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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는 ‘세대원’?
<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농사이야기, 환경이야기, 먹거리이야기, 농부로 살아오면서 겪은 여성들 삶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미래의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농업과 생태감수성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도-농 격차와 여성농민이 겪는 차별과 소외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를 다룬 이번 기사의 필자 윤금순님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前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국여성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여성농민, ‘돈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말한다
여성농민은 당당하게 농사짓는 여성을 말한다. 남들이 우리를 농촌부녀, 농촌여성, 농가주부라 부르던 시절, 우리는 스스로 여성농민이라고 말했다.
“누가 붙여주지 않은 우리 스스로 이름 지어 부른 여성농민.
역사와 농업생산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자는 의미에서 여성농민이라 부르기로 했지요.
단순히 농사만 지어 나만 잘 살자고 했으면 ‘여성농민’이라 이름 짓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그 이름이 불릴 때 그렇게 눈물 나게 벅차지도 않았겠죠?
더불어 잘 살고, 생명의 소중함과 생산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살아온 역사이기에
그 이름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2009 <전국여성농민대회>를 마치고 정미옥씨가 쓴 글)
그러나 당당하고 마음만은 풍족한 여성농민들이 경제적으로는 가난하다. 일년 내 뙤약볕에서 일한 대가는커녕 영농비조차 못 건질 때가 많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손에 돈을 좀 쥘라치면 영농비, 농협에 진 빚 이자,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로 다 들어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아니, 늘 모자란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협에서 빚을 낸다. 게다가 환자라도 생겨 큰 병원에라도 가야 하거나, 대학생 자녀라도 있으면 농협 문턱을 제 집 드나들듯 해야 한다. 어쨌든 급한 일이 있으며 통장을 관리하고 살림을 챙기는 사람이 무슨 수를 내야만 한다. 그러니 누가 살림을 맡으려고 할까. 통장관리를 서로 안 맡으려고 한다.
수확기가 되어 출하대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는가 싶으면 이내 다 빠져나가고, 통장잔고는 비어 있기가 일쑤다. 노동의 대가가 들어와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간 빈 통장을 확인하는 허무함이란….
혹자는 집안에서 소소한 살림살이에 필요한 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여성농민의 의사결정권이 조금 높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인정한다 하여도, 여전히 큰 돈에 대한 여성농민의 의사결정권은 제한적이다.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는 '세대원'?
1996년 여성의 ‘농협’ 참여권을 주장하는 여성농민들의 투쟁으로, 농협복수조합원 제도가 시행됐다. 비로소 여성농민도 농협조합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 후 지속적인 여성농민들은 평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했고, 조합원 가입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농협대의원 진출도 확대됐으며 극소수지만 이사, 감사, 조합장 진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제도적 성차별의 대명사였던 호주제도 폐지됐다. 그러나 여성들에 대한 농협의 문턱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영농자금이나 농업경영자금을 포함한 각종 대출은 모두 ‘농가 당’으로 처리된다. 즉, 여성 자신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금융대출을 받으려고 했을 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담보 넣을 재산도 없고, 연대보증인을 세울 수도 없는 여성농민들에게 농협 대출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농협에서는 조합원인 여성명의로 빚을 대환 해준다. 결국 여성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이렇게 보면 농협에게 여성들은 농가 빚을 짊어질 최종 금융부채예비군에 지나지 않는다.
농협에서 농업경영자금을 낼 때, 그리고 관공서에서 자격을 인정받을 때 농민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농지원부’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다. 농지소유현황, 임차현황, 경작현황, 노동력 등을 나타내는 문서인데, 농지원부 첫 장에는 농업인 남편의 이름 밑에 세대원(업무집행사원)으로 여성과 자녀들이 명기되어 있다. 물론 여성농민이 업무집행 또는 고용과 관련해 협약을 맺은 바는 전혀 없다.
여기서 가족을 의미하는 ‘세대원’이란 말 속에는 사실상 ‘무급’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세대원이란 무급가족종사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여성농민은 일하는 만큼의 경제적인 권리를 갖지 못한다.
