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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소성리 사드 투쟁장에서 만난 박형선 교무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일다 ildaro.com

 



▲ 사드기지 임시배치 타임라인


끝나지 않은 싸움 “사드뽑고 평화심자”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달마산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가 있다.

 

처음 성주에 사드가 들어온다 했을 때, 사드 배치를 막기위해 격렬히 저항하는 ‘성주촛불’이 이어졌다. 이후 사드 부지가 성주 성산포대에서 주민이 적은 소성리 달마산으로 옮겨졌다. 2017년 4월 박근혜 정부(황교안 직무대행)에서 발사대 2기가 배치되었고, 5개월 뒤 문재인 정부에서 발사대 4기가 들어왔다.

 

‘임시’로 들어온 사드가 알박기를 한다. 시간이 흐르고, 이미 배치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점점 익숙해졌다. 군사기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배치된 과정과, 사드가 한반도에 오는 미사일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문제점은 한미동맹과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주민들의 삶과 평화를 뭉개고 들어온 사드는 5년 째 ‘임시배치’ 상태다.

 

‘성주촛불’은 알았지만, 결국 성주 근방 어딘가에 사드가 들어앉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사드 투쟁은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국제정세와 국내정치, 전쟁과 평화가 뒤얽힌 문제는 복잡해보였고, 작은 마을의 군사기지 싸움이라니, 어느정도는 ‘끝난’ 얘기 같았다.

 

그러다 2019년에, 성주에 사는 글쓰는 동료가 소성리 사드투쟁에 열심히 연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누군가는 ‘이미 끝났다’고 쉽게 지나쳐버리는 자리,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소성리에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성리 주민들과 종교인들, 평화 활동가들은 1898일째(9월 22일 기준) 구호를 외친다. “사드뽑고, 평화심자!”

▲ 5월 20일 여섯 번째 경찰의 마을 침탈,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를 하는 박형선 교무의 모습이다. 5월 18일에 경찰들과 대치하던 도중 끌려 나오며 손목을 다친 상태다. (촬영: 하은)

[소성리 사드 투쟁은…]

 

사드는 안보 방어용이 아닌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를 구축을 위해 배치된 ‘공격용’ 무기이다. 정확한 지점에 도달하는 유도핵미사일이 개발되었고, 이후 미사일을 막아내기 위한 미사일 방어무기 개발이 야기되었다. 이제는 그 미사일 방어를 뚫는 미사일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평화를 내세우며 전쟁을 부추기는 미,중,일,러의 군비경쟁이 심해질수록 남과북,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반도를 다시 전쟁터로 만들지 않고, 세계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 사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33만제곱미터 이상 군사시설을 설치하기 전에, 환경적 측면에서 적정성 및 입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한다. 70만 제곱미터가 넘는 소성리 사드부지는 부지를 반으로 쪼개서 미군에 넘기는 편법을 사용하여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전략환경평가를 건너뛰고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처리했다. 적법한 환경영향평가를 요구하며 주민들이 사드배치 철회를 위해 투쟁하고 있음에도, 소성리 주민들이 포함되지 않은 민관군협의체에서 보상체계를 논의하여 투쟁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소성리 주민들과 종교인, 평화운동가, 그리고 소성리평화지킴이(연대자)들은 마을길을 지키고 기지공사를 늦추는 현장투쟁을 계속 해나가며, 사드배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참고: 강형욱 교무 인터뷰 및 녹색평론 통권 제154호에 실린 <‘사드’와 미·중·일·러 군비경쟁―’방패’와 ‘창’의 국제정치>, 2021년 6월 3일, 서재정)


옆동네 주임교무가 매일 소성리에 싸우러 오는 이유

 

처음 소성리를 찾았을 때, 마을 할머니들 사이로 곱게 쪽진 머리를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원불교 여성 교무(원불교 성직자)의 상징적인 머리 스타일이라 했다. 이후 소성리를 찾을 때마다, 늘 이곳을 지키는 세 교무를 보게되었다. 강현욱, 김선명, 박형선 교무는 종교적 실천에서 나아가 주민들만큼이나 사드 투쟁을 깊이 지탱하고 있었다.

