. 그냥 사 먹지! 하시면서도, 차분하게 젊을 때부터 만들어왔던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더 늦기 전에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또 토종씨앗 갈무리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수해주신 할머니들께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할머니들에게 배우고 향토음식, 발효음식 전문가에게도 전수받은 경험을 토대로, 횡성 여성농민들은 다양한 경로로 도시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장날마다 장터에 가마솥 걸어놓고, 소비자들에게 두부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나누어먹기를 일 년 남짓하고 있다.

 

텃밭두부 통해 지역순환형 농업모델 시도

 

이 과정 속에서 여성농민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무농약콩으로 만드는 두부생산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콩을 생산하는 기반도 만들어지고, 두부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가축도 기르다 보면 자연스레 지역 안에서 물질이 순환하는 농업형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구체화되던 시기에, 원주 한살림에서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공품들이 서울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 기존의 물류방식을 지양하고, 지역순환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로 텃밭두부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반가운 제안이었고, 한살림에 우리가 만든 두부를 납품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공장을 설립해야 한다는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는 결국 횡성군청이 지원하는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가면서, 꿈꾸던 순환형 농업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결의를 현실화했다. 부가가치를 높여 우리 여성농민도 잘살아보자는 희망 속에서, 외부의 지원 없이 여성농민들이 공동 출자해 지역순환영농조합법인 텃밭을 설립한 것이 2006 9월의 일이다.

 

준비된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즐거움

 

30여명의 조합원들이 4천여 만원의 출자금을 모아 시작한 텃밭은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모든 설비를 스테인레스로 바꾸고, 시멘트바닥에 방수페인트를 칠하고, 두부를 시판할 준비를 다하고도, 행정적인 통과의례(법인등기, 영업허가, 식품제조등록 등)를 거치는데 몇 개월이 걸렸다.

 

두부가 갓 만들었을 때는 맛있는데, 소비자에게 도착할 때 쯤 냄새가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살림 측과 머리를 싸매면서 물 문제며, 간수문제를 해결해나갔던 일, 두부시장이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있던지, 두부를 만들기만 하면 횡성의 모든 슈퍼에서 우리 여성농민들이 생산한 텃밭두부를 팔아줄 거라 생각했건만, 간신히 유통업체 한두 곳 매장에 진열돼 판매되다가 판매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그나마도 철수하는 아픔도 겪었고.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몸으로 체득한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농촌사회를 함께 꿈꾸는 도시소비자들이 소중하고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손익분기점에 다다르지 못하는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힘이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민적 가공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을 기다려주면서,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채찍과도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상호연대의 경제학을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주위에 있다. 횡성텃밭두부는 아주 부자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마음을 여는 거리

 

두부 한 모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지향의, 가치중심적 실천이었다는 평가도 거침없이 하게 된다.

 

작년과 올해 전국여성연대에서는 여성농민이 생산하면 여성연대는 소비한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구호를 앞세워 함께해주고 있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텃밭으로 성장시켜나갈 것이다.

 

준비된 생산자와 준비된 소비자가 직거래한다는 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물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엔 향린교회 신도들이 횡성을 다녀갔다. 횡성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횡성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오신 분들이라 긴장도 되고, 일부러 찾아와 격려를 해주는 것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다들 생각보다 가깝네요. 자주 오면 좋겠다 하시면서 텃밭두부를 어떻게 하면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오셨다.

 

실제로 횡성은 서울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멀다면 먼 거리인데도 가깝게 느껴지는 이 거리를 우리는 사회적 거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대면하는 소통의 거리. 물류를 사람이 직접 담당하겠노라고 결의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여는 거리.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텃밭에 다양한 밑거름을 넣고, 서로의 공동체를 살려나가는 텃밭농사의 힘은 정말 큰 것이다.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대표

 

*지역순환 영농조합법인 텃밭(cafe.daum.net/godjs) 033-345-5060
*<일다>www.ildaro.com의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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