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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주인공 이용석, 최정민을 만나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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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나 몇 년 전이나 십 년 전이나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늘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20년 전에 위헌 판결 난 군 가산점 제도가 2021년에도 다시 언급되는 걸 봐도 그렇고, 성평등이나 성차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여자는 왜 군대 안 가냐”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남자라면 군대는 갔다 와야지”라며 군대와 ‘남성성’을 연결시키는 문화, 나이와 지위 등으로 사람의 관계를 위아래로 나누는 위계적 군대 문화도 사회 곳곳에 여전하다.

 

이렇게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군대 이야기’에 금을 내고자 한 이들이 있다. 징병제 국가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고 병역거부운동을 이어나간 이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도전을 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2003년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병역거부운동뿐만 아니라 무기거래 감시 등의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평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난 최정민, 이용석 활동가. 최정민 활동가는 ‘전쟁장사를 멈춰라’라는 피켓을, 이용석 활동가는 얼마 전 출간된 자신의 책 『병역거부의 질문들 - 군대도, 전쟁도 당연하지 않다』(오월의봄)을 들고 있다. ©일다


분단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쉽게 환영 받지 못하는 데다가 오히려 오해와 편견 속에 놓여 있는 병역거부와 평화운동, 그 18년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김환태 감독의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2020)은 2001년 12월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불교 신자이자 평화활동가인 오태양 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병역거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부터, 2018년 병역법 5조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정이 나오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 대신 대체복무가 가능해진 것,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평화운동 이야기를 담았다.

 

지겹게 반복되는 그 군대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군대 이야기를 보여 주는 영화 속 주요 인물인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최정민 활동가를 만났다. 병역거부운동을 하게 된 시작부터 평화운동을 확장해 온 이야기는 물론, 병역거부운동에서 왜 페미니즘이 중요한지, 약 20년의 시간 동안 거센 파도 속에서도 지지 않고 어떻게 ‘존버’할 수 있었는지 들었다.

 

병역거부운동의 태동, 여자가 무슨 군대 이야기를?

 

영화는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병역거부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되던 2000년대 초부터 조명하며 시작된다. 물론 이전에도 병역거부자들은 있었고, 특히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의 병역거부 선언은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관계 없이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 즈음 학생운동을 하던 이용석 활동가도 언론을 통해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선언을 접했다. 당시에만 해도 “양심이라는 말은 ‘양심냉장고’(1996년부터 방영된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이경규가 간다- 숨은 양심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에선 차량 정지선 지키기 등의 법규를 지키거나 도덕적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냉장고를 선물했다)에서 말하는 그런 양심 정도밖에 몰랐다”고 말하는 이용석 활동가. 병역거부를 결심했을 때도 “양심이나 비폭력에 대한 고민이 확고하지 않았”지만,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역거부운동에 뛰어들었고 최정민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병역거부운동를 시작한 사람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김환태 감독, 2020) 예고편 중

 

최정민 활동가도 학생운동에 이어, 친구들과 ‘평화인권연대’라는 사회운동단체를 만든 후 이리저리 배우러 다니다가 대만의 대체복무제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전해준 외국인 활동가는 “한국도 대만처럼 군사주의가 강한 나라이고, 아시아 국가로서 가부장제도 굳건한 곳인데, 한국에서도 (병역거부) 운동을 해 보는 게 어떠냐”며 제안했다. UN에서 병역거부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정리된 책도 건넸다. 최 활동가는 그 책을 번역하고 공부하며 군사주의의 모순을 알게 되었고, 감옥에 가는 처벌을 받으면서도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렸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하고 알린 최정민 활동가지만, 그가 ‘여성’이라는 점은 이 운동을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최 활동가는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여성이라는 게 운동을 하는데 방해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병역거부운동이) 공론화되고 나서 공론장에 나갈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는데, 여성이라는 점이 계속 방해가 되더라고요. 공론장에 진입을 못하게 했거든요. ‘여자가 무슨 군대 이야기를 하냐’며 경계하고 무시하니까 정작 논의해야 하는 부분을 논의할 수 없다는 거였죠. 당연히 기분이 안 좋았고… 그래서 늘 보따리를 싸놓고 있었어요.(웃음) 언제든 떠나겠다는 마음이었죠. 근데 이 운동 안에서 내가 버티고 살아남는 것도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일이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땐 항의 전화나 이메일이 많이 왔는데, 제 이름이 좀 중성적이잖아요? 남자인 척하고 답 메일을 보냈더니 공손하게 ‘선생님 제가 오해했나 봅니다’ 이런 답장이 온 적도 있어요. (웃음)”

