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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기획: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① 가족의 구성

서른 셋을 앞둔 지금, 나는 참깨라는 고양이와 함께 1인 가구로 살아가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은 없고 은행 대출이자를 갚고 있지만, 지금의 일상에 만족한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만족감과는 별개로 나는 많은 사람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미완의 존재로 여겨진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직’ 자녀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이미 충분히 선택했음에도 이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남겨진 과제

 

지난 2005년, 한국에서 호주제가 폐지된 것은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였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적인 제도임을 인정하며, 다양한 가족 형태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유의미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호주제는 폐지되었고 분명 사회는 나아졌지만,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 법이 지금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범위’를 다룬 민법 제779조가 바로 그것이다.

 

해당 조항은 혼인, 혈연관계만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정책 역시 해당 조항의 정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 함께 사는 고양이 ‘참깨’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혜민

 

‘정상 가족’이 아니면 사회적으로 ‘비정상’이라고 여겨지고 제도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는 현실. 이 상황은 사실 나와 같은 1인 가구나 비혼 동거 부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정상 가족’에서 이탈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어느 날 당신도 ‘정상 가족’에서 이탈될 수 있다

 

10년 전,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셨다. 그래서 함께 살던 할아버지는 하루아침에 1인 가구가 되었다. 이 모습을 보며, 가족 형태의 유연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구든 ‘정상 가족’에서 이탈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당시 ‘조 씨 가족’의 고민거리는 병원비 문제와 갑자기 혼자가 된 할아버지의 일상이었다. 어떻게 음식을 만들지, 세탁기를 작동할지와 같은 사소하고도 중요한 것들이 문제가 되었다. 할머니가 해왔던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던 할아버지가 마주한 현실은 갑자기 1인 가구가 된 ‘평범한 한국의 중년남성’이 겪는 문제이기도 했다.

 

한편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7년 전, 엄마가 잠시 수술로 입원했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를 끓이는 법을 몰라서 엄마에게 설명을 듣고 수첩에 적어왔던 아빠는 ‘마늘을 넣으라’라는 말에 냄비에 통마늘을 넣었다. 이런 아빠의 모습과 할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정상 가족’을 지탱해온 가족 내 불평등한 관계

 

할아버지와 아빠가 겹쳐 보였던 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정상 가족’이라는 형태를 지탱하고, 가려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부재를 가족, 특히 며느리가 채우게 되고, 엄마의 부재 앞에 딸인 내가 더 조마조마했던 것. 그것은 바로 가족 내 성역할, 불평등이었다.

 

우리가 모두 동등한 가족 구성원이었어도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까? 며느리이기에, 딸이기에 더욱더 감당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는 가족 구성원의 돌봄 역할과 그 가치를 폄하하고 싶진 않다. 다만 ‘정상 가족’이라는 규범 아래 가려져 온 구성원들 간의 불평등한 성역할을 짚어내고, 이를 방관한 주범에 정치는 없는지 묻고 싶었다.

 

시민들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그 책임을 떠넘겨 숱한 불평등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민법 제779조를 통해서 말이다.

 

▲ 2021년 2월, ‘나혼자인천산다’ 소모임이 준비한 1인가구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이 “함께 살 권리 혼자 살 자유" 피켓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현재 가구 수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국민은 가족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000년 15.5%에서 2020년 31.7%로 급증했다. 비중으로 따져보면 ‘정상 가족’이라는 건 1인 가구를 의미하는 셈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 역시 혼인과 혈연이라는 경계를 벗어나고 있다. 지난 2020년, 여성가족부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혼인, 혈연 관계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법 제779조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정상 가족 포레버’가 아닌 사회가 된다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정상 가족’을 이룬 주변 사람들의 결정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이가 차면 이뤄내야 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허용하는 가족을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결정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생의 첫 독립이 결혼이 된 내 친구는 ‘집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결혼이기도 해서’라고 말했다. 연인과 동거하던 한 친구는 파트너가 위급할 때, 서명 하나 대리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결혼을 고민한다. 파트너가 동성인 친구는 결혼을 할지 말지조차도 고민할 수 없다.

 

아이를 낳을 경우, 어떻게 역할을 나눠 돌볼지에 대한 논의조차도 남편과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던 친구는 집에 혼자 남겨진 남편의 끼니를 걱정한다. 아이의 성을 남편 성이 아닌 내 성으로 하고 싶다는 의견에 대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친구는 파트너와 법적인 혼인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민법 779조가 폐지된다고 해서 친구들, 그리고 나의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가족의 정의를 폐지했다면, 나아가 가족 상황과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역시 함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를 통해 그다음 논의를 이뤄갈 수 있었고 나 역시도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가족의 제한된 범위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묶어버린 민법 제779조가 이제는 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 세상에서 참깨와 지내는 나는 더이상 ‘미완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혼자 살아간다는 것을 지극히 평범하게 상상하며 자기 돌봄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돌봄을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을 곁에 두며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선후보가 두려워해야 할 진짜 ‘가족’ 리스크

 

최근 대선판에 ‘가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선 후보들의 ‘가족 리스크’가 모든 뉴스의 메인을 차지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각각 아들과 배우자 등 가족의 도덕성 의혹에 연일 입장을 내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면서 대선 후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의 범위’가 무엇인지 솔직히 고민스러운 한편, 의혹에 대한 입장 역시 변변치 않아서 후보들에 대한 실망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만큼 국민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안겨주는 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가족 리스크’가 장악한 지금, 새로운 판을 이끌어줄 대선 후보가 없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가족 리스크’라는 소용돌이에 본인도 빠질까 뒷걸음질 치거나 결론적으로 대선판을 활용하지 못하며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정면 돌파할 후보 말이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진짜 ‘가족’ 리스크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그 자체입니다. 국민의 삶을 담아내는 정책,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의 나은 일상을 만들어낼 정책. 저는 준비되어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어 만들 사회는 ‘누구든 자유롭게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입니다.”

 

[필자 소개] 혜민. 고양이 ‘참깨’와 살아가는 1인 가구로서 여성단체와 정당에서 활동해왔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내가 나로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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