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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밑줄 긋기> 장민지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집이 어떻게 경험되는가는 집이라는 공간과 그 내부에서의 사회관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발렌타인 (책 44쪽)

 

자유와 생존 그리고 욕망의 다른 이름, 집

 

이사를 하지 않은 지 5년이 지났다.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 집을 떠난 뒤 최장기록이다. ‘내 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세입자였을 때엔 1~2년 단위로 이사를 다니곤 했으니까. 현재 사는 집은 집값의 90% 이상 빚을 내 구입을 감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집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고 했는데, 그들은 자기 소유의 집을 이미 가졌거나 집의 상태가 건강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10년 넘게 남의 집을 떠도는 동안 몸과 마음에 ‘맺혀온 것’들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벽지에 곰팡이가 피지 않고 집주인이 아무 때나 들이닥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미래의 자유를 담보 잡히는 것은 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앞으로도 ‘내 집’이 없다면 내 삶에 온전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장민지의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서해문집, 2021) (촬영: 달리)

 

인생에 가장 큰 숙제로 느껴지는 ‘집’에 대해 아련한 향수를 품는 정서는 나에게 낯설면서 기만적으로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계급의 상징이면서 집단적 욕망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의 아파트 시세를 보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문화적 권력이 집중된 곳의 부동산 동요는 마치 모두의 인생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시와 불안을 퍼뜨린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청년들은 홀로 이주를 경험한다는 부담감과, 독립적인 삶에 적응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우울감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182쪽)

 

아버지의 집 밖에서 자유로운 독립은 가능한가

 

이렇게 인생을 건 투기의 도구가 된 집이 우리에게 그리운 안온함을 재생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우리가 자라는 동안 집의 그림자로 살았던 여자들의 보살핌과 희생 때문이다. 스무 살에 서울에서 아파트의 방 한 칸을 빌려 자취를 시작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집이, 아니 ‘내 방’이 더 이상 안전하지도, 안온하지도 않다는 사실이었다. 안전함은 아버지로부터, 안온함은 어머니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아버지의 집은 여성들에게 안전과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자유와 해방감에 있어서는 관습화된 금기를 통해 제약을 가해왔다.” (123쪽)

 

“전통적으로 집의 가족 구성은 이성애적 부부와 혈연관계로 이루어졌다. 집의 장소감은 이러한 관계 내에서의 보이지 않는 희생자, 특히 ‘어머니’로부터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성들은 전형적인 집의 장소감―위안, 편안함, 친밀감 등―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207쪽)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방에서 올라온 여자애’는 대도시에서 가장 어리숙한 존재 같았다. 청소년기 내내 꿈꾼 ‘고향과 부모님으로부터 탈출’을 실현해 어렵게 획득한 자유의 틈새가 벌어질수록, 내가 감각하고 감당해야 하는 위험도 함께 비례하며 늘어났다. 그래서 서울에서 독립하는 동안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인지 늘 혼란스러웠다.

 

특히 내가 느끼는 공포가 빚어낸 상상 속 폭력의 장면들은 때로 나를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넣었다. 반지하 방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동네에 몇 년간 살며 실제로 보고 들은 여성 대상 (성)범죄가 차고 넘쳐, 혼자만의 과대망상이라 할 수도 없었다. 24시간 부모를 비롯한 누구의 눈치나 허락 없이 살 수 있는 이 자유가 과연 위협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 늘 불안에 떠는 내가 지금 진짜 자유로운 게 맞긴 한지 끝없이 되물었다.

 

“특히 이러한 주거 공간의 보안 및 치안에서의 위험 가능성은 젠더적으로 여성 편향적이다. 여성청년 이주민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위험 의식을 제 몸에 각인시킨다. 그들은 이주를 통한 주거 공간이 제공하는 부정적 상상을 지속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상상의 발현은 젊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시선 때문이다. 사회적 관습에 의해 응시(시선)의 주체보다는 대상으로 존재해왔던 여성, 특히 남성 중심적 욕망에 익숙해진 여성들에게 내재된 부정적 상상은 일상으로서 집의 의미를 변형시킨다.” (115~116쪽)

 

왜 여성청년 이주민인가 

 

“여성청년 이주민들은 가부장적 질서의 감시를 탈주해 자신의 공간을 소유하거나 부여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가사노동에 대한 의무감을 점차 흐리며, 성적 주체성을 스스로 구성해나간다.” (101쪽)

 

“우리는 이들을 ‘남성 중심적 장소를 떠나는 여성 주체’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71쪽)

 

책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의 저자 장민지는 대학 입학과 함께 부산에서 서울로의 이주를 통해 처음 ‘(부모님의) 집’을 떠났고 이후에도 여러 번의 이주를 경험했다. 그는 이주를 반복하는 동안 ‘집’이 가지는 의미가 계속 변하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하며 자신처럼 성인이 됨과 동시에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주한 열두 명의 여성청년들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탐색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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