 

▲ 박형선 교무와 임순분 부녀회장의 모습. 두 사람 모두 경찰에게 진압 당할 때 손목을 다쳤다. 박 교무와 소성리 주민들은 일상에 스며든 폭력을 함께 견디며 ‘우리’가 되었다고 했다. (촬영: 하은)


그 중에서도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박형선 교무를, 사람들은 ‘박공주 교무’라 불렀다. 마을회관에서 참외를 깎아 연대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봉고차를 끌고 할머니들을 태워 마을 밖 멀리있는 밭에 오이를 따러 가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을 촬영하는 박 교무는 늘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너털웃음을 불러들이고, 낯선 연대자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땡땡한 그 웃음소리와 부쩍 가까워질 때쯤 인터뷰를 청했다.

 

차타고 30분을 달려야 올 수 있는 옆동네 왜관의 주임교무가, 어떻게 소성리에 매일 싸우러 오게 된 걸까.

 

“처음엔 잠깐할 줄 알았지. 근데 지금 나는, 마을의 일원이 되어있는 거 같아요. 성주 소성리는 2대 종법사(성인)인 정산종사님이 탄생하시고 구도하러 떠난 구도길이 있는 곳이에요. 그길에 군부대가 들어오고 철조망이 쳐진거잖아요. 처음에는 성지에,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 사드가 왔기 때문에 (투쟁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죠. 이게 그냥 전쟁무기가 아니구나. 사드라는 게 미국 본토하고 평택, 일본에 있는 미군들을 지키기 위한 무기구나. 우리나라가 아직도 식민지였구나. 전쟁으로 먹고 사는 미국이, 전쟁에서 이기려고 갖다놓은 무기는 어느 곳에도 필요없다.”

 

내가 사는 ‘이곳’뿐 아니라 어느 곳에도 사드가 들어서선 안 된다고, 인식이 바뀌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건 비겁한거죠. 우리들이 막아야지. ‘정당한 일이어든 죽기로소 행할 것이요.’ 대종사님 말씀.”

 

인터뷰 내내 박형선 교무는 소성리 사람들과, 원불교 사람들, 평화 활동가들 모두를 ‘우리’라고 불렀다. “삶을 같이 살아왔잖아요. 5년 넘게.”

 

사드를 뽑기위해 매일 행동했다. 함께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말을 걸고, 끼니를 챙겼다. 삶을 나누었다. 물론, 삶 속에서 좋은 것만 나눌 수는 없었다. “폭력을 같이 겪으면서 ‘우리’가 된거지. 진실을 알게됐으니까 같이 싸웠고, 같이 싸우니까 같이 힘든 사람들, 우리가 되는 거잖아요.” 일상에 스며든 폭력을 함께 견디며 ‘우리’가 되어갔다고 했다.

 

반복되는 경찰 진압…‘상처 입죠, 그러나 혼자가 아니잖아’

 

소성리 주민들의 삶과,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를 뭉개고 들어온 사드는 계속해서 기지공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과 종교인, 평화활동가, 연대자들은 사드기지 공사를 멈추기 위해 기지로 들어가는 유일한 육로인 소성리 마을길과 다리(진밭교)를 지킨다. 밭을 일구고, 직장에 다니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기지에 들어가는 차량과 군인들을 막기위해 서로 돌아가며 길목을 지켰다. 생활과 싸움을 일상에 켜켜이 쌓아올렸다.

 

▲ 2021년 3월 30일, 소성리 마을길을 지나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길목을 마을 주민(할머니)들이 지키고 있다. (사진: 하은)


그런 소성리의 일상이 무너져 가고 있다. 5월 14일 새벽, 소성리 마을길에 50대가 넘는 경찰버스가 밀려들었다. 1천명이 넘는 경찰이 마을길을 포위했고, 몇십명의 사람들을 10여분 만에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미국에 사드 기지공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날 이후 경찰병력이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소성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고: 시야, “5월 18일의 침탈…소성리는 40년 전의 광주”, 참세상, 2021년 8월 18일)

 

경찰을 막으려던 사람들은 사지가 붙들려 나오고, 다치고, 병원에 실려갔다. 박형선 교무는 5월 18일 경찰과 대치하며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다 끌려나오면서 손목을 다쳤다. 몸이 다치는 것 만큼이나 마음 속 상처도 깊어졌다.

