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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서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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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님(김지우)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즐겨본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장애 치유 경험을 주제로, ‘예쁘게 걷기 위해 수술한 나, 또 수술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짧은 토론 영상을 올렸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그는 10살 아이 시절에 “예쁘게 걸을 수 있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감행했다. 고통은 극심했고, 무엇보다 예쁘게 걷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 휠체어를 만나고 새 세상이 열렸다. 걷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쁘게” 걷기 위해 굳이 수술을 받아야 헀을까?

 

이런 고민은 비단 그루님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나은 몸을 가지기 위해,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비장애인의 신체와 가까워지기 위해, 수술이나 치료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피해나 위험요인 또는 부작용을 감수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다른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비용을 감당할 경제 사정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고민이고 말이다.

 

 

굴러라 구르님 유튜브 채널 “예쁘게 걷기 위해 수술한 나, 또 수술해도 괜찮을까요?” (2022년 8월 6일) 중에서 https://youtube.com/watch?v=TYcu4roAms4

 

그루님은 오래 걷진 못하지만 걸을 수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특성상 까치발로 걷는데, 무척 빠르다. 그루님의 영상 토론에 참여한 고려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 이민구 교수는 까치발로 백 미터 달리기를 13초에 끊는 장애인 선수가 있다고 알려주며, 그루님의 까치발이 빨리 걷는데 적합한 발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루님은 비틀린 발을 가진 장애인이 아닌 “빨리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새롭게 감각하게 되었다고 신기해했다. 비장애인처럼 되기 위한 수술이나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장애의 몸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듯했다.

 

나는 김은정이 쓴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을 읽고 난 후라, 그루님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도 상당할 것이다. 장애를 극복할 무엇이라고 여겨 온 뿌리 깊은 비장애 중심주의 사회가 장애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며, 교정되고 퇴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의학적 치료를 통해 질병과 장애를 없애고 건강을 회복하는” 치유가 당연한 듯 요구된다.

 

‘치유 폭력’은 장애나 질병을 삶의 다른 방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과연 ‘치유 폭력’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 김은정은 “장애를 인간 다양성의 가치 있는 한 부분”으로 여기지 않고,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보다 치료를 우선시 하는 관점에 도전”할 것을 제안한다. 그루님도 수술이나 재활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고 장애의 몸 그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왜 몸을 포기하냐’며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 취급받게 되는 현실을 토로했다.

 


 김은정 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부제: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강진경 강진영 역, 2022.

 

장애를 치료하는 “재활 훈련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반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전반적인 환경, 프로그램, 실행 방식, 직업에 포함시키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되는 특정한 지식, 도구, 자원을 당사자가 갖추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즉 사회적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보다, 장애인 개인의 개조에 기대는 것이다. 장애를 소외시킨 채 진행되는 훈련-재활-회복-치유의 고된 과정은 “장애인을 가족과 지역 사회에서 분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미래에) 유예시킴으로써 현재로부터 분리”시킨다.

 

노르웨이의 언어학자이자 척수근육위축증으로 인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얀 그루에도 책 <우리의 사이와 차이>(손화수 옮김, 아르테, 2022)에서, 교통사고 후 휠체어를 태워 내보내면 되는 사람을 걸으리란 보장도 없는 보행 훈련을 수년간 치르게 하는 ‘치유 폭력’을 비판했다. 그도 평생 해 온 물리치료를 중단하고 수술을 포기한 후, 오히려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회복했다고 말한다. 그는 비로소 “스스로 결정한 방식대로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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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제는 ‘장애와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이다. 의학 역사학자 줄리 리빙스턴은 개인의 정체성으로 규정되는 장애 대신 ‘쇠약’(dibility)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 쇠약은 “손상, 결여, 몸의 어떤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하며, 장애와 질병은 물론 노화로 인한 몸의 상태를 포함한다.

 

이 말에 무척 공감한다. 내 몸은 장애로 규정되진 않지만 많은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고, 이로 인해 삶을 상당 부분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덜그럭거리는 관절은 통증을 일으키고, 시력과 청력은 물론 체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쇠약’한 몸을 ‘치유’한다는 수많은 의약품과 시술이 대대적인 몸 재건의 선봉에 서고 있고, 바야흐로 디지털 헬스의 세상이 열리고 있지만, 당장 집 밖을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나같은 이들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쇠약한 이들의 과제는 내 몸이 디지털 ‘치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조건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쇠약’으로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 ‘치유’하지 않은 채 삶의 환경이나 조건과 협상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더 이해하게 되는 요즘이다. 무릎 통증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도,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어렵게 한다. 장거리 운전은 포기한 지 오래고, 한나절이면 해치우던 가사노동도 옛날이야기다. 느려진 내 몸은 이제 매우 더뎌진 시간 감각에 익숙해지며 살아간다. “장애(쇠약)는 이겨낼 것이 아니라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이 말을 새긴다. (윤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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