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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 이후의 삶> 디지털 성착취 피해자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젠더폭력 생존자들이 기록하는 <폭력 그 이후의 삶> 연재는 젠더폭력을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피해와 저항과 생존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일다] ildaro.com

 

갑작스런 협박으로 시작된 디지털 성착취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일이었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 나의 나체사진을 소지한 사람에게서 협박이 오기 시작했다. 협박은 밤에 시작되어 다음날 날이 밝을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내가 협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늦은 밤이었지만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지금 누군가 내 나체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걸 가지고 유포시킨다며 협박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냐며…. 경찰은 지금 사이버수사대도 퇴근을 한 상태이고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날이 밝는 대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었고, 가해자의 협박은 계속되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의 사진을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까지 다 뿌려버릴테다. 너는 내 말을 들어야한다.>

 

본인의 말을 들으면 내 사진을 유포하지 않겠다고 한 가해자는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더 자극적인 사진들을 찍으라고 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유포하기 시작한다며 카운트를 셌다. 나는 그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 그 사람 말에 따라 더 자극적인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협박은 자신의 요구에 따라 가학/피학적인 행위를 하는 사진과 영상을 찍는 걸로 멈추지 않았다. 자신과 사귀어야 한다고 했으며, 평생 다른 남자는 만날 수 없게 만들겠다는 걸로도 모자라서, 또 다른 여자의 몰카를 찍어와야 나의 사진이 유포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협박범에게 시달리며 밤을 꼬박 지샜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 그는 자신이 자고 일어나 다시 연락하겠다며 연락을 끊었다. 나 또한 그 뒤 공포에 떨면서 잠을 청했다. 낮쯤 되었을까, 내가 잠에서 깬 뒤 나의 SNS에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온 연락이 가득했다.

 

‘혹시 이거 당신인가요?’

이미 나의 사진은 공유가 되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뿐

 

유포자는 같은 앱의 다른 아이디를 통해서 또 연락을 해왔다. 지금부터 대답하지 않으면 사진 유포를 시작하겠다며, 나에게 다른 것을 또 요구하려 하였다.

 

이미 유포가 된 마당에 또 이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며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정된 하루 일정을 빠르게 끝내고 경찰서로 가 신고를 했다.

 

▲ 나의 피해 사진과 영상은 빠른 속도로 성인 사이트와 남초 사이트에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거래를 했다. 얼마나 더 유포될까 생각하면 그냥 죽고만 싶었다. (이미지: pixabay)


내가 당한 사건의 피해자는 이미 나 말고도 많았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에 속고 당할 수가 있는 건지.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리고 막막했다. 다음날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잠이 한숨도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내 사진을 보고 벌써부터 희롱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또 앞으로 내 사진이 얼마나 유포될까를 생각하면 그냥 죽고만 싶었다. 한 번도 살면서 죽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아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이해가 되었다.

 

나의 사진은 빠른 속도로 성인 사이트와 남초 사이트에 공유가 되고 있었으며, 내 사진과 영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다.

 

나의 고통을 관람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직원이 이 사건의 피해자가 나란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나에게 사직할 것을 요청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저는 피해자인데요...? 라는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바보같이 울며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활기차며,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자신 있게 드러내던 내가 숨기 바빠졌다. 모든 SNS를 비공개로 돌리고 아무 일도 없는 척 했지만 내게 다가오는 모두가 두려워졌다. 지인들이 나에게 혹시 너 무슨 일 있냐며 연락할 때마다 심장이 덜컹했다.

 

‘아, 이 사람도 봤구나. 이 사람도 아는구나.’

 

내 짐작이 틀릴 때도 있었지만 사실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나의 벗은 사진이 공유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피해 사실을 안 친한 동생이 나보고 ‘창피하다’며 연락을 끊고 지내자고 했다. 아는 남자 지인은 나에게 ‘아무리 삭제하려 애를 써도 솔직히 지우기 힘들 거다. 시사 프로그램 못 봤냐, 야동 사이트에서 돌아다니던 본인 영상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그 여자 영상은 그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아직도 돌아다닌다. 너도 그만 포기하고 삭제하려 애쓰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살아라’ 라고 말했다. 피해 회복을 하려 해도, 죽어서도 유포는 끝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말이었다.

 

▲ 나는 죽을 만큼 힘든데 누군가에게는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일러스트 제작: 두두사띠)


이 피해를 겪으며 느꼈던 것은 사람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이다. 나는 죽을 만큼 힘든데 누군가에게는 재밌는 일이고 흥미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삭제할 수 없다, 계속해서 나를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이고 이미 벌어진 이상 완벽히 지워낼 수 없다. 내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마주할때마다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생각을 해봤다. 죽을까..?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살 바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내가 죽으면 내 사진과 영상 삭제 요청은 누가하지.. 가족들이 더 힘들겠다는 고민을 비롯해 끝나지 않는 우울한 고민들이 꼬리를 물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끝나지 않고 범인은 잡힐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에 몇십 개씩 올라오는 나의 사진과 영상에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도 울며 사진을 지우기 위한 노력들을 해봤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하루하루 자살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버티듯 발버둥쳤다.

