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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恋せぬふたり, 2022)은 일본 공영 방송 NHK에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방송된 드라마 시리즈다. “밤 드라마”(よるドラ)로 편성되어, 조금 늦은 시간인 밤 10시 45분부터 방송되긴 했지만, 성소수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NHK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더 궁금해졌다.

극본을 쓴 건 요시다 에리카로, 국내에선 BL(Boy’s Love) 작품으로 꽤 많이 알려져 있는 만화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30歳まで童貞だと魔法使いになれるらしい, 줄여서 ‘체리마호’로 불림) 드라마 버전의 작가이기도 하다. 요시다 에리카는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으로 매년 우수한 드라마 각본을 선정하는 ‘무코우다 쿠니코 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작품은 NPO 방송비평간담회 TV부문 특별상도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음)에 대해 기대만큼 걱정이 앞섰다. 성소수자 캐릭터와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이전과 달리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오히려 편견과 오해를 가중시키는 이야기로 구성되거나, 성소수자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혹은 타자화되는데 그치기도 하니까.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함과 경계심을 동시에 품은 채 시청을 시작했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엔 ‘마루마루 슈퍼’ 영업기획부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코다마 사쿠코(키시이 유키노 역)와 ‘마루마루 슈퍼’ 점포에서 야채판매담당 직원으로 일하는 30대 남성 타카하시 사토루(타카하시 잇세이 역)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업기획부 내 사쿠코의 후배가 기획한 캠페인 ‘사랑하는 OO’의 현장 상황을 확인하러 간 슈퍼에서 사쿠코와 사토루는 처음 만나게 된다.

 

사쿠코는 후배의 기획을 칭찬하던 부장이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 같은 건 없으니까 말이야”라고 말하자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토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떤 로맨틱한 가능성을 담은 관심이 아니라, 무언갈 발견했다는 호기심으로서의 관심.

 

이후 사쿠코는 뜻하지 않았던 후배의 고백 사건과, 절친 치즈루와의 동거가 불발된 후 다시금 ‘연애’,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고민하던 사쿠코는 인터넷에서 “연애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이상하다”를 검색한다. 그리곤 ‘날개빛 양배추의 에이로 일기’라는 블로그에서 한 문구를 발견한다. “에이로(에이로맨틱) 에이섹(에이섹슈얼)의 지식에 관계 없이, 연애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쪽이 이상하다. 연애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에이로(Aromantic)와 에이섹(Asexual)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사쿠코는 그 단어의 의미를 찾는 것과 함께, ‘날개빛 양배추의 에이로 일기’ 블로그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자신의 경험인 것 같은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러던 중, 다시 슈퍼에서 사토루와 재회한 사쿠코는 날개빛 양배추가 바로 사토루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으로 이제 막 정체화하기 시작한 사쿠코와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으로 정체화하고 여러 경험을 해 온 사토루는 함께 “(임시)가족”이 되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족이 되는 건 누구일까?

 

사쿠코와 사토루가 “(임시)가족”이 되기로 한 이유는 두 사람 모두 혼자됨, 외로움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토루와 만나, 에이섹슈얼‧에이로맨틱으로서의 자신을 알게 됐지만 아직 ‘각오’를 하진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쿠코는 “연애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 혼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잖아요.”라고 말한다. “혼자인 건 좋아하지 않아서”, “앞으로 계속 혼자서 살아가는 건가 생각하면 견딜 수 없게 외로우니까” 에이섹슈얼·에이로맨틱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거다. 무성애자,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이라고 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혼자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사회적 편견은 사쿠코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 일본 Aro/Ace 단체 ‘As Loop’의 2020년 〈에이로맨틱/에이섹슈얼 스펙트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사자들에게 “연애·성적 대상이 아닌 파트너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51.3%가 파트너를 원한다고 답했다. 15.5%는 그룹을, 6.6%는 복수의 파트너를 원한다고 답했다. 파트너를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1.7%였다. (출처: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검증팀 블로그)

 

그런 사쿠코에게 사토루는 “어떤 섹슈얼리티라 하더라도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혼자는 외로워’라는 마음은 ‘제멋대로’인 생각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자신도 답을 알지 못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그 감정에 솔직해도 된다고. 그렇게 공통의 감정을 나누던 두 사람은 “연애 감정 없는 (임시)가족”으로서의 실험에 나서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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