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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번호안내원 경견완증후군 산재 인정 투쟁의 기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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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머리 꿈많은 여고생으로 들어와 30여 년 성실히 자신의 몫을 다했음에도 끝내 ‘진부화 인력’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한 선배의 눈물겨운 호소에 우리 모두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 시간에 최고 275건씩(강원 춘천) 처리해야 하는 최악의 노동강도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며 일해온 우리는 이러한 부당한 처우에 맞서 개선을 요구하며 오늘부터 본사에서 농성에 들어간다.” -한국통신노동조합 성명서 <농성에 돌입하며> 1995년 5월 9일

 

1990년대 들어와서 한국통신 관리자들은 부쩍 이런 말을 즐겨 썼다. ‘진부화 인력’ 또는 ‘잉여 인력’. 이 말은 종종 전화번호 안내 및 교환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향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몸이 아프도록 일하는데 ‘잉여’라니.

 

그 즈음 114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고발한 기사의 타이틀은 이러했다.

 

<‘11초 넘기면 ‘감독대’서 녹음한 뒤 반성문 받아‘

 ’한 사람 하루 8백 건 직업병 시달려’

 ‘격무로 유산 일쑤…인원보충 시급’> (1989년 3월 24일자 한겨레신문 “통신공사 114안내원 감시”)

 

▲ “통신공사 114안내원 감시” 1989년 3월 2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기사가 말하는 일터에는 ‘잉여’ 즉 ‘남는’ 사람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114 노동자들은 꾸준히 진부화 또는 잉여 인력이라 불렸다.

 

한국통신 민영화…필수 공익사업이 “적자사업”으로 전락

 

한국통신이 민영화로 본격적으로 전환한 1998년 이래, 노동자를 ‘잉여’ 취급하는 경향은 강화됐다. 2001년은 한국통신, 아니 이제는 kt로 변모한 기업이 5년간의 구조조정이 완료되었음을 선언한 해였다. 그 구조조정의 결과로 6만5천 명이던 직원이 5만 명으로 줄었다. 놀라울 것 없는 규모였다. 애초 회사가 발표한 감원 계획은 2만 명이었다.

 

이 악명 높은 감원을 완료한 후, kt 임원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종종 나왔다.

“한국통신 내 적자 사업은 더 이상 없다.”

 

당시 한국통신은 10조원에 달하는 매출과 1조원의 순이익을 올리던 중이었다. 이 흑자 기업이 ‘적자 사업’이라 지적한 분야는 도서 지방과 오지의 통신 서비스, 군‧경찰통신망, 국제수동교환, 그리고 114 번호안내였다. 예전에는 ‘필수 공익사업’이라며 자랑스럽게 불리던 분야가 이제는 ‘적자’ 사업이라 불렸다. 동시에 기술이 ‘진부화’되었다고 판단되는 사업에도 칼날이 겨눠졌다. 이 칼날 역시 114 번호안내원들에게 향했다.

 

고종 때 처음 전화기가 들어온 이래로 통신 기술은 변화를 거듭했다. 1980년대 초 전국에 전화망이 구축된 이후, 전화를 연결해주는 교환원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됐다. 교환원들은 국제전화교환이나 번호안내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부서 이동은 사측으로선 감원의 기회이기도 했다. 연차 높은 교환원들은 ‘이참에’ 퇴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82년에는 아예 정년을 단축했다. 이 정년 단축은 ‘교환직무’에만 해당했다. 일반직 정년이 55세였는데, 교환원들만 43세가 되면 정년퇴직해야 했다. 뜬금없이 정년을 맞아야 했던 전화교환원(김영희 씨)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기도 했다. ‘남녀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을 어겼기에 정년 변경은 무효라는 취지였다. 한국통신은 교환직무에 대한 정년단축이지 성차별이 아니라 주장했지만, 이때 교환원으로 근무한 남성의 수는 7,480명 중 3명뿐. 사실은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해고 꼼수였다. 김영희 씨는 승소해 일터로 돌아왔다.

