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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없는 머시기마을 이야기② 보라글방, 글쓰는 여성들

 

매주 월요일 자정이 가까워지면 사과와 격려로 분주해지는 카톡방이 있다. 바로 ‘보라글방’ 단톡방이다. 보라글방 사람들은 매주 월요일 자정까지 분량과 형식이 자유로운 글을 카페에 올리고 화요일 저녁 8시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미리 읽고 만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이지만 매주 돌아오는 마감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힘겹다. 글을 쓸 때나 쓰지 않을 때나 마음은 무겁지만, 마감이 닥쳐서야 허둥지둥 글을 적어보는 건 글방 사람 누구나 비슷한 처지이다.

 

▲ 과제 마감 시간을 앞둔 보라글방 3기 단톡방

 

<요즘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일기에는 하염없이 문장과 문장도 아닌 것들을 끄적이면서도. 머릿속에는 항상 과제 마감 시간에 대한 압박으로 시계가 째깍거리면서도. 글방에 제출할 과제를 쓰려고만 하면 뇌의 전원이 차단되듯 생각이 멎고 손가락은 습관적으로 키보드의 백스페이스를 연달아 누른다. 일주일을 허우적거린다. 다음 주는 정말 잘 쓸 거야. 진심으로 다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바쁜 날은 바빠서, 여유로운 날은 여유로워서 글을 쓸 수 없다. 월요일 밤이 되어서야 힘겹게 노트북 앞에 앉는다. 토독토독 자판이 눌리며 생겨난 문장마다 검열한다. 구리다. 의미 없어. 진부해. 비문이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다시금 빈 문서를 마주한다. 하얀 한글창이 무섭도록 막막하다.> -미성, 보라글방 4기 「글쓰기 싫어서 쓰게 된 글」(2021년 12월 21일)에서 발췌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모였으나 남에게 보여줄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잘 쓰고 싶을 때는 오히려 더 써지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적어 낸 글은 글방 동료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문장마다 검열하다 결국 빈 문서를 마주하고야 마는 암담한 경험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 사람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글방을 찾아와 매주 자신을 괴롭힐까.

 

‘보라글방’은 머시기마을 사람들이 꾸린 이길보라 작가의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북토크 뒤풀이에서 시작됐다. 뒤풀이에서는 자연스레 잊혀가는 여성들의 서사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머시기마을 사람들은 연일 화제가 되던 ‘MZ 세대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MZ세대’는 일반적으로 ‘1981년부터 1996년까지 출생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머시기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MZ세대에 속한다. 하지만 뉴스 기사에 오르락내리락하는 MZ세대에 대한 묘사는 머시기마을 사람들의 다양성을 대변하지 못했다. 남성이 아니라서, 이성애자가 아니라서, 비장애인이 아니라서, 수도권 주민이 아니라서 외면당해온 이야기들, 들어주는 이 없던 이야기들을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 참가자는 이길보라 작가에게 “꾸준히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고, 이길보라 작가는 ‘어딘글방’을 통해 글 쓰는 사람으로 성장해 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른 참가자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보라글방은 없나요?” 이길보라 작가는 순간 멈칫했지만, 글방 스승인 어딘이 해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언젠가 사람들이 네게 찾아와 글을 가르쳐달라고 한다면 그때가 너의 글방을 시작할 때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글방 지기와 참가자들이 모였고 보라글방이 탄생했다.

 

▲ 2021년 여름, 한 차례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던 보라글방 1기, 2기

 

보라글방 속에서 학인들은 자신의 서사를 다른 누군가의 언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말해나가는 법을 익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안전하다는 감각 속에서 뜨거운 삶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글방 학인인 유진은 나라의 국토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거지를 잃고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던 지역을 취재했던 경험을 글로 썼다. 분명 꼭 알려져야 할 이야기를 기록한 작업이었지만 그건 대부분 마을 ‘남성’들의 목소리였다. 유진의 글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워져 온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많이 먹어." 어쩐지 남편과 조금 비슷한 말투와 표정을 가지신 아주머니가 생선 가시를 발라주며 말씀하셨다. 아주머니 얘기도 물어보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품던 찰나, 아저씨가 말을 붙인다. “이 옆에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정년퇴직하고 여기 마을 다시 돌아온 친구 있거든. 그 친구가 나보다 얘기 훨씬 더 잘해. 그 친구한테도 한번 가봐.” 그 친구의 이름은 천종명(가명), 멋진 사진을 잔뜩 가진 그의 이름은 천태수(가명)였다.

