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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샘’ 최현희 교사가 쓴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중. ©위고

 

‘마중물샘’(최현희 교사의 별칭)의 단독저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막연히 페미니즘 교육을 주제로 한 것 아닐까 예상했는데 ‘회복 일지’라는 부제를 보고 더욱 반가우면서 한편 만감이 교차했다. 2017년 최현희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을 남학생들이 전유하고 있는 문제를 말하며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고, 몇몇 언론사의 허위보도가 더해져 혐오 세력으로부터 민원과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당시 나와 주변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교사가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이나 관련 청원 캠페인 참여 등으로 희미하게나마 ‘연대’하고자 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갔지만, 최현희 선생님은 몇 년간 무너진 일상과 건강을 홀로 ‘재건’하고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무참한 사회적 폭력의 한 가운데서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아야 했던 당사자는 그 시간을, 거기에 연결된 본인의 삶을 어떻게 보냈을까 가슴이 아려왔다. ‘사건’ 뒤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다. (달리)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의 공동운영자이며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다.

 

최현희 작가의 책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부제: 페미니스트 교사 마중물 샘의 회복 일지, 위고, 2022)

 

책을 읽으며 성평등 교육현장에서 ‘백래시’를 겪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친 폭력의 경험이 겹쳐지고, 상처 속 웅크려진 기억이 떠오른다. 4년 전, 스쿨미투가 일어난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을 때, 약속된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스쿨미투 사건 해결을 지원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당시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들이 내 수업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학내에 성평등 이슈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학내 갈등을 유발한다”며 예정된 수업을 취소했다.

 

수업 취소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면서 스쿨미투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과정에, 상식 밖의 공격과 위협을 받았다. 동료들은 내게 ‘혼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학교에 수업을 다닐 때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보디가드처럼 동행했다.(실제로 페미니즘 교육의 ‘증거’를 남기려고 관계자가 수업을 몰래 녹음하거나 촬영하다 발각된 경우가 있었다.)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다녔던 일상의 공간들은 누군가에게 돌을 맞을까봐 피해 다녀야 하는 곳이 되었다. SNS도 누군가 감시하지 않을까 접속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를 음해하는 가짜정보와 허위보도가 나왔을 때에는 충격이 몸으로 전해져 한동안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도 했다.

 

모든 일상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치열하게 싸운 끝에, 교육청과 학교에서 백기를 들어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때, 수업을 신청했던 학생 중 80%가 결석했다. 내 수업에 출석한 학생들은 그곳에 돌아오는 데 적지 않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수업을 강행하기까지 혼신의 힘으로 ‘용기와 결심’을 쥐어짜냈다. 감사하게도 든든한 동료들과 더불어 전국 5백여 개의 단체와 천여 명의 시민이 ‘성평등 교육 정상화’의 목소리를 함께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 나를 짓누른 것은 두려움보다 외로움이었다. 곁에서, 또 멀리서도 자기 일처럼 돕고 걱정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있음에도 어떤 것들은 오로지 혼자 겪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만 아는 고통이고, 혼자 통과해야 하는 터널이다.’ 어느 순간 그 가혹한 진실을 깨달았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 위로 막막함과 서러움이 덮쳤다. 승리나 보람을 느끼기엔 너무 다쳤고, 그래서 허무하기도 했다. 무너진 몸과 일상을 복구하는 것 또한 온전히 내 몫이라는 사실이 억울해 화가 났다. 그때 허위기사를 내고 악플을 달고 험담을 하고 악성 민원을 넣었던 이들은 다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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