 

최정민 활동가는 호탈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활동을 지속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테다. 영화에서도 병역거부와 관련된 토론회, 기자회견, 캠페인 행사에 ‘군복’을 입고 등장하는 중장년 남성들이 막말을 퍼붓는 장면들이 몇 번 등장한다.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도 받고 욕도 먹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니 다행일 따름이다. 이에 대해 이용석 활동가는 “병역거부자들이 아무래도 젊은 비장애인 남성들이다 보니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병역거부운동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해

 

2018년, 병역법 5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고, 2019년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 전까지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혔다. 영화 속에서도 오태양 씨에 이어 유호근, 임재성, 나동혁, 이용석 등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1년6개월형을 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병역거부자가 된다는 건, 감옥에 가게 되고 ‘범죄자’로 불리게 되는 것이었다. 별다른 범죄이력이 없는 초범에게 집행유예도 아닌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되는 일이 정말 흔치 않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병역거부자가 받게 되는 처벌은 꽤나 가혹한 것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김환태 감독, 2020) 예고편 중

 

그러다 보니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병역거부자(남성)들이 ‘평화영웅’처럼 여겨지게 되고, 병역거부운동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 온 여성 활동가들이 비가시화되는 경향이 생겼다. 활동가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두 활동가는 운동을 제대로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 페미니즘 시각을 가지는 것, 페미니스트로서 병역거부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으로서) 이 운동에 진입 장벽이 있다고 느낀 이후로, 전 이 운동을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또한 작은 군사주의를 무의식적으로 양산하는 곳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병역거부자 남성들은 1년 6개월을 감수하는 영웅으로, 여성들은 그 뒤에서 눈물 짓고 뒷바라지 하는 사람으로 나눠지는 일들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기도 했고요. 이를 바꿔나가고자 할 때 페미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군사주의 구조를 파헤치는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활동을 이어나가는데도 필요했던 거죠. 그런 인식이 없었다면 20년 동안 활동할 수 없었을 거고,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용석 활동가는 “병역거부운동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병역거부 선언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영장을 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젊은 비장애인 남성들”인데다 “추상적인 개념인 ‘양심적’ 병역거부를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교육을 많이 받은 고학력 남성이 중심이 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학력 문제가 계급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어떤 지점에선, 병역거부운동은 특권(privilege)과 연결점이 많은 운동이기도 하다는 거다. 이 활동가는 “페미니즘 시선을 가지고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려고 엄청 노력해야 했다”고 밝혔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자기가 잘난 줄 알았거든요. 저도 그랬고요.(웃음) 근데 감옥에 가니까 많은 돌봄과 배려가 필요하더라고요. 물론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도 있지만, 외부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거죠. 전쟁없는세상에서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후원회를 만들고 그걸 총괄할 후원회장을 선정했는데, 병역거부자가 이성애자 남성일 경우 그의 여자친구가 맡게 되는 상황이 많았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여동생이나 여자 사람 친구가 하게 되고. 이 일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성을 후원회장으로 지정한 적도 있는데, 남성들이 돌봄을 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거죠. 결국 또 다른 여성이 일을 맡게 되고, 그런데 이 여성은 후원회장이 아니니까 일을 해도 비가시화되고…”

 

여러 문제들은 단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어떤 게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일도 많았지만, 페미니즘 인식을 가지고 문제를 개선해 나가길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여자는 감히 끼면 안된다’던 공론장에서 차츰 여성 활동가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 또한 “병역거부자를 ‘지원’하는 운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는 구조를 흔들고 거기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자는 목표”도 세울 수 있었다.

