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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개혁이 필요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④
-인터뷰어: 이상현(녹색당 前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
-인터뷰이: 정인해(인천 녹색당 사무처 활동가)
-기록자: 보코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성역할을 부여받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고, 여성과 남성 둘 중 하나로 저의 성별을 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 성소수자입니다. 한편 저는 여성입니다. 제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여성이라는 성별로 살면서, 동료 시민 여성들과 여성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며 평등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4월, 녹색당의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상현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는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글의 일부다. 이상현 전 후보에게 정치란 ‘있는 그대로 생긴 모양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인정받는 방식’이라고 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시민을 만나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들이 국회의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각 시·군·구의 장을 향해 ‘성별 정보가 표시된 선거인명부가 인권침해 및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과 긴급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는 중앙선관위에 ‘성소수자가 투표 과정에서 성별 표현과 선거인명부 상 성별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자 그대로 ‘요청’에 불과했기에, 투표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두 가지 성별로만 구분된 선거인명부의 표기는 법적 성별과 성별 표현이 다른 성소수자의 투표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분증에 표기된 성별과 성별 표현이 일치하지 않아서 투표 참여를 포기한 이들의 비율이 10.5%에 이른다.
사실, 투표장뿐만이 아니다. 여러 공적 절차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을 확인하는 과정은 필수로 여겨진다. 의료기관 이용, 보험 가입, 은행 상담, 휴대전화 개통, 인터넷 가입, 주택 임대계약서 작성 등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 과정에서 신분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영역에서 성별 정보가 꼭 필요한 걸까? 무분별한 성별 확인 절차로 인해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편견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가 되는 각종 통계와 실태조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쏙 빠져있다. 정책 수립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현 전 후보와 인천 녹색당의 정인해 활동가와의 만남은 각자가 공통으로 감각한 차별을 토대로 성사되었다.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자신을 정체화하며 같은 정당에서 활동해 온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 기록은 지방선거 며칠 전에 이루어진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이상현(이하 상현): 녹색당의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상현입니다. 논바이너리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함께 나눌 대화가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저의 경우, 표현되는 성별과 지정 성별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서 불편한 질문에 노출된 경험은 적습니다. 다만, 문서를 작성하거나 기록으로 드러날 때 위화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정인해(이하 인해): 녹색당의 인천시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당원 성별을 표기할 때 논바이너리로 기입했습니다. 최근에는 어린이·청소년의 정치할 권리와 관련한 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요. 논바이너리와 참정권을 연결지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 의제를 공론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상현: 오늘의 자리가 참 반갑습니다. 인해 님이 현재까지 투표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인해: 일단 저는 선거권이 생기기 전인 16세 무렵에 녹색당에 입당했습니다. 이미 정당법을 어긴 셈이죠. 그때부터 선거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난 20년간, 선거 연령이 두 차례 하향 조정되었는데요.(2005년 만20세에서 만19세로, 2019년 만19세에서 만18세로 조정됨) 처음 투표하러 갈 때, 일부러 교복을 챙겨 입고 갔어요. 참관인으로 참여할 때도, 올해 대통령 선거에도 교복을 입고 갔는데요. 제가 머리카락이 길다 보니, 신분증을 내밀 때 투표 관리인 두 분이 속닥이다가 성별을 물어보시더라고요. ‘대충 남자’입니다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형식상 비슷합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지만 남자 비슷해요’, ‘가끔 남자예요’ 이런 식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상현: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 굳이 성별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번거롭죠. 동일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한 감각도 느끼게 되고요. 국가인권위가 이 의제에 대해 개입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투표관리인이 성별과 관련한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선관위에 요청했는데요. 2020년 이후, 변화를 체감한 적이 있나요?
인해: 변화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투표 관리인의 속닥거림을 들었으니까요. 고작 이런 상황 때문에 저의 성별을 고민해야 하나 싶습니다. 국가인권위의 개입은 아무래도 권고에 불과하니까 강제적인 효력도 없었잖아요.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호르몬 주사를 맞은 지 2년차가 되어가는데요. 그 이후부터 어떤 공간에서든 저라는 사람이 교란하는 존재, 확정지을 수 없는 인간,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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