 

‘아주머니는 이 마을에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시나요? 아주머니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때 난 열심히 묻지 못했고, 수몰을 겪은 그 마을의 기록은 천씨 성을 가진 남성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임유진, 보라글방 1기 「‘우리’ 마을」(2021년 05월 13일)에서 발췌

 

글방 세 기수를 연달아 참여했던 한 학인은 비진학생활을 하며 느껴온 감정들을 글로 풀어냈다. 그 속에서 마주한 우울의 경험을 꼼꼼히 기록했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지 않는 비진학생활을 6년째 해오고 있는데 비진학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직전까지 열심히 사는 버릇이 생긴다. 미심쩍은 눈으로 대학 밖에서 얼마나 대단하게 사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자신도 그 시선에 내면화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8월 말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모든 알바와 대학 밖 청소년들을 위한 워크샵들을 쉬었다. 그다음 주 다시 돌아오는 일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귀찮다는 느낌과 덥다는 느낌 빼고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울증이 악화되었을 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온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다. 캄캄한 거실에서 불을 켜지 않고 누워 있던 저녁, 거기서부터 우울이 시작됐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은 지 3년이 넘었다. 우울증은 호전되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면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우울감이 악화하는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매번 다른 증상으로 힘들었다. 이번에는 무거운 느낌이었다. 우울이 시작되니까 아침에 일어나 약을 뜯어서 입에 넣는데 평소의 8배는 더 힘들었다. 팔과 다리에 추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약을 먹고 아침을 먹는 것만으로도 지쳤다.> -익명, 보라글방 3기 「우울이 오는 저녁에는」(2021년 9월 14일)에서 발췌

 

글방에서 2기부터 현재 4기까지 함께 공부 중인 베니수는 자신이 겪었던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자신을 위해, 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 

 

<나는 자해를 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깨고 싶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화를 참으려고 몸을 깨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으면 허벅지를 칼로 긁었다. 칼은 무뎌서 할퀸 자국만 남았다. 그런데 붉게 칼자국이 오른 허벅지를 보다가 미안했다. 딴딴한 나의 허벅지에게, 나를 아껴준 체육 선생님에게, 사랑한다고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춘 사람에게, 그리고 아팠을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상담 선생님에게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을 혐오하거나 자해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요. 차라리 화를 내고 물건을 던져요. 그래도 돼요. 본인을 해치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운동을 해요. 자전거를 탄다고 했죠? 자전거를 타요. 걷고 달려요. 춤을 춰요. 요가도 한다면서요. 그걸 해요. 본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데도 막힘없이 에너지를 발휘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신한테도 그렇게 해요. 그게 투쟁이고 운동이에요.”

 

감탄했다.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있다니. 낯설었다. 낯설고 좋았다. 그 말을 메모하고 방을 나섰다.> -베니수, 보라글방 3기 「바람이 불었다」(2021년 10월 5일)에서 발췌

 

우리에겐 이미 서사가 있었다. 많은 이야기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강렬하게 등장해 글방을 채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라글방과 같은 안전한 공간, 이야기를 경청해줄 타인이 아니었을까.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 또 그 얘기야? 지겨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어떤 아픔은 너무 아파서, 지나간 일이지만 여전히 아파서 자꾸만 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보라글방에서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바라보길 권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에 꼭 필요하니 계속 쓰기를 격려한다. 아픈 경험을 해체하여 한 편의 글로 완성해내는 과정을 통해 아프던 나는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나로 변한다.

 

글방 학인들은 자신의 글을 쓰는 것만큼 다른 이들의 글을 잘 읽어내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상대의 글을 읽고 단순히 좋다, 싫다를 넘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 어떤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내 피드백에 상대가 걸려 넘어져 무너지지 않도록 다정하면서도 예리한 피드백을 준비한다. 글에 대해 좋은 얘기만 듣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지라 간혹 피드백들이 아프게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글과 나를 분리하는 것에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글에 대한 피드백은 나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가 아님을 아는 것 또한 작가로서 중요한 훈련이다.

 

글쓰기가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어 여전히 삶은 고달플 테지만. 고된 일상 속에서 품을 내어 글을 쓰는 일 또한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서로의 글을 계속해서 궁금해하는 글방 동료들이 있기에. 살다 보면 토해내듯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다양한 글들이 세상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낼 것을 믿기에. 우리 앞에 마이크가 놓이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디에서든 계속해서 떠들어댈 것이다. 

 

[필자 소개] 미성: 보라글방 1기부터 4기까지 참여하고 있는 학인으로 현재 보라글방 4기의 글방 지기를 맡고 있다. writingmiseong@gmail.com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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