 

암울했던 10년…‘무기거래 감시’로 운동을 확장하다

 

약 20년의 병역거부운동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을 보면 시기적으로 조금 빈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병역거부운동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 말기였던 2007년 9월,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허용’에 관해 발표하며 빠르면 2009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대체복무제를 철회해버렸다. 병역거부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최정민 활동가는 영국으로 떠났고 이용석 활동가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전쟁없는세상 활동은 또 다른 주요 멤버였던 여옥 활동가 홀로 이어갔다. 서로에게 미안해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2011년 최정민 활동가가 귀국한 후, 함께 ‘비폭력 트레이닝 워크샵’을 진행했다. 활동가들은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모두가 지쳤다는 걸 인식한 후 “그래도 괜찮다”고 합의했다.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고 정하고 나니, 여유가 생기며 주변이 더 보이기 시작했다. 강정마을 해군 기지 반대 운동과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보수 정권이 계속된다면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마련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전쟁없는세상은 반전운동 단체이고 꼭 병역거부운동만 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전쟁을 일으키는 다른 요소를 찾아서 막자, 대체복무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 때 밀어붙이자 했어요.” (최정민)

 

▲ 2021년 10월 22일, 서울ADEX(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시위 중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 ©전쟁없는세상

 

무기거래 감시 운동도 시작했다. 세계 반전운동 단체들과 교류하면서 이 운동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고, 함께 반전운동을 해나갈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운동을 확장할 필요성도 느꼈다. 또한 “병역거부자가 큰 ‘희생’을 치르기 때문에 이들만 주목 받게 되는 상황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과도 맞물렸다.

 

그러나 무기거래 감시 운동 또한 쉽지 않았다. “무기를 감시해야 하는데, 병역거부자들과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무기 공부부터 시작”했다. 재미도 없고 힘들었지만, 국방부 예산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워갔다. 2년마다 개최되는 서울ADEX(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 ‘전쟁을 일으키는 무기 거래를 멈추라’며 목소리를 내고, 국제단체들과 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고, 이후 대법원에선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병역법 위반 혐의를 ‘무죄’ 선고했다. 2019년 12월, 드디어 국회에서 대체복무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며, 마침내 양심적 병역거부가 ‘죄’가 되었던 시대는 문을 닫았다.

 

대체복무제 도입! 승리의 역사를 밑거름으로

 

약 20년의 시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더니, 최정민 활동가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병역거부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촛불집회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이길준 의경이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시민들과 함께 “농성을 벌였던 일주일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머물렀던 장소의 냄새마저 기억한다”고 했다. 이길준 의경의 일은 영화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이용석 활동가는 “(병역거부자로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날”을 꼽았다. “그 날 너무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감옥을) 나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앞으로 활동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제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나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때문에 포기한 사람도 있거든요. 그 분들 중에선 자기가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분들도 있어요. 활동 초반엔 저희도 경험이 많지 않았죠. 지금이라면 그 분들이 상처를 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마음이 그렇죠.”

 

▲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김환태 감독, 2020) 예고편 중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지만, 이것이 병역거부운동의 끝은 아니다. 지금의 대체복무제는 여전히 징벌적 성격이 강한 탓에, 기간도 현역군인 복무 기간의 두 배인 36개월이고 복무할 수 있는 곳도 교정시설로 한정되어 있다. 현역군인들처럼 ‘합숙’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시설이 교정시설밖에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용석 활동가는 “그건 핑계일 뿐”이라며, “충분히 다른 영역(사회 공공 서비스, 사회복지, 돌봄 등)에서도 대체복무가 가능하며 합숙 시설을 마련하면 된다”고 했다. 대체복무제도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가 있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 진보적 사회변화에 대한 집단적 반발)와 거기 가담하고 있는 정치권, 여전히 ‘나중에’로 밀어두고 있는 차별금지법 상황 등으로 답답해하던 중에, 병역거부운동과 평화운동의 역사, 승리한 순간과 활동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엿보았다. 두 활동가에게 ‘존버’하며 활동할 수 있는 비법을 묻자 멋쩍게 웃었다.

 

“사실 20년은 ‘존버’도 아니죠.(웃음) 어떤 운동은 100년씩 이어지니까요. 한 미국인 활동가를 만났는데 최근에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하는 사람 중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흑인 민권운동을 시작한 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의 승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거죠. 지난 역사를 모르면 다시 새롭게 출발하게 되니까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거든요. 승리의 역사를 배우는 건 굉장히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최정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하면 불안해 하는데, 일부러라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운동은 장기전이잖아요. 100미터 달리기처럼 해선 마라톤을 뛸 수 없죠. 좀 쉬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호흡을 가지고 간다면 그 또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이용석)    박주연 기자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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