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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 기획전 <구경하는 집>과 소책자 <살 만한 집>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투기와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두 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서 살면 좋겠어』는 한마디로 집보다 중요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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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집이라는 공간과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정말 내 ‘취향’이었던 집은 없었던 것 같다. 원가족과 살았던 집들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고, 혼자 살았던 집들 또한 내가 고른 집이었음에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머물 수 있는 랜덤한 공간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다. 왜일까?
취향을 가지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훈련을 할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맞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시간이 쌓이는 거”지만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 성공한 것’이라 외치는 사회에서 뒷전으로 밀린다. ‘취향’ 따위를 얘기했다간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한 소리 들을 지도 모른다. “한 동네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들어선 아파트들은 ‘취향’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소멸시킨다.
“동네 골목길을 보면, 그곳이 그냥 길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흔적들로 가득해요. 이런 길을 싹 밀고 아파트를 세워버리는 것은 특정 브랜드, 특정 스타일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정해버리고, 우리한테 ‘돈 주고 여길 사라’고 통보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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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등 살 필요 없이 간단한 짐만 가지고 오면 된다는 풀옵션 집들은 또 어떤가? 집을 빌리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것을 가정하지 않는 이런 집들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간일 순 있다. 하지만 이런 집들이 늘어나고 언론, 방송 등에서도 그런 옵션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과 생각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기 기준에 맞는 걸 찾을 수 있는 감각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로 가자’라는 메시지가 방송에서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냥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구나, 방송매체가 집에 대한 욕망을 그런 식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랑)
월세, 전세, 매매, 투자 등에서 등장하는 숫자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 5평짜리 집에 등장하는 숫자. 이 숫자에 가려진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은 정말 묻혀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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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엔 누가, 어떤 가족이 살 수 있나요?
부동산으로 이야기되는 집엔 ‘누가 살 것인지?’라는 중요한 부분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집의 가치는 오로지 ‘얼마나 가격이 오를 수 있는가’니까. 한편으론 ‘누가 살 것인지?’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다수의 공인중개사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것, ‘누구랑 살아요? 혼자 살아요?’ 이런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정상가족’ 범주에 벗어나는 이들은 당혹스럽다.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 속엔 다양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퀴어인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 아버지와 같이 사는 사람, 이혼한 사람, 비혼인 사람, 비혼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지만 싱글로 오래 지낸 사람 등. ‘정상가족’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에겐 집이라는 공간이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
“여성과 소수자들에게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욕망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불안정’이 아닐까 해요.” (지수)
여성과 소수자들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거의 전쟁터”라서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집”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만큼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부동산의 나라’에선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보장받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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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물건이라기보다 권리인 거죠. 공간에 존재할 권리. 그러면 집을 지을 때도 ‘아, 이게 사람이 살아야 되는 공간이니까 최소 10평은 되어야 하고 부엌이랑 거실은 분리가 되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텐데.” (노라)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은 다른 방식의 ‘함께/살기’ 도모한다. 사회주택, 쉐어하우스, 공동체주택 등에 살아보기를 도전하고, 나에게 맞는 구성원을 찾기도 한다. 정말 함께 살기도 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때론 성공하고 또 때론 실패하지만, 집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상상과 실험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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