 

범인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범인을 잡는 것을 도와준다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믿고 인터뷰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저런 자식한테 그렇게 시달렸다니 화도 났고, 그렇게 무섭게 협박하던 사람이 잡혔다는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범인이 잡힌 뒤, 내가 인터뷰한 시사 프로그램이 방송을 했다. 예상을 전혀 빗겨간 내용이었다. 신상이 혹시나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던 나를 안심시킨 PD였지만, 모자이크 처리나 목소리 변조를 신경 썼다고 보기 힘들었다. 지인이 본다면 무조건 나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였다. 심지어 약속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으며, 피해자를 오히려 탓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PD한테 연락해서 이게 뭐냐 했더니, 오히려 내가 본인이 말한 스토리텔링대로 따르지 않아 방송내용이 달라진 거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원래 해당 프로그램은 나에게 범인을 잡기 위해 협조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넣고 싶다며 내 신상을 공개할 것을 원했었다. 하지만 나는 신상이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렸고, 방송이 나가기 전에 이미 범인이 잡혔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빼달라고 요청했었다. 방송 전까지 나를 설득하던 그들은 내가 허락하지 않자, 내 인터뷰 부분을 짧게 짧게 편집해서 넣은 것 같았다.

 

방송 욕심만 내고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처사에 욕이 절로 나왔지만 이미 방송이 나가버린 걸 어쩌겠나. 다시보기에서 내 부분을 빼는 것으로 정리를 하였다. 다음날 피디는 사과와 함께 상품권 20만 원을 보내왔다. 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가? 범죄를 주로 다루는 그 시사 프로그램을 나는 이제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 내가 겪은 디지털 성착취 사건 가해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범인에 대한 형량을 늘려주길 바라며 법정 참석을 결심하고 썼던 호소문 중 일부다.


외국에서도 날라오는 조롱과 협박

 

범죄 후 가장 많이 겪은 것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조롱과 협박이다.

 

처음에는 SNS 등을 통해 나의 피해 사진을 보내며 여러 가지로 협박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해주는 기관에 전화해 벌벌 떨며 너무 무섭다, 죽고 싶다며 엉엉 울기도 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에 또 내 사진을 뿌릴지, 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진 않을지 걱정하며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지금도 협박 메시지나 조롱은 자주 온다. 하지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도와주는 단체와 몇 안 되는 좋은 언론 덕에, 현재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협박이나 조롱은 대놓고 오지 않는다. 외국, 주로 중국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이런 협박과 조롱의 SNS 메시지는 이제는 무시하고 넘어간다. 신고도 하지 않는다. 외국 유저들은 어차피 경찰이 잡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협박, 조롱 쪽지들을 하나하나 캡쳐해 다 모아서 경찰서에 갔지만, 결론은 시간과 감정 낭비였다.

 

피해 이후의 내 삶에서, 초기와 현재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포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시간이 약이라고, 협박이 오면 다음 날 밤에 나를 검색해 본다. 내 사진이 올라와 있으면 신고를 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사진이 지워질 때도 있고, 한 달이 넘게 걸릴 때도 있고…. 근데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보았겠지, 이런 걸 찾아보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그런 사람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주변 사람들이 알까 봐 매번 두렵다.

 

알게 된 사람들이 나에게 보인 놀라움, 동정, 조롱, 위로를 이 사람에게는 받고 싶지 않은데… 얘는 혹시 봤을까? 그래서 나한테 요즘 연락이 없는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이런 일을 당한 내가 감히…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잘 떨쳐지지 않는다.

 

전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친구가 한 말이 맞다. ‘주홍글씨’이다. 알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해도 또 사진이 돌고 돌고, 지겹도록 끝나지 않는다. 사실 끝이 날 수 있는 걸까 의심이 매우 든다.

 

범인이 잡혀도 끝나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감정적으로는 포기를 하고 되는대로 살되, 더 여기서 나빠지지 않도록, 나의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자리를 잃어야 했지만, 이런 피해와 상관없는 나의 다른 재능을 이용해 일을 늘려 바쁘게 살면서, 나 스스로가 일을 통해 이 사건을 잊으려 계속해서 노력한다.

 

나의 이런 피해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만 만나며 일에 치이도록 바쁘게 지내는 일상에서, 다시 글을 쓰며 피해를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 이후의 삶은, 피해자가 외롭게 오롯이 감당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랄정도로, 평소에 내가 겪은 피해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며 밝은 모습으로 살지만, 속은 상처투성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범인이 잡혀도 절대 끝나지 않는다. 내가 겪은 디지털 성범죄는 범인이 잡혀도 잠재적 범죄자 투성이며, 인터넷 상에서 도는 피해 사진과 영상은 한국에서 끝나지 않고 광활한 인터넷을 통해 외국으로도 뻗어나간다. 범인이 잡혀도 끝나지 않는 나의 사건에 대한 세상의 조롱으로부터 언젠가 구원받길 바란다.

 

왜 이렇게 성폭력은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자가 멍청이가 되기 쉬운 것일까? 디지털 성폭력에 있어서는 나는 절대 완전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나의 피해사실은 내 마음속 깊숙이 숨겨두고 겉으로라도 조용히 일반인으로 평범하게 살아나갈수 있길, 제발 좀 나에게 이 피해 사실을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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