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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지방 페미니스트들의 선거 도전기
“청년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걸고 지방선거에 떼거리로 나가면 너무 재밌지 않겠니?”
이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분명 재밌기야 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이의 눈빛이 너무나도 “네가 그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월 19일, 청주페미니스트연대 본 후보 등록 기자회견 현장 ©청주페미니스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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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언론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며 정치를 접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나는 정치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비판해야 하는 영역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대통령 선거라는 빅이슈를 맞았다.
2017년 19대 대선 때만 해도 ‘나는 페미니스트인 편’이라며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던 정치인들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SNS에 공유하기도 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에 앞다투어 가담했다. 의도적으로 ‘이대남(이십대 남성) 신드롬’을 일으켜 여성을 배제하고, 모든 사회적 위기를 ‘젠더 갈등’이라고 퉁치기도 했다. 마치 여성은 유권자가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답이 1과 2밖에 없어 보이는 정치 속에서, 나는 제3의 답을 찾고 싶었다.
얼마 후, 내가 속한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안의 백래시 대응팀으로부터, 청주시의회 의원 선거 예비후보에 떼거리로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는 작년 11월에 발족한 곳으로, 지역 내 페미니스트들을 연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발족 당시는 30여 명이었던 회원이 현재는 두 배로 늘어나 청주에서는 제법 큰 활동력을 가진 네트워크이다.
지방선거 출마 제안을 받고서, 나처럼 다른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안티-페미니즘 공격에 맞서 페미니스트로서 얼굴을 드러내고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으나, 사실 나에게는 그것보다는 ‘정치’라는 것 자체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의회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고려 대상이 되어본 적이 1도 없었으며, 여태 투표만 해봤지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하기에 나는 무척이나 샤이(shy)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함께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동료들이 있을 때 기꺼이 그 손을 잡고 이 사회에 페미니즘 정치를 외치고 싶었다. 정치의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에서 더 나아가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적극적인 정치의 주체로 서고 싶었다. 그렇게 손에 손을 잡고 ‘청주페미니스트연대’가 구성되었다.
거대양당 정치 떠받치고 있는 선거제도 속에서 고군분투
선거는 정말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라는 말로는 그 힘듦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우리가 선례가 없고, 표를 얻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기존의 선거 제도는 유권자보다는 거대 양당 정치를 떠받치고 있었다.
▲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통합공약 포스터 중에서. ©청주페미니스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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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문은 ‘연대’라는 이름 사용하기였다. 무소속이 연대를 구성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무소속 후보와 당적이 있는 후보가 함께 연대체를 꾸려 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무소속 6인에 노동당 소속 1인이 함께 ‘청주페미니스트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명함·포스터 등에도 이 명칭을 사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회의가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예비후보 기간에는 당적에 상관없이 연대체를 꾸려 7인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비후보로 결의한 사람들은 학생, 직장인, 활동가 등 다양했는데, 재정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모두가 본 후보까지 갈 수는 없었다. 이들 중 무소속 2인과 노동당 1인만 본 후보에 등록하기로 했다. 본 후보 등록 이후에는 청주페미니스트연대와 노동당이 함께 활동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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