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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 기획전 <구경하는 집>과 소책자 <살 만한 집>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투기와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두 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서 살면 좋겠어』는 한마디로 집보다 중요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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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집이라는 공간과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정말 내 ‘취향’이었던 집은 없었던 것 같다. 원가족과 살았던 집들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고, 혼자 살았던 집들 또한 내가 고른 집이었음에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머물 수 있는 랜덤한 공간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다. 왜일까?

 

취향을 가지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훈련을 할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맞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시간이 쌓이는 거”지만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 성공한 것’이라 외치는 사회에서 뒷전으로 밀린다. ‘취향’ 따위를 얘기했다간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한 소리 들을 지도 모른다. “한 동네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들어선 아파트들은 ‘취향’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소멸시킨다.

 

“동네 골목길을 보면, 그곳이 그냥 길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흔적들로 가득해요. 이런 길을 싹 밀고 아파트를 세워버리는 것은 특정 브랜드, 특정 스타일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정해버리고, 우리한테 ‘돈 주고 여길 사라’고 통보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오솔)

 

지난 6월 24~26일 서울 망원동 낙랑파라에서 열린 ‘줌마네’ 기획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김래희 작가는 “장막도시”라는 이름으로, 신도시 아파트가 지어지는 과정들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가는 자신이 주목한 것이 “장막”, “정확히는 장막이 주는 선명한 경계의 이미지”라 설명한다. “거대해진 장막은 마침내 한동네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사람들은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다. 도저히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의 욕망은 결코 이 지리한 경주를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일다

 

가구 등 살 필요 없이 간단한 짐만 가지고 오면 된다는 풀옵션 집들은 또 어떤가? 집을 빌리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것을 가정하지 않는 이런 집들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간일 순 있다. 하지만 이런 집들이 늘어나고 언론, 방송 등에서도 그런 옵션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과 생각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기 기준에 맞는 걸 찾을 수 있는 감각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로 가자’라는 메시지가 방송에서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냥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구나, 방송매체가 집에 대한 욕망을 그런 식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랑)

 

월세, 전세, 매매, 투자 등에서 등장하는 숫자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 5평짜리 집에 등장하는 숫자. 이 숫자에 가려진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은 정말 묻혀도 괜찮은 걸까?

 

▲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조혜경 작가는 “유기식물”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진행했다. 반려식물 인구도 늘어나는 만큼 유기되는 식물도 있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사람과 사물의 관계성, 소비되는 식물, 생명을 돌보는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집에 살고 있는 생명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일다

 

그 집엔 누가, 어떤 가족이 살 수 있나요?

 

부동산으로 이야기되는 집엔 ‘누가 살 것인지?’라는 중요한 부분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집의 가치는 오로지 ‘얼마나 가격이 오를 수 있는가’니까. 한편으론 ‘누가 살 것인지?’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다수의 공인중개사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것, ‘누구랑 살아요? 혼자 살아요?’ 이런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정상가족’ 범주에 벗어나는 이들은 당혹스럽다.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 속엔 다양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퀴어인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 아버지와 같이 사는 사람, 이혼한 사람, 비혼인 사람, 비혼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지만 싱글로 오래 지낸 사람 등. ‘정상가족’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에겐 집이라는 공간이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

 

“여성과 소수자들에게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욕망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불안정’이 아닐까 해요.” (지수)

 

여성과 소수자들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거의 전쟁터”라서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집”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만큼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부동산의 나라’에선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보장받기 쉽지 않다.

 

▲ ‘줌마네’ 기획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지수 작가는 주거권 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쫓겨나는 중입니다”라는 이름의 작품에선 여성청년이 겪고 있는 주거 문제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보증금 바로 못 줌, 곰팡이, 전세사기, 관리비, 야 너 임마의 돌림판” 속에서 때때로 ‘출렁거림’을 경험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다

 

“집을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물건이라기보다 권리인 거죠. 공간에 존재할 권리. 그러면 집을 지을 때도 ‘아, 이게 사람이 살아야 되는 공간이니까 최소 10평은 되어야 하고 부엌이랑 거실은 분리가 되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텐데.” (노라)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은 다른 방식의 ‘함께/살기’ 도모한다. 사회주택, 쉐어하우스, 공동체주택 등에 살아보기를 도전하고, 나에게 맞는 구성원을 찾기도 한다. 정말 함께 살기도 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때론 성공하고 또 때론 실패하지만, 집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상상과 실험을 이어나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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