 

“요새 많이 힘들어요. 감정이 좀 격해졌어. 두근거림도 좀 생기고. 교무들은 기도하고, 선(禪)하고, 공부하고 이렇게 지내잖아요. 좋은말 바른말을 쓰고. 그런데 이런 싸움판에 들어오니까, 사람들과 싸우고, 욕하고, 원초적인 분노를 알게되죠. 우리 식구들이 다 다치잖아요. 부들부들 떨리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처음에 사드가 배치될 때 왔던 교무들은 싸움이 워낙 격하니까, 트라우마가 생겨서 다시 여기를 못오는 사람도 있어요. 소성리 사람들도 트라우마가 남고 힘들죠.”

 

며칠마다 반복되는 이 격한 폭력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 상처 입었고, 앞으로도 다칠 것이다. 그럼에도 견디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혼자 있지 않잖아요. 상황이 끝나도, 나랑 같이 싸웠던 사람들이 내곁에 있어요. 서로 공유하고 그 다음 일상을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게 굉장히 치유가 되요. 구호도 외치고,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끼리 웃고 떠들고. 내가 웃어야 어머니들도 식구들도 같이 웃으니까 웃음톤이 점점 높아지죠. 안하는 재롱도 부리고, 페이스북 라이브도 하고. 요즘은 농사철이니까 가서 양파하고 마늘 농사하며 어머니들이랑 하하호호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도.” 

 

▲ 6월 17일. 소성리비상대책위원회 건물에서 마을의 평화 활동가들과 다른 교무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환하게 웃는 박형선 교무의 모습 (사진: 하은)


소성리 사드 투쟁에서 내 역할이 뭐냐고?

 

박형선 교무의 말처럼, 그는 늘 사람들과 함께였다. 집회 때만이 아니라 밥을 먹고, 농사를 짓고 일상을 사는 매순간 마을 사람들과 주변을 살피고 챙겼다. 진밭교 앞 평화교당 천막(사드기지로 들어가는 진밭교를 지키며 기도하는 교무들을 위해 주민들이 천막으로 지은 교당)에서 생활하는 김선명, 강현욱 두 교무의 끼니를 챙기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소성리를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박형선 교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보였기에, 소성리 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아까 내가 주력이 됐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원씨네(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두 교무(김선명, 강현욱)님들이 주력을 하시는 거고, 지금 1500일 넘게 노숙을 하고 계시잖아요? 나는 그분들이 활동할 수 있게 서포트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서.포.트. 사람들을, 관계를, 매 끼니를 책임지고 돌보는 그가 자신의 역할을 ‘서포트’라고 칭하는 것을 온전히 듣기가 망설여졌다. 가사노동과 돌봄은 주로 여성이 맡고, 생산성이 없는 부차적인 일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서포트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들죠? 그치만, 나는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게 뒤에서 봐주는 거예요. 밥도 해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고, 어머니들이랑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마을분들하고 친목관계라든가, 협력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담당하고 있는거지. 여기와서처럼 밥을 해본 적이 없어요. 무남독녀외딸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지인들이 내가 밥하는 걸 보면 놀라고 그랬다니까. ‘공주’라고 부를 정도로. 근데 내가 밥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됐잖아요, 그럼 신경질이 나야하잖아?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해!’ 이럴 거 같은데 ‘오우~ 나 제법 잘하네?’ 하하하하. ‘내가 이렇게 잘할 수가 있나? 내일은 뭐해주지?’ 생각하는 거지. 나는 소성리 어른들과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소중해요. 내가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훌륭하잖아!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인데.”

 

사람을 돌보고 관계맺는 역할이 ‘부차적(서포트)’이라 여겨지는 불합리함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성리 싸움에서 자신의 몫을 ‘서포트’라고 선언하는 박형선이라는 사람을 더 알고 싶었다.

 

▲ 2월 25일 사드기지로 공사자재를 대량 진입시키기 위해 경찰이 마을을 침탈했다. 경찰에게 들려나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철재 격자를 두고 양쪽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사람들. 사진 왼쪽에 카메라를 응시한 이가 박형선 교무다. (사진 제공: 사드철회상황실)


법복을 입을 때도 벗을 때도 ‘사심없이’ 사는 삶

 

