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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nerpol.net)와 공동기획으로, ‘녹색일자리’에 관한 기사를 연재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계획 등 녹색일자리 담론이 정부중심의 극히 제한된 논의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녹색일자리를 둘러싼 국내외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소개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 한재각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이다. -편집자 주

 
정부의 ‘녹색성장’에 당혹스러운 환경운동진영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시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녹색일자리' 담론은 정부 주도의 극히 제한된 논의에 갇혀 있다. ©일다

얼마 전 환경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모였다. 한 환경단체가 환경운동의 방향을 점검하고 새롭게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개최한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발제가 끝난 후 토론에 들어서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 흘러갔다. 많은 이들은 환경운동진영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오던 녹색담론을 빼앗겼다며 당혹스러워하거나 분통을 터뜨렸다.

 
그럴 만한 일이다. 한반도 대운하 혹은 ‘4대강 살리기’라고 불리는 대규모 토건산업에 대해서 지금까지 녹색담론을 통해 대항해왔던 환경운동진영, 더 나아가 진보개혁진영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게다가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핵발전소 추가 건설, 계속된 그린벨트 해제 등 반환경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녹색성장’이라니!
 
문제는 이렇게 모순적인 이명박 정부의 녹색담론이 국내외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한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혹자는 언어학에서 비롯된 ‘기의’와 ‘기표’ 개념을 이용하여, 이명박 정권이 녹색이라는 ‘기표’는 이용하면서도 그 안에 담겨야 할 진정한 ‘기의’는 담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녹색분칠’이라는 얘기다.
 
다른 연구자는 ‘객관적인’ 위기로서 환경문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자본의 대응전략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대기권이라는 전세계 공유물을 시장화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추진을 두고 그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편으로는 좌우파 모두 가져다 써도 무리가 없을 만큼 ‘말랑말랑한’ 녹색담론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적어도 한국의 녹색담론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매우 적은 듯하다.
 
환경위기와 경제위기가 낳은 ‘녹색성장’ 담론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현실의 어떤 위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현 정권에 의해 주도된다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즉 전지구적 환경위기와 경제위기, 혹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요구와 높은 실업률 해결의 필요성을 ‘녹색성장’ 담론/정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정부가 녹색뉴딜 정책을 제시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녹색일자리’가 특히 그렇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살리기의 ‘삽질’ 일자리를 녹색일자리라고 치장하는 바람에 ‘녹색분칠’에 대한 반감부터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녹색담론’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지구생태계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현재의 생산과 소비는 곧 파국에 직면할 것이라는 ‘환경위기’ 담론이 있는가 하면,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장의 필요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추가적으로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도 있다.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담론이 선진국들의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고 지금의 발전양태를 고수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환경문제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진전된 논의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담론은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환경문제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일자리 담론/전략도 여러 녹색담론 중에서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흐름 속에 있다. 환경위기를 강조하는 녹색담론이 현재와 같은 지속불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중단할 것을 강조한다면, 녹색일자리 담론은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일자리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또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작업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변화를 강조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결국 전통적인 사회적 문제인 ‘노동’을 새로운 문제인 ‘환경’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관심에서 녹색일자리 담론/전략이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산업재해, 지역오염 등 환경의식 싹터
 

풍력발전 통해 주민 일자리를 창출한 독일의 다르데스하임 마을 ©마을 홈페이지 www.generalwind.com

역사적으로 볼 때 녹색일자리라는 개념은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과정에서 싹튼 것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일자리를 지키는 것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경험은 풍부하다. 미국의 경우 두 운동의 연대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인적.조직적 교류부터 정책적 연대까지 다양했다. 그런 노력은 청정대기법, 청정물법 등의 환경법을 제정하고 산업안전법을 만드는 등의 제도적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했다.

 
이런 연대경험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노동자계급 환경주의’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즉 상대적으로 자연보전 활동에 치우친 주류 환경운동가들과 다르게, 노동자들 사이에 도시와 산업지역의 환경오염, 산업재해 등에 관심을 두는 환경의식이 싹텄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밀어닥친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면서,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는 더이상 발전하지 않고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대응하여 1970년대 말 미국 환경운동진영은 ‘완전고용을 위한 환경주의자’(EFFE)라는 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단체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유기농업 등에서 만들어질 일자리를 최초로 개발하고 대중적으로 소개했다.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략을 창안해냈다. 즉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녹색일자리’ 개념과 전략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으로부터도 현재의 ‘녹색일자리’ 개념/전략과 밀접히 통합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전략이 개발됐다.
 
1980년대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화학산업의 공장들이 폐쇄될 처지에 놓였다. 이곳에서 고용된 노동자들과 지역공동체는 실업과 경기 침체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의 노동운동은 “생계를 독성경제(toxic economy)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을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녹색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캐나다 노조가 이를 발전시켜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전략으로 정식화했다. 캐나다 노총은 녹색일자리와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서로 밀접히 연결된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녹색일자리는 노동-환경운동의 ‘연대’를 통해 발전했다 
 
한편, 녹색일자리 정책이 국가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90년대 호주와 덴마크에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1992년 리우 환경회담을 정점으로 환경의식이 고양되면서 실업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접근으로 ‘녹색일자리’가 주목 받았다.
 
호주에서는 호주보전재단(ACF)이 호주노총(ACTU)에게 먼저 제안했으며, 덴마크에서는 덴마크 일반노조(SiD)가 덴마크자연보전협회(DSCN)에 녹색일자리를 위한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이런 제안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 배경에는 역시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사이 오래된 연대경험이 뒷받침되었다. 또한 노조의 ‘사회운동적’ 훈련과 관심도 중요했다.
 
이 시기에 호주와 네덜란드 모두 노동운동에 기반하며, 환경운동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노동당과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들 정부는 노조와 환경단체가 녹색일자리사업단(GJU, 호주), 녹색일자리창고(Green Job pool, 덴마크)을 설립과 운영을 적극 지원했다. 이 기구들을 통해 노조와 환경단체는 폐기물 관리 및 재활용, 생태계 보전, 재생에너지, 수자원 관리 등의 분야에서 노동자를 교육.훈련시키고 일자리를 알선해주면서 녹색일자리를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아쉽게도 각국의 진보정당들이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녹색일자리 실험과 정책은 쇠퇴했다. 하지만 환경과 고용을 함께 고려하는 논의와 전략은 (적어도 유럽지역의) 노조운동 내에 자리잡았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오며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고 일부 국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녹색일자리 정책의 배경에는 ‘기후변화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또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파급으로 빚어지고 있는 경기침체, 그리고 실업의 증가도 또 다른 배경이 되고 있다.
 
거기에 녹색일자리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호주의 경우, 보수당 지배에서 벗어나 비교적 개혁적인 정권이 들어섰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이는 환경 의제를 더이상 외면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일자리’는 사회문제를 동시에 연결해 풀려는 접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녹색일자리 개념/전략은 참여정부 시기에 일부 환경단체들의 선도적인 문제제기와 연구로 시작되었지만,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환경위기와 고실업의 해결책이라는 접근으로 녹색일자리를 대중적으로 제시하면서 담론의 주도권을 쟁취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녹색일자리는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라는 사회적 맥락은 제거된 채, 심지어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할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적대적인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녹색일자리 개념/전략이 제대로 논의도 되기 전에, 냉소와 외면에 직면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시급히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구축하고 녹색일자리에 대한 담론과 전략을 논의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녹색일자리] 녹색경제가 ‘유해 일자리’ 창출할 수도 |  지구 차원의 ‘에너지 정의’원칙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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