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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이 문장에는 마치 고독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생각이 들어있다. 여자는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 없을까? 조용하고 고독한 시간이 다른 성별들에겐 필요 없는 것일까?

 

아멜리 뿔랑의 동굴

 

⟨아멜리에⟩의 원제는 ⟨아멜리 뿔랑의 멋진 운명⟩이다. 당시 짝수 글자로 영화 제목을 짓는 것이 유행하던 탓에, 수입사는 ‘아멜리’의 이름에 아무 뜻이 없는 ‘에’를 덧붙여 ‘아멜리에’를 완성 시켰다는 속설이 있다. 주인공 이름은 제목과는 달리 ‘아멜리에’가 아닌 ‘아멜리 뿔랑’이다.

 

 
▲ 장 피에르 주네 연출 영화 ⟨아멜리에⟩ 장면 중

 

아멜리는 어릴 적부터 혼자였다. 어머님을 일찍 사고로 여의던 날, 한 짓궂은 어른이 어린 아멜리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전부 너 때문이라고. 아빠는 자신의 일로 바쁘고 아멜리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를 빠르게 모아 놓은 영상들로 이뤄져 있다. 손가락에 산딸기를 끼우고 먹는다든지, 본드를 손에 붙였다 뗀다든지, 색종이를 오려서 후 부는 등의 놀이들이다. 그리고 얀 티에르상의 쓸쓸한 음악이 흐른다. 오프닝부터 고독이 관객의 온몸을 감싼다.

 

아멜리의 삶 자체가 동굴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동굴에서 아멜리는 무엇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영화는 아멜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제3자의 내레이션까지 덧대 촘촘히 나열한다. 이것은 장 피에르 주네의 단편 ⟨쓸모없는 것들⟩(1989)에서 나왔던 연출 방식이다. 한 인물을 보여주며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소한 것들을 주르륵 나열한다. 그것이 과연 쓸모없는 것인지 되짚어 보게 만든다. 인물의 사소한 특징까지 알게 되면 더 이상 그 인물은 멀리 보이지 않는다.

 

“세이브 더 캣”이라는 말이 있다. 주인공이 관객에 호감을 얻기 위해 영화 초반에 고양이를 구하는 등, 선한 행동을 하나 반드시 해야 한다는 영화계의 전통 깊은 말이다. 장 피에르 주네는 아멜리가 고양이를 구하게 하는 대신 인물의 여러 특징들을 내레이션과 빠른 영상으로 마치 소설처럼 과감히 늘어놓음으로서 관객과 인물의 유대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아멜리는 카메라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관객과 아멜리 둘만의 관계가 생긴 셈이다. 아멜리가 동굴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관객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서사에 진입하게 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왜곡되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영상화하듯 광각렌즈를 사용해, 인물을 가까이 촬영하는 샷에서 인물이 왜곡되어 보이게 한다. 광각렌즈는 멀리서 찍었을 때는 심도가 깊어 초점을 여러 곳에 맞출 수 있지만, 촬영하는 대상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왜곡되어 보이게 한다. 이 영화는 광각렌즈를 통해 함부로 타인의 삶에 다가가는 것은 그 인물의 특이하고 괴랄한 부분까지 감내해야 함을 시각화한다. 잔뜩 다가간 카메라의 렌즈에 비친 아멜리의 눈은 크고 턱은 작아 기괴하게 보인다. 영화 자체가 기괴하진 않다. 영화는 화려한 색을 사용해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고독은 귀여운 거야’ 마냥 외롭던 나에게 주는 근사한 위로였다.

 

⟨아멜리에⟩는 아멜리의 원 샷이 주된 동력이다. 아멜리가 다른 누군가와 한 앵글에 잡히는 일은 거의 드물며 카페에 상주하는 다른 인물들 또한 그러하다. 그들 모두 각자의 문제를, 동굴을 안고 있다. 이를 원 샷을 통해 함부로 타인의 앵글에 들어가기 힘든 사회를 설파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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