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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경 에세이 <선별검사소 간호사의 일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길었던 격리의 삶이 마무리되고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이 시점에도 회복이라는 말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되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고요했던 밤의 모습도 조금씩 사라진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이들이 찾았던 곳, 때때로 오랜 시간 줄서서 기다려야 했던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또한 안녕을 고하고 있다. ‘OO 선별진료소 마지막 운영’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정말 엔데믹으로 접어드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살짝 마음이 들뜬다.

 

이런 시기에 만난 책 <선별검사소 간호사의 일기>(전유경 지음)는 코로나19와의 이별을 기대하느라 잊을 뻔했던 것들, 그리고 알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박주연 기자)

 

▲ 5월 20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독립출판물, 전유경 에세이 <선별검사소 간호사의 일기> ©일다

 

선별검사소를 찾은 사람들

 

저자 전유경이 일한 곳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 임시 선별검사소. 낙원동과 인사동 사이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노인들의 놀이터라 불리기도 한다. 노인들 뿐만 아니라 익선동과 인사동을 찾는 외국인과 젊은이들로도 붐비는, 세대와 인종이 혼재된 흥미로운 공간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그 특징이 조금 흐릿해지긴 했지만, 탑골공원 앞 임시 선별검사소를 찾은 사람들은 다양했다.

 

“선거철에는 모든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트는” 곳, “통곡하는 국회의원의 유세차도 지나가”는 곳, “이 말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확성기” 소리도 들리는 곳, 길 위의 사이렌 소리까지, 온갖 소리가 다 울리는 8차선 도로 옆에 차려진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는 직원 중 한 명인 저자는 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가씨가 싸가지가 없었다”며 싸움을 거는 이도 있고, 끈질기게 민원을 넣으며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러 번 찾아와 격려 선물을 전달하고 가는 익명의 기부자도 있었다. “저기 선생님 이거 하나 드리면 안 될까?”라며 탑골공원 무료 급식으로 받아온 음식을 나눠주려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마침 조금 한가한 시간이었던 저자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깨닫는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가는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할아버지는 검사보다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더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그렇게 잠깐의 즐거움을 찾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때때로 화를 불러오기도 했고, 반대로 즐거움을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몰랐던 어떤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 추운 겨울, “잠시 몸을 녹이러 난로 앞에 서 있는다. 조금 따뜻해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플라스틱 방호복 엉덩이 쪽이 너덜너덜하게 탔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전유경

 

확진자 수가 30만명이 넘어섰을 때, 전국 선별진료소에선 신속 항원 검사를 시작했다. PCR 검사엔 조건이 붙었고, 검사를 받는 일이 까다로워졌다. 동거 가족이 코로나19 확진이 되었을 땐, 보건소에서 확진자에게 보낸 문자와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해야 가족도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는 한 모자가 찾아왔다. “혼인하지 않은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검사하러 온” 이들이었다. 사실혼 관계인 남편이 받은 확진 문자는 있었지만, 등본이 없었다. 저자는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모자에게 주민센터에 가서 등본을 떼오라고 했지만, 등본엔 남편 이름이 없었고, 이들은 결국 “검사 받을 수 없음을 통지”받았다.

 

아침부터 줄 서서 검사 가능 여부를 문의하고, 주민센터에 가고, 다시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반복하는 모자를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모자가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들의 밝은 옷은 어두운 외투로 덮혀졌다. 이 모습을 본 저자는 “차별 때문에 반짝였던 색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표현한다. 사실 이런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고, 서로 돌보고 아끼는 모두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저자와 달리, 현실의 변화는 아직 더디기만 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질병과 그로 인한 위기는 제도의 틈 사이에 놓인 사람들과 사각지대의 문제를 더 도드라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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