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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밑줄 긋기>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22쪽) 

 

▲ ‘살롱드마고’에 입고된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난다, 2021) ©달리


절망은 익숙하고, 희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죽음은 매혹적이고, 삶은 지긋지긋한 숙제 같았다. 우울했던 10대의 그늘을 안고 입학한 대학 신입생 시절, 공강 시간을 때우러 혼자 학교 도서관에서 죽치곤 했다.

 

볕도 잘 들지 않고 먼지가 쌓여 퀴퀴한 시집 코너에서 최승자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우연히 펼친 그의 시는 첫 장 첫 구절을 읽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동시에 뇌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윤색하지 않은 어둠이 거칠고 낯선 언어로 내가 꽁꽁 숨겨두었던 그림자를,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불경스러운 감정과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 수록된 첫 시)을 읽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그 다음 장에선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로 이어졌다. 아 짜릿하여라! 그의 말은 위반적이어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일찍이 나 또한 세상에 대한 환멸, 죽음에의 충동을 수없이 느꼈기에 최승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의 여성 시인들과 만났던 시간

 

얼마 전 고등학생 대상 페미니즘 수업을 하며, 신여성 작가들의 역사와 삶을 다루었다. 학생들은 이광수, 김동인은 알아도 김명순, 나혜석은 처음 들어보았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소감을 받았는데 대부분 그 여성 작가들의 기구한 삶과 가부장제 사회에서 받은 혹독한 피해에 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천재적이었는지, 한국 근대 문학과 예술에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크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인상에 덜 남은 것 같았다. 나 역시 근대와 현대의 여성 시인들의 삶을 처음 접했을 때 ‘정신병자’, ‘행려병자’ 같은 명칭이 그들의 대표적 소개 문구에 들어가 있는 걸 무심히 보곤 했다. 뛰어난 여성들의 몰락이 마치 자연스러운 전개인 것처럼.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선구자의 길을 걷는 여성 작가와 예술가들은 그들의 사적인 삶이 작품 활동보다 한층 더 과하게 부각된다. 여성의 삶이 불행하고 불운하게 여겨질수록 작품보다 사건이 주요 서사의 자리를 차지하며 ‘명성’은 가십거리로 전락한다. 그것은 외국의 여성 작가들도 마찬가지여서 독보적인 예술세계와 대작을 남긴 실비아 플라스나 에밀리 디킨슨 같은 시인에 대해서도 늘 우울하고 고립된 이미지만 반복되며 주목받곤 한다. 그것은 같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작동하거나, 똑똑한 여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박복’하다는 인식을 부추겨 예리한 지성을 꿈꾸는 여성들을 위축시킨다.....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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