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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방송에서 보고 싶은 여성 캐릭터와 서사 (하)

 

2021년 방송 미디어에서의 여성 재현 방식은 분명 이전에 비해 나아간 부분이 있다. 기존에 반복되던 ‘전형성’과 달리 조금 다른 여성서사와 여성캐릭터들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앞선 기사에서 언급되었듯이 여전히 한계도 드러냈다.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2 한 장면. 예능 프로그램 <골때녀>는 많은 여성들을 실제로 풋살장 등 스포츠에 도전하도록 이끌었다. ©SBS PR

 

‘마르고 예쁜 비장애인의 몸’ 설정 값을 바꿔라

 

방송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몸’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팀 보라 활동가는 “요즘은 마네킹도, 바비 인형도 다양한 몸으로 만들어지는데 방송 드라마나 영화 등에선 여전히 정형화된 몸, 그러니까 마른 비장애인의 몸만 등장한다”고 꼬집었다. “여성이 마른 몸이 아닌 상태로 미디어에 나오면 안 된다는 게 미디어 산업의 암묵적 합의인 것 같다”는 것.

 

보라 활동가는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개그우먼 김민경 등이 크게 활약하고 있어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그의 몸을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도 이수근 씨가 중계를 하면서 김민경 씨가 등장하면 화면이 꽉 차 보인다고 표현하는 등” 문제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비장애인의 몸이 대부분인 미디어 환경에서 장애여성 재현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는 “장애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하더라도, 극의 전개를 반전시키는 요소로 등장하거나 인물의 특징이 매우 한정적”이라고 했다. 또한 “장애인을 계속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어 대중이 그것을 소비하게끔 만들뿐더러, 장애인에겐 장애로 인한 고통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려서 장애인의 일상을 궁금하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거기다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장애인을 잘 연기한다는 건, 장애인의 표정이나 몸짓을 그대로 따라는 것”이 되고 “이런 연기는 제작자와 연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곧잘 웃음코드로 소비”되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주 등장하고는 있지만 늘 비슷한 서사와 캐릭터 특징에 얽매여 있는 여성 청소년의 재현도 고민해볼 때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유경 활동가는 “여전히 청소년 캐릭터를 누군가의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존재로 그리는 점, 청소년이 등장했을 때 그 배경이 학교나 가정으로 고정되는 점, ‘성장 서사’ 속에서 청소년 캐릭터는 청소년 집단을 일괄적으로 ‘미성숙하며 치기어리다’라는 통념에 묶어버리는 점이 한계”라고 설명했다.

 

‘스컬리 효과’로 대변되는 미디어 속 여성 재현의 파급력

 

지금껏 보여진 여성서사, 여성캐릭터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유는 미디어의 재현이 가진 힘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경우만 봐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방송 이후 댄서라는 직업의 인지도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으며, 춤추는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또 얼마나 변했는지 말이다.

 

 
스컬리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미국 드라마 <엑스 파일>(The X-Files) 주인공 다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분)

 

민우회 보라 활동가는 “현실을 미디어가 재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미디어가 현실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컬리 효과(1993년~2002년 그리고 2016년~2018년 방영한 미국 드라마 시리즈 ‘엑스 파일’ The X-Files 주인공이자 의사/과학자로 나오는 다나 스컬리에 영향을 받아, 여성들의 수학, 과학, 공학 등 이공계 진출이 늘어난 효과를 일컬음)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로 여성 슈퍼 히어로를 단독 주인공으로 한 영화 <캡틴마블>이 ‘난 너에게 증명할 것이 없다’며 당당한 여성상을 제시하며 어린 여성들의 롤모델로 등극한 것”을 예로 들었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실제로 현실에서 다양한 여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다.

 

“장애여성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질문하면 여전히 20년 전의 영화 <오아시스>(이창동 감독, 2002, 사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비장애인 남성과 장애여성의 로맨스를 다뤘다. 중증 장애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지만, 장애여성에 대한 대상화나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를 답하는 현실”을 꼬집은 진은선 활동가의 말처럼, 방송 미디어에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장애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비율이 아직 5%도 안 되는 상황이라 규모가 적어서 다양한 재현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또 이주민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의 말처럼, 이주여성의 재현도 중요하다. 특히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 사회로 갈수록 이주민이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인력으로 자리해 가는 만큼” 이런 사회 변화를 잘 반영해야 하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이다.

 

자신과 연결할 수 있고 더 다양한 상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은 이들의 세상 또한 열어줄 수도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아직도 드러나지 못한 여성 캐릭터와 서사가 더 많아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민우회 보라 활동가는 “수사물에서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하고 남성이 그들을 보호하는 구도가 아닌, 여성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수사하는 이야기, 권력이든 돈이든 명예든 그를 향해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 주변에 있을 법한 여성들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 사회 규범을 벗어난 제멋대로 구는 여성이 사랑 받는 이야기, 특정한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는 이야기, 직장에서 연애 말고 ‘열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꼽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는 “이주여성이 주로 ‘피해자’로 그려지는 것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물론 “현실에서 이주여성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이주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걸 외면해선 안되지만, 그런 모습만 반복되어 보여지는 것도 문제”라는 거다. 이주여성의 피해 상황이나 어려움이 드라마에서 극적인 소재로 쓰인다는 건 결국 도구화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오영숙 대표는 “피해자인 이주여성을 돕는 이주여성들, 지원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주여성들도 많다”며, “이들의 모습이 미디어에서도 좀 더 드러나길 바란다”고 했다.

 

‘위티’ 유경 활동가는 “섹슈얼리티의 억압을 경험하는 청소년이 많은 만큼, 여성 청소년이 퀴어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 청소년이 한국 미디어에서 반복되어 온 성소수자 불행 서사를 답습하는 게 아니라 “억압에 맞서는 이야기”로 그려지길 원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소수자 정체성에 따라오는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의견은 공통적이었다.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 또한 “독립적이고 투쟁하며 적극적이고 도전하는 장애여성을 보고 싶다”고 했다. 장애여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깨는 모습이었으면 한다는 거다. 그런 재현을 위해 “실제 장애여성을 삶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조사한 후 캐릭터나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tvN 드라마 <마인>의 정서현(김서형 분)  ©tvN

 

현실의 다양한 삶을 조금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선, 실제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삶의 어떤 부분을 삭제하거나 감추는 거나 은근슬쩍 암시하거나가 아니라, 명확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홀릭 활동가는 “콘텐츠에서 ‘진짜’ 레즈비언 로맨스를 드러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앞으론 조금 더 과감해 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성소수자의 로맨스 재현에만 유독 애정 표현을 절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자는 거다. 또한 “단지 성소수자라는 한 줄기의 공통점만 있을 뿐 나와 연결된 게 전혀 없는 캐릭터가 아닌,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며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내 옆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2022년, 올해엔 작년과는 또 다른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방송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마인>을 쓴 백미경 작가, <구경이>를 쓴 성초이 작가팀 등 많은 여성창작자들이 활약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지금도 그동안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제작하고 있는 창작자들이 있을 테니까. 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반영한 ‘믓찐’ 여성캐릭터와 이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 창작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박주연 기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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