오늘도 여성농민들은 전국 방방골골에서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무급 가족노동을 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일까? 낮은 농산물 가격은 여성농민들의 무급 가족노동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잘 살고 생명의 소중함과 생산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살아온 여성농민들에게 경제적 권리가 주어진다면, 아마 자신들만을 위해 그 권리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농민들이 경제적 권리를 실현 할 날은 언제일까. <일다> www.ildaro.com
[여성농민] 무농약농업 19년, 나의 이야기 |“얼굴있는 생산자 되고 싶어요” |토종씨앗은 “오래된 미래”
<일다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묻혀져 있던 여성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농사이야기, 환경이야기, 먹거리이야기, 농부로 살아오면서 겪은 여성들 삶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미래의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농업과 생태감수성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도-농 격차와 여성농민이 겪는 차별과 소외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를 다룬 이번 기사의 필자 윤금순님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前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국여성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여성농민, ‘돈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말한다
일년 내 뙤약볕에 일해도 영농비조차 못건질 때 많다. 특히 여성들은 돈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별로 없다. ©윤금순
“누가 붙여주지 않은 우리 스스로 이름 지어 부른 여성농민.
역사와 농업생산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자는 의미에서 여성농민이라 부르기로 했지요.
단순히 농사만 지어 나만 잘 살자고 했으면 ‘여성농민’이라 이름 짓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그 이름이 불릴 때 그렇게 눈물 나게 벅차지도 않았겠죠?
더불어 잘 살고, 생명의 소중함과 생산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살아온 역사이기에
그 이름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2009 <전국여성농민대회>를 마치고 정미옥씨가 쓴 글)
그러나 당당하고 마음만은 풍족한 여성농민들이 경제적으로는 가난하다. 일년 내 뙤약볕에서 일한 대가는커녕 영농비조차 못 건질 때가 많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손에 돈을 좀 쥘라치면 영농비, 농협에 진 빚 이자,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로 다 들어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아니, 늘 모자란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협에서 빚을 낸다. 게다가 환자라도 생겨 큰 병원에라도 가야 하거나, 대학생 자녀라도 있으면 농협 문턱을 제 집 드나들듯 해야 한다. 어쨌든 급한 일이 있으며 통장을 관리하고 살림을 챙기는 사람이 무슨 수를 내야만 한다. 그러니 누가 살림을 맡으려고 할까. 통장관리를 서로 안 맡으려고 한다.
수확기가 되어 출하대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는가 싶으면 이내 다 빠져나가고, 통장잔고는 비어 있기가 일쑤다. 노동의 대가가 들어와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간 빈 통장을 확인하는 허무함이란….
혹자는 집안에서 소소한 살림살이에 필요한 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여성농민의 의사결정권이 조금 높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인정한다 하여도, 여전히 큰 돈에 대한 여성농민의 의사결정권은 제한적이다.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는 '세대원'?
여성농민들은 영농자금이나 농업경영자금을 대출받기 어렵다. 농협에게 여성농민은 농가 빚을 짊어질 최종 금융부채예비군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카페
그리고 사회적으로, 제도적 성차별의 대명사였던 호주제도 폐지됐다. 그러나 여성들에 대한 농협의 문턱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영농자금이나 농업경영자금을 포함한 각종 대출은 모두 ‘농가 당’으로 처리된다. 즉, 여성 자신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금융대출을 받으려고 했을 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담보 넣을 재산도 없고, 연대보증인을 세울 수도 없는 여성농민들에게 농협 대출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농협에서는 조합원인 여성명의로 빚을 대환 해준다. 결국 여성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이렇게 보면 농협에게 여성들은 농가 빚을 짊어질 최종 금융부채예비군에 지나지 않는다.
농협에서 농업경영자금을 낼 때, 그리고 관공서에서 자격을 인정받을 때 농민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농지원부’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다. 농지소유현황, 임차현황, 경작현황, 노동력 등을 나타내는 문서인데, 농지원부 첫 장에는 농업인 남편의 이름 밑에 세대원(업무집행사원)으로 여성과 자녀들이 명기되어 있다. 물론 여성농민이 업무집행 또는 고용과 관련해 협약을 맺은 바는 전혀 없다.
여기서 가족을 의미하는 ‘세대원’이란 말 속에는 사실상 ‘무급’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세대원이란 무급가족종사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여성농민은 일하는 만큼의 경제적인 권리를 갖지 못한다.
오늘도 여성농민들은 전국 방방골골에서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무급 가족노동을 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일까? 낮은 농산물 가격은 여성농민들의 무급 가족노동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잘 살고 생명의 소중함과 생산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살아온 여성농민들에게 경제적 권리가 주어진다면, 아마 자신들만을 위해 그 권리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농민들이 경제적 권리를 실현 할 날은 언제일까.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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