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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①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페미니즘을 말하기 두려운 학교

 

어느 날 초면의 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와 부탁했다. ‘개인 주제 탐구 보고서 주제를 페미니즘으로 하고 싶은데, 참고할 만한 책을 좀 추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교내에서 성평등 교원 학습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선생님이 이 학생에게 나를 소개한 것이었다. 잔뜩 신이 나서 이 책 저 책 학생에게 안겨주던 나는 학생을 교실로 돌려보낼 때쯤 돼서야 덜컥 겁이 났다. ‘82년생 김지영’을 버스에서 펼쳐들었을 때 받은 눈총과, 독서 인증을 올렸던 연예인들이 받았던 비난, 바로 얼마 전 자신은 이 책이 싫다고 의사를 밝히던 동료 교사가 떠올랐던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대중적인 책조차 쉽게 불호를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되는데, 표지에 페미니즘이라고 써 있는 책이라면 어떠할까. 나는 책 제목이 보이지 않게 잘 가리고 가라고 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면구스러운 일을 한 것은 한 번이 아니다. 중학교에서 재직하던 어느 날, 돌연 졸업생이 찾아와 ‘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려고 한다’며 조언을 구해왔을 때도 그랬다. 나는 그 학생에게 제대로 조언을 해주기보다 ‘다른 학생들에게 페미니즘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괜찮은지’ 거듭 확인했다. 내가 페미니스트 교사임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해준 학생이었는데 이때만 떠올리면 부끄러움과 괴로움에 몸서리치곤 한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다’ 같은 억압적인 말에 분개해 길길이 날뛰던 나는 어디 가고, 걱정이랍시고 이 귀한 학생의 발목을 잡는 말을 했을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두렵다. 여성 영웅 소설 〈홍계월전〉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교원평가에 ‘꼴페미’ 교사라는 도배를 당했다는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작년에 지도하던 남학생들은 성범죄 예방교육을 할 때마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공공연하게 했으며, 여학생들에게 “너 페미냐?”라며 시비를 걸었다. 이에 더해 민원과 소송에 시달리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의 사례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학교 여성학 수업에서조차 접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일이 안전하지 않듯이, 학교 또한 그러하다.

▲ 학생들과 함께 읽은 책  ©오디

 

양성평등 교육 20년,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20년 전쯤, 내가 입학한 중학교는 양성평등 교육 시범학교였다. 입학 첫날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번호를 성별과 무관하게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였다며, 그 취지를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그때는 시범학교 2년 차에 접어든 해였는데, 선생님들은 그새 시행착오를 마치고 능숙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셨다. 특히 학사 일정에서 여유가 생기는 학기 말에는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교과통합 수업을 진행하였고 성차별적인 속담을 평등하게 바꾼 문장으로 부채를 꾸며 오래도록 사용했던 일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3년의 시범교육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남학생이 앞 번호 여학생이 뒷 번호가 되었고, 그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자라서 교단에 서기까지 학교 현장은 발전을 거듭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성평등 교육은 시범학교나 연구학교만의 일이 아닌 모든 학교의 일로 확대되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법정 의무교육 시수에 성평등 교육이 배정되었고, 시도에 따라 양성평등 주간을 운영하거나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교사들도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연수를 매년 이수해야 하며, 각종 연구회를 꾸려 성평등 교육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위시한 공공 교육기관에서도 교육 주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교육현장 속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성평등에 대해 말하기 더 어려워졌을까? 성평등 교육을 받고 자란 2030 세대가 여성혐오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을 보면 속상하기만 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세상은 이미 평등해졌다고 여기며, 성평등 교육을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것을 학업 스트레스 풀이로 즐기는 학생들까지 생겼다.

 

이들을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다. 입시 위주, 성과 위주의 교육과정 속에서 성평등 교육은 다른 주제 교육과 마찬가지로 영상시청으로 쉽게 대체되고는 한다. 수없이 밀려오는 사업들 속에서 양성평등 글짓기는 관성화 되어 주제만 제시되고, 학생들에게는 상장을 받기 위해 써내야만 하는 과제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어째 20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딱 그때뿐인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성별 이분법을 강조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인 ‘양성평등’이란 말 대신 ‘성평등’,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만 해도 반대에 부딪혀 힘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현실에서, 사회의 혐오로부터 학생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성평등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실 나는 점점 더 교단에서 성평등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있다. 공격적인 학생들이 많았던 해에는 교원평가 자체가 공포였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일명 ‘메갈 손가락’을 하며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학생의 수가 늘어나던 경험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로 전락한 것인지,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학생과 계속 충돌하는 것이 옳은지, 학교는 내부 또는 외부에서의 공격에서 교사인 나를 얼마나 비호해줄지 의문이다. 각종 공문과 행정업무에 시달리다가 종소리에 쫓기듯이 교실로 들어가다 보면, 성평등을 말하는 것이 그저 나의 욕심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생님들을 만난다. 교사 연수를 듣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기도 하고, 지역 선생님들의 독서 모임에 갔다가, 혹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조사하다가, 각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을 만났다.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 성인지 교육 강사 자격이나 성고충 상담원 등의 자격을 획득하여 정식으로 강의를 다니는 분, 조용히 혼자 성평등 수업을 실천하는 분 등. 다양한 선생님들의 사례를 들을 때마다 나의 무기력함과 두려움이 조금씩 벗겨지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도 없이 지나가는 3.8 세계 여성의 날에 그동안 홀대받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보자.’, ‘학습 활동에서 누락된 가부장제의 시대적 맥락을 학생들과 함께 짚어보자.’, ‘교과서에서 불평등한 내용이 나올 때는 문제 제기를 하자.’, 그리고 ‘혼자는 힘드니까 함께 할 선생님들을 만나 실천 사례를 나누자.’ 정기적으로 모여 이런 고민을 나누다 보니 두려움이나 일상의 바쁨에 치여 주저앉고자 하는 나를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 선생님들과 먼저 읽고 학생들과 공유한 책들 ©오디

 

그리고 또, 학생들이 있다. 예전보다 페미니즘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는 학생들이 많아진 만큼 페미니스트 학생들도 많아졌다. 올해 새로 옮긴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글을 세 편이나 받았다.. 머리카락을 자르며 또는 머리카락을 기르며 성별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수년 전 나에게 조언을 구하며 나를 페미니스트 교사로 만들어준 학생처럼, 페미니스트 교사를 찾아 헤매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시비를 걸면서도 서로 배우며 페미니즘의 관점을 넓혀가는 학생, 청소년들이 학교 안팎에 있다.

 

어떤 면은 성큼 나아가고 있고 동시에 어떤 면은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요즘이다.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단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이용하는 이들이 득세하는 동안, 성평등 교육을 가능케 했던 기존의 교육과정 또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도 든다. 그럴수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매일 학생들을 만나는 한 시간 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성평등 교육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힘든 시기일수록 작은 것부터, 함께 연대하면서, 긴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의 숙명이며 동시에 페미니스트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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