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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결핍’에서 ‘돌봄’으로

 

▶ 집에 관해 이야기되지 않았던 12가지!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www.aladin.co.kr

 

※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일다 

 

가난의 경험, 보편과는 거리가 먼 삶

 

내 정체성의 한 부분에는 원가족과 살던 때의 가난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병원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는 ‘원목’(병원목사)으로 일했던 아빠는 ‘하나님의 일’를 위해 애 다섯 딸린 집의 생계를 나 몰라라 했다. 늘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을 둔 엄마는 자녀를 굶기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어왔다.

 

주위에 평범한 가정환경을 가진 친구들의 경험과, 내가 겪는 가난의 경험에는 거리가 있었다. 차이를 감출수록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에 익숙해졌다. 남들과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내 정체성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꿈이 있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 꿈마저 나에게는 멀어 보였다.

 

▲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 5개 단체가 모여있는 공간인 아랫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 ‘나는 게으름뱅이가 아닙니다. 가난은 가족의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적혀있다. ⓒ홍주은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다. 사회에서 얘기하는 ‘정상’이라는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며, 여자와 남자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 이 두 가지에 동의하며 페미니즘을 받아들였다.

 

이후 가장 처음 한 일은 목사와 리더는 남성, 돕는 건 여성으로 성 역할이 구분되어있는 보수기독교를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매주 토요일 찬양팀 연습, 일요일엔 예배, 끝나고는 청년부 중창단을 하고, 방학 때는 단기선교를 가던 ‘열성 신자’였던 내가 ‘여성과 가난한 사람의 하나님’을 얘기하는 작은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변했다. 세계가 한 번에 뒤집히는 듯했다.

 

그런데, 주위에 페미니스트라고 대표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그동안 차별적인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며 평등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나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진보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던 듯 보였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새롭게 받아들인 페미니즘 인식론과 연결될 자원도, 고민하고 논의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여성’은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가난으로 비롯한 나의 경험은 늘 그랬듯이 사회 보편과 거리가 멀었다. 남들과는 다른 나의 경험에서 차이를 인지하고, 해석하고, 언어화하기란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긴 시간 쌓아온 습관대로, 나는 새롭게 마주하게 된 세계와 나의 차이를 감추었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편을 택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홍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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