 

1980년대 후반, 컴퓨터가 보급되자 이번에도 나이 든, 아니 근속 높은 여성들은 퇴사를 종용받았다. ‘신기술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회사의 자의적 판단이었다. 책자를 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수백 개나 되던 숙련의 결과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과 신기술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칼집을 든 남성들에 의해 ‘잉여’ 취급되는 여성들

 

1990년대 중반 경견완 증후군에 시달리던 이들이 인력 충원과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했을 때, 회사가 말한 것은 곧 시행할 ‘자동화’와 ‘유료화’였다. 시대가 변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자동화로 번호안내 일이 줄어들고, 번호서비스가 유료화되면 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니 인력 부족 문제도 자동 해결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루하루 손목은 시큰하고 팔목은 저리고 어깨는 무겁기만 한데, ‘그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유료화’라는 건, 114 번호안내 서비스가 적자 사업이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돈도 안 나오는 분야에 ‘사람(쓰는 비용)’을 투여할 수 없으니 기다리라는 것. 114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적어서 ‘잉여’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수익 창출이 적은 곳은 늘 인력 감축을 염두에 두었기에, 이들은 ‘잉여’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남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회사든지 남성 위주의. 그러다 보니 칼집을 남성들이 들고 있잖아요.”(송윤숙, 당시 한국통신 노동조합 복지부장)

 

일할 사람을 모을 때는, 114가 ‘여자 직업’으로 최고라 했다. 때마다 월급 나오고 ‘앉아서’ 일하고 ‘애 낳고도’ 할 수 있으니 ‘여자가 하기’ 좋다고 했다. 친절과 상냥함이 필요하니 ‘여자 일자리’라고 했다. 통신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난 직군이라 ‘신문화인’의 직업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을 치울 때도 ‘여자’라서 치웠다.

 

“114는 희망퇴직 공고만 나오면 킬(kill) 1순위. 여자들이 하는 일도 별로 없는데 돈만 많이 받는다, 이거였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여자는 전업이 아니라고 생각하잖아요. 남자가 있으니까, 너네들은 먹고 사는데 그렇게 부담 없으니까 나가라는 식으로. 엄청 나갔죠.” (이재숙)

 

해고 부담이 없기에, 해고 1순위가 되는 것이다. 늘 해고를 염두에 두고서 사람 숫자를 계산하니, ‘잉여’ 취급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심지어 아픈 몸으로 일하는지를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14 여성 노동자들은 2박3일의 본사 농성과 두 달간의 조계사 농성 등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자신들이 어떻게 일하여 병들었는지를 보게 했다.

 

유료화와 분사화: 비정규직화되는 노동

 

이들은 “우리 싸운 거 아무도 몰라.”라고 말했지만, 114 번호안내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을 잘 아는 건 한국통신이었다. 싸워 휴게 시간을 되찾아 오고, 일상적인 감원에 대응했다. 기업 안팎으로 경견완 증후군에 대한 규정과 법을 만들었다. 여자가 나이 들어, 집안일 하다가 생긴 것으로 취급받던 통증에 이름을 붙이고, 그 책임이 회사에 있음을 알렸다. 그제야 회사도 더는 직업병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다 소용없어졌지요.”

 

투쟁의 성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시 노조 여성국장으로 직업병 인정 투쟁을 이끌었던 이재숙 씨의 말이다. 그는 정년퇴직까지 한국통신 사원이라는 명칭을 지켰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하지 못했다.

 

‘유료화’는 ‘분사화’ 계획을 내포한 말이기도 했다. 2001년 kt는 114 부서를 자회사로 분사화하는 계획을 발표한다. 114 번호안내 업무를 위탁한다는 말이었다. 근골격계 특별 검진, 휴게 시간 보장, 변형 근로 폐지. 114 노동자들이 싸워 얻은 성과가 위탁업체로 이어질 리 없었다. 1년 계약직이 ‘오래 일해 걸리는 병’을 호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2001년 한국통신 본사 앞, “114 분사화 철회를 위한 한국통신 노동자 총단결 총투쟁 결의대회” 모습. 다큐멘터리 <이중의 적>(이지영 감독, 2003) 한 장면으로, 영화는 2000년 12월부터 시작된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517일간의 치열했던 투쟁을 기록했다.

 

KT는 ‘번호안내의 전문화’를 위해 업무를 분사화한다고 했다. 이런 소리를 믿는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앞서 1만5천 명이 회사를 떠났을 때, 114 여성 노동자 4천 명도 회사를 나갔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3천 명의 비정규직 번호안내 노동자들이었다. 몸집의 4분의 1을 잘라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한국통신(KT)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이후 KT는 무리 없이 ‘인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지금까지 해고 부담이 적어 감원 1순위가 된 대상을 비정규직으로 다시 소환하는 방식이다.