무남독녀외딸로 고생모르고 컸다는 박형선 교무는 어린시절 큰어머니가 교무가 되면서 원불교와 연을 맺었고, 교무가 되고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연이 닿아 어린시절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원불교 교당에서 간사로 근무했다. 즐겁게 생활했지만, 출가를 결심하기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다시 사회에 나왔다. 그러던 중에 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멘토, 오신성 교무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공주이면서 무수리라고 말을 하잖아요. 우리 선생님도 그런 분이거든. 선생님 계신 교당에 처음 갔을 때 유치원에 어린이집도 있고,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그러니까 없는 형편에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매일 거기서 같이 먹고 자고 하는데, 최고의 어른이 우리 선생님이잖아요. 근데 그분이 밥해주고, 뒤치다꺼리 소리없이 다 해주시고, 그러면서 당신 수양은 수양대로 하시는 거야. 그분을 뵈면서 ‘아.. 내가 저런 교무가 되고 싶었구나’ 느꼈죠. 교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권력이잖아요. 선생님은 평범한 일상을 사시다가 법복을 입으면 교무로서 일하고, 그거 벗으면 또 일상적인 일을 하고. 그런 분이었어요. 정말 사심없이.”

 

박형선 교무 역시 법복을 입을 때도, 일복을 입을때도, 일상에서도 ‘사심없이’ 살아가기를 바랐다.

 

“싸우고 나서 캐릭터 완전 변했죠. 하하하. 싸우기 전에는 옷도 이렇게 안입고 다녔거든. 늘 한복을 입고, 일복 자체가 없었어요. 지금은 일복을 계속 입고 다니잖아요. 외형부터 투쟁장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할머니들과 비슷하게 변해가는 거지.”

 

그가 중심이 아닌 ‘서포트’ 역할을 선언하는 것은 ‘사심없이’ 살아가기 위한 매 순간의 결심이자 실천일지도 모른다.

 

▲ 8월, 우산에 사드 반대와 평화의 그림을 그린 소성리 할머니들과 박형선 교무의 모습 (사진 제공: 사드철회상황실)


‘싸움’과 ‘평화’가 따로가 아닌 하나…하루하루 이기고 있어

 

소성리 사람들이 매일 하는 실천 중 하나는 사드기지 앞에 올라 구호를 외치는 ‘소성리 평화행동’이다. 마지막에는 꼭 서로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우리들의 마지막 말은 늘 ‘평화를 빕니다’. 모든 걸 여기다 내려놓고, 풀어내고, 갈때는 평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게 기도를 하는 거죠.”

 

매일 싸우고 그 끝에는 평화를 비는 기도를 한다. 평화를 비는 마음을 시작으로 내일의 싸움을 약속한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차분한 기도, 싸우는 것과 평화를 비는 마음은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매일 그 사이를 오고가는 것이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보여지기가 왔다갔다 하는 거죠, 내 생활은 사실 지속되고 있는 거잖아요. 기도하는 것과 싸우는 것이 둘이 아니라 그냥 나에요. 평화가 뭐냐고? 말로 멋있게 표현할 수가 없어. 내가 우리 스승님(오신성 교무) 만났을 때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면서 교무로서 살고 있는 삶, 또 내가 여기서 어머니들과 연대자들을 만나고 경찰과 부딪히고 있는 삶. 둘 다 일관되게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평화에요.”

 

싸움과 평화가 따로가 아닌 하나이고, 종교인으로서의 삶과 경찰과 부딪히는 삶이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이 평화라는 말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된 것은, 매일매일 행동하는 박형선 교무와 소성리 사람들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드가 여기 있고, 싸우는 사람들이 여기 있고,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가. 사드를 빼낼 때까지. 그러면 끝나지 않은 거죠. 하루하루 이겨낼 수 있는 건 내가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싸우는 일상이 평화가 되는 삶. 경찰과 대치하며 내지르는 악다구니에, 점점 높아져가는 웃음소리에, 저녁 반찬을 위해 절여둔 짠오이에, 기도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에, 사드 기지를 노려보는 눈빛에, 다친 동료가 가여워 내지르는 쉰 목소리에 온통 평화가 담겨있다. 그 삶들이 모여 소성리 싸움은 하루하루 이겨가고 있다. 사드를 빼낼 그날까지, 소성리의 ‘싸우는 평화’가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필자 소개] 하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돈 벌고 일했던 이력 대부분이 비정규, 파견 노동이었다.  함께 쓴 책으로 <회사가 사라졌다> 가 있다. [일다] https://media.naver.com/press/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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