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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오늘도 독립 중: 장애여성의 독립 투쟁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20. 9. 6. 09:00

나는 오늘도 독립 중

<주거의 재구성> 장애여성의 독립 투쟁기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 진성선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는 많은 여성들이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는 “취업, 결혼, 출산”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학습되는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일반적인 여성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인 것처럼 요구되지만, 나는 예외였다. 독립하도록 요구받지도 않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장애여성인 나의 독립은 나이가 들고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해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너 혼자 나가면 제대로 살 수나 있겠어?”


나에게 ‘독립’은 내가 ‘일반’사람들조차 어려운 일을 ‘장애를 가진 몸’으로 해낼 수 있는지 증명해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혹여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네가 위험한 일을 당하진 않을까”, “혼자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서 굶어 죽진 않을까” 극단적인 걱정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을 하고 싶어하는 나는 그저 현실을 모르고 남들 하는 건 다 따라 하려는 ‘욕심 많고 고집 센’ 사람이 되었다.


장애 여성이 독립해서 살아가고자 했을 때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려운 법인데 장애인에게는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맞는 조건과 환경이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되고 완벽해지길 강요받는다. 이러한 현실이 조금 더 변화하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기숙사, 새로운 공간으로 몸을 이동한 첫 경험


20대 초반 내 용돈을 처음으로 직접 관리하게 됐을 때, 어머니와 매일매일 싸우면서 설득하고 협상했던 지난한 과정을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일을 시도하기도 전에 늘 누군가에 의해 내 미래가 예측되었다. 돌이켜보면 마음속에서 저항감이 들어도 어떤 언어로 말하고 대응할지 몰랐던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매일 조금씩 시도했던 작은 변화들이 불씨가 되어 더 큰 변화를 만들었다.


새로운 공간으로 몸을 이동했던 경험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집-학교 간의 통학 거리가 멀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익숙한 집을 떠나 주거환경 등 모든 게 달라진다는 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집에서는 나만의 공간이 없어 가족과 모든 것을 공유해야 했는데, 독립된 공간에서는 내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사생활을 말하거나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또 이전에는 관계의 폭이 넓지 않았던 반면,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 일상을 나누게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친구를 만드는 일이 삶에서 중요해졌고, 분명 전과는 다른 역동들이 쉴 틈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기숙사 내부의 물리적인 접근성만을 본다면 전동휠체어로 다니기에 대체로 편리했다. 장애 학생을 위한 호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출입구와 방의 문턱이 낮고 방 안에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었다. 다만, 나는 실내에서는 휠체어 없이 바닥을 기어서 이동했는데,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기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급한 경우 참느라 종종 곤혹스럽긴 했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적응했고 굴러가기, 엉덩이로 밀고 가기 등 이것저것 다양한 방식을 터득해갔다. 사실 방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거실을 사이에 두고 다른 방과 분리되어 있어 독립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컸고 그걸 포기할 바에야 이런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일생 생활에서 사용하는 전동휠체어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휠체어 리프트.


그러나 휠체어로 이동하며 기숙사까지 오르내리는 길은 곳곳이 위험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겨울에 눈이 내려 바닥이 꽁꽁 얼면 썰매장이 될 정도로 경사가 가팔랐다. 실제로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해마다 하나둘씩 썰매를 끌고 나와 즐겁게 탔다. 교내에 통행하는 차량은 물론이고 바퀴가 쭉- 미끄러져 헛도는 상황에서 나 역시도 발이 묶이게 되었다.


반대로 뜨거운 여름이 되면, 아슬아슬하게 경사로를 오르던 중에 모터가 과열돼서 연결선이 녹아버렸고 휠체어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경사를 내려오다가 고장으로 급정지하는 바람에 몸이 튕겨 나와 휠체어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그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기숙사 내부의 접근성이 편리하더라도 교내의 경사가 심하고 수평이 맞지 않는 길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자취생활 도전! 내 몸으로 쌓는 노하우


몇 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 보니 통금시간과 지켜야 하는 규칙들에 답답함을 느꼈다. 남은 학기는 기숙사에서 살지 않기로 결심했고, 방학 기간은 인근의 오피스텔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크게 반대했고, 경제적 지원을 일절 하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하지만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독립의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생활비 대출을 해서 보증금을 마련했다.


모아둔 돈이 한 푼도 없던 터라 월세 5만 원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창문이 없는 4평짜리’ 가장 작은 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휠체어는 밖에 세워두어야 했고, 활동지원사와 일상적인 보조를 받는데 동선이 꼬이기 시작했다. 창문이 없어서 불을 끄면 한밤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암흑 같았다. 햇빛이 들지 않고 환기가 안 되는 구조는 빨래도 잘 마르지 않을뿐더러 감기에 한 번 걸리면 꽤 오랜 기간 낫지 않았다.


나는 일상의 거의 대부분 시간을 활동지원사와 보내는 만큼 ‘보조를 받는 몸’과 ‘공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신체 보조를 받으면 활동지원사와 내가 같이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다. 자칫 동선이 겹쳐 부딪히면 다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을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방과 화장실과의 거리, 자주 사용하는/중요한 물건, 체력을 최소화하면서 출근 준비 시간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면서 집 안 구조를 배치하게 된다. (두 명의 장애여성이 살 때, 협소한 공간에서 네 명이 동시에 움직일 동선을 확보하고 같이 조율하는 건 꽤 복잡하고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매일 활동지원사와 몸으로 만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만큼 이용자 중심의 공간 세팅을 빼놓을 수 없고, 이건 내 삶의 주도권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 화장실 이용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몸에 맞게 제작한 나무 발판


첫 자취생활의 경험은 이후 집을 구할 때 어떤 조건과 환경이 필요한지 세밀히 고민하게 해주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구하면서 ‘창문이 크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최우선으로 신경 썼을 만큼 주거환경이 나의 건강과 일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만의 원칙들을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했고, 만약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라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전세 계약을 7차례나 거절당했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집을 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집을 알아보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필수적인 기준으로 두면 고를 수 있는 집은 열 건도 안 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전세 계약을 7차례나 거절당했다. 이유를 물어봤을 때 집주인들은 특별한 대답 없이 죄송하다고만 하거나 터무니없는 논리로 황당한 변명만 늘어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집 안에서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전을 누가 책임 지나?’라는 말이었다. 들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장애를 이유로 거부하는 건 차별이라고 말했으나 오피스텔 관리자는 ‘내부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나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을뿐더러 행여나 집 안에서 다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의 주체는 나다. 내게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정중함과 건물 임대인으로서 가진 의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태도는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항상 친절한 태도로 일관하며 대상화한다.  (이어진 기사 보기

 


한국계 미국 이민자 '성'의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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