 

KT는 114를 최우선 분사화 대상으로 선정했다.(이미 114 계약직 노동자들을 향한 해고가 시작되었고, 114 외에도 한국통신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계약직이 분사화된다. 계약직은 부담이 적다.)

 

자회사 거부하며, 본사 점거 농성을 벌인 114 노동자들

 

1995년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선거에서 승리한 한국통신 민주노조 집행부는,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패배했다. 함께 싸워줄 노동조합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114 여성 노동자들이 선택한 것은 ‘투쟁’이었다. 2001년 5월, 전국에서 온 114 노동자 600여 명이 경기도 분당에 있던 한국통신 본사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본사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강고한 단결 투쟁, 분사화를 박살 내자”

 

본사 로비에 울리던 구호는, 한 달이 지나도록 멈출 줄 몰랐다. 암담한 마음으로 본사에서 버티던 그때, 노동조합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통신 노조 이동걸 위원장이 회사가 추진하려는 114 분사화 방안에 노사합의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었다. 114 계약직을 포함한 계약직 노동조합의 파업이 180여 일, 정규직 114 노동자들의 본사 점거가 40일을 넘어가던 때였다.

 

46일째 농성을 해산한 후, 그럼에도 자회사로 가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

 

“저는 자회사를 안 가고 현장으로 왔죠. 3년을 견뎠죠. 영업직으로 보내졌어요.” (송윤숙)

 

KT는 이들을 영업직이나 현장직으로 배치했다. 송윤숙 씨도 버텼다. 수십 년 동안 전화를 붙들고 일한 사람에게 상품 판매를 하라고 했다.

 

“우리는 악질들이죠. 회사에서 봤을 때는, 나가라고 하는데도 46일 동안 자회사로 안 가고 분당 본사에 가서 숙식을 해결하고 투쟁을 하고 그러니까. 복귀하고 왔는데 우리들은 의식화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회사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물들인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를 자꾸 분리하려고 했죠. 장벽을 쳤죠.”

 

따돌림, 잦은 부서 이동, 멀리 떨어진 지역 지사로 발령. 보복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월급이 반토막’ 난다는 자회사로 갔다. 누군가는 아예 KT를 떠났다. 그리고 끝까지 버티며 정년퇴직까지 한 여성들도 있었다.

 

장시간-저임금-파견-위탁 노동의 상징이 된 ‘콜센터’

 

“우리가 싸운 건 아무도 몰라.”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있어서 찾아갔더니, “우리가 잘린 건 아무도 몰라.”라는 소리가 이어 나왔다. 도무지 세상이 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가장 앞서 잘리는 것은 여성이라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실직에 이름을 붙이는 사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 번도 소리 없이 잘리지 않았다. 내내 싸웠다. 아파서 싸우고, 잘릴까 봐 싸웠다. 조용히 회사를 떠나진 않았다. 그 소란스러움을 자긍심으로 기억하며 살았다.

 

“우리 자긍심 높게 잘 싸웠어요. 저희 진짜 잘 싸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시대에 그런 열정이 어떻게 하나. 우리 다 40이 넘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걸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자존심이 높아져요.”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자긍심을 기억하지 않았다. 한국통신 민영화에 앞장선 정부가 기억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최대 이윤 보장’이었다. 그 약속만은 지켜진 것은 분명했다. 경영진과 주주에게 돌아간 배당액이 순이익의 90%를 넘은 적도 있었다. 역대 KT 회장들은 임기만 끝나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114 분사화로 만들어진 자회사(위탁업체)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콜센터 기업 <kt is>와 <kt cs>이다. KT 외에도, 민간기업은 물론 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 콜센터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이 기업들이 ‘남녀고용 평등 우수기업’, ‘고용창출 우수 100대 기업 선정’,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특별상’ 등 각종 수상을 한 이력이 이어졌다. 그 세월 동안 한국에서 콜센터는 장시간-저임금-파견-위탁 노동의 상징이 됐다. 콜센터 업종의 여성 비율은 98%(2009년 기준)이다. (끝)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싸우고 견뎌내고 살아가는 일을 기록한다. 『두 번째 글쓰기』,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자 쓰러지다』, 『회사가 사라졌다』(공저), 『기록되지 않은 노동』(공저) 등을 썼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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