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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제주 달리도서관 이야기

 

※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 제주시에 있는 달리도서관 내부 모습. 달리는 ‘달빛 아래 책 읽는 소리’라는 뜻이다.   ©달리도서관

 

나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본명 대신 ‘수달’이라는 활동명을 (스스로 지어) 붙이고, ‘달리지기’로 지낸 지 5년 차. 달리도서관을 찾는 분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단연 “수달이라는 별명은 무슨 …?”이다. 말줄임표 안에는 아마도 ‘그렇게 닮지도 않았는데 왜?’라는 말이 담겨있을 테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수달’(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야생동물)을 그렇게 많은 분들이 귀여워하고 애정하고 있는 줄 몰랐다.

 

너무나 싱거운 이유라 듣고 나면 더 허탈해지는 그런 이름 ‘수달’은 ‘수요일의 달리지기’의 줄임말일 뿐이다. (심지어 2022년 5월 기준, 나는 토요지기다.) 수요지기, 토요지기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달리도서관은 요일마다 담당하는 지기가 다르다. 일주일에 5일을 열어두는데, 총 다섯 명의 지기가 하루씩 맡아 공간을 지키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월리/토토/목사/마음/수달 이렇게 다섯 명의 지기가 따로 또 같이 운영하고 지켜가는 곳, 이곳이 달리라는 공간이다. (‘목사’는 나보다도 더 많은 질문을 받곤 한단다. 당연히 그 ‘목사’는 아니다.)

 

제주 달리도서관의 ‘재칠의삼’ 운영 방식

 

달리가 이런 식의 운영을 해온 것은 사실 오래되진 않았다. 2009년 개관을 하여 한동안은 상근하는 지기들이 여럿 있었다 한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요일이나 시간의 구별 없이 달리를 지켰고, 그 덕에 늘 열려 있는 달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기가 되기 이전에도 달리 프로그램을 수시로 찾았던 나의 기억으로는, 달리는 늘 ON이었고 溫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열려 있는 공간을 유지하는 데 드는 수고로움에 대해서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어느 해, 개관 멤버였던 몇몇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일에 집중을 하게 되자, 그만큼의 공백을 남아있는 사람이 짊어지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됐다.

 

그 시기를 ‘공간 슬럼프’라고 표현한 토토는 “정말이지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문을 닫고 싶었다.”고 말한다. 근데 닫지 않은 이유는 “(공간을 내어준 선배들에게) 미안해서도 있지만 (내가) 너무 아쉬워서였다”고.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만든 공간에서 너무 큰 목적의식이나 대의명분을 따르려고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뒤로, 최대한 가벼워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 노력 중 하나가 함께 가벼워질 동료(지기)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명의 달리지기들이 모여 2018년에 ‘달리 시즌2’가 시작이 되고 지금의 요일지기로 정착이 된 것이다.

 

▲ 2018년 7월 11일, 제주여성가족연구원과 공동 주최한 중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페미니즘 리부트: 신자유주의, 한국영화, 젠더” 강의가 끝난 후.(왼쪽 위) 2019년 10월 31일, 달리도서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2019이어달리기>의 주자로 나선 토토 관장과 참여자들의 기념 사진.(오른쪽 아래) 앞으로의 10년이 어떠할지가 더 궁금하다는 이야기에 다시금 힘을 얻은 날이기도 하다. ©달리도서관

 

시즌2의 지기들은 대부분 (이전의) 달리 프로그램 참여자들이었다. 달리를 누려본 적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앞으로 누릴 프로그램들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렵고) 대체로 신나는 일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자’는 모토 아래,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필사를 해보겠다 하고, 누구는 타로카드를 배워보겠다 하고, 낭독모임을 하겠다, 드로잉을 배웠으면 좋겠다, 북클럽을 하겠다 등등.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101가지~’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게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많은 것들을 해보았고, 지금까지 꾸준히 하는 중이다. 어느 프로그램을 하든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오직 ‘좋아하는 일을 (이왕이면) 재미있게 하자’뿐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70% 재능이 30%)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달리는 주로 재칠의삼(재미 70% 의미 30%)의 자세로 임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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