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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온유주 인터뷰(하)

 

대만 출신으로,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는 소설가 온유주(温又柔) 씨는 2009년 데뷔작 『호거호래가』(好去好来歌)부터 꾸준히 대만과 일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아이들』을 비롯해, 온유주 작가의 작품들은 ‘일본인’이란 무엇이며, ‘일본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일본 사회에 던지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인터뷰: 가시와라 토키코]

 

▲ 대만 출신으로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도쿄에 이주하여 살아오고 있는 소설가 온유주. 국가와 국가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여성들을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국가란 무엇인가, 모국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외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만난 문학과 작가들

 

“일본어는 일본인만의 것이 아니”라고 저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대학원 시절 스승인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 선생님이었습니다. 미국 국적으로, 유소년기에 대만과 홍콩에서도 살았던 리비 선생님은 “일본어는 내 것이기도 하고 너의 것이기도 해. 거리낄 필요 없어”라고 말했죠.

 

그분의 영향으로 “언어의 지팡이를 쥘 수 없어”라는 탁월한 표현으로 재일조선인의 갈등을 묘사했던 이양지(李良枝) 작가의 작품이 저에게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글을 이어서 쓸 생각으로 쓴 것이 제 데뷔작 『호거호래가』에요. 두 국가 사이에서 사는 여자의 이야기죠.

 

일본어는 일본인만의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 것이 리비 선생님이었다면, 일본 문학이 남성만의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 것은 일본근대문학 연구자 하세가와 케이(長谷川啓) 선생님입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사는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져왔다. 여성의 관점으로 다시 읽자”는 것이 하세가와 선생님 연구실의 주제였죠.

 

그곳에서도 이양지 작가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당시에 “이양지 작가는 일관되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했다”며 조금은 천진한 주장을 펼치는 남자 선배에게 “그건 너무 남성적인 발상”이라며 들이받은 적도 있어요.(웃음). ‘조선인’이라는 점은 물론 ‘여성’이라는 점 또한 이양지 작가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교차지점에서의 자신의 현재상을 엄격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이양지 작가가 수많은 수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일본인에게 맞추는 것을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저의 의무처럼 생각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또한 일본 사회에 사는 ‘여성’으로서, ‘일본인’과 ‘남성’에 대해 그 나름대로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소수자인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스승들의 도움으로, 내 인생에 이정표가 되어준 문학작품들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소설가 온유주 씨는 비일본인,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비방을 당하는 일도 많다. “공격하는 사람은 대부분 ‘순수한 일본인 남성’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본인’ ‘여성’조차 무시하니, 저 같이 ‘분별없는’ 외국인 여성은 너무 싫겠죠.”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타자’의 삶에 마음을 이입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힘

 

『캐러멜공장에서』와 『다홍』으로 유명한 사타 이네코(佐多稲子) 작가의 작품도 읽었습니다. 가장 먼저 읽은 것은 『나무 그림자』(樹影)였는데요. 독특한 형식으로 원폭 피해를 고발하는 명작이지만, 저에게는 화교 여성인 주인공이 조국(중국)의 정치에 우롱당하고 국가와 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모색하는 모습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외국인등록증이 되는 종잇조각”이 실제로 자신의 몸을 옭아매듯 붙어 있는 것처럼 갑갑함을 느끼는 장면 등은 저자가 화교라는 여성의 삶을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 상상력과 대담함에 감동을 받았고 굉장한 작가의 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화교는 사타 이네코 작가에게는 소위 ‘타자’일 텐데, 그럼에도 야나기 케이코(『나무 그림자』의 주인공)의 처지를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씁니다. 그들은 자신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이웃으로서, 그 처지에 마음을 이입한 것이죠. 그런 자세를 저도 닮고 싶습니다.

 

저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세대의 작가들이 남겨준 작품에 고무될 때마다 저 역시 10년 후, 50년 후의 사람들을 향해 씨를 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어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이어준다는 생각이야말로 저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생명줄인지도 모릅니다.

 

국가의 경계에 놓인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고안한다

 

저는 일본에서 자란 대만인입니다. 유년기부터 일상적으로 중국어, 대만어, 일본어 등 언어적인 ‘경계’가 지어지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랐습니다. 소설가로서 그런 저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대만어나 중국어를 포함한 제 방식의 일본어를 고안하곤 합니다.

 

언제가는 소위 ‘보통’ 일본인만 나오는 소설을 쓰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일본인이라고도 대만인이라고도 잘라 말할 수 없는 위치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국적이나 성별 등의 ‘속성’을 절대시하는 태도를 스스로에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비일본인’이라고 해서, 또 ‘여성’이라고 해서 ‘일본인’보다/‘남성’보다 항상 어떻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점점 균질화된 세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단순화에 저항하기 위해서 문학과 예술이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온유주 소설가의 작품들. 대만과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이 주인공인 『복이 드는 집』,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작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어에서 자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가운데 아이들』, 오다 사쿠노스케상 수상작 『루로한의 지저귐』, 작가 기무라 유스케와의 왕복 서간 『나와 당신 사이-지금,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


[소설가 온유주 대표작 소개]

 

*『복이 드는 집』(来福の家, 하쿠에이샤, 2016) 2009년 스바루문학상 가작 수상작인 「호거호래가」와 표제작이 수록된 책. 단행본은 슈에이샤에서 2011년에 출간됐다. 대만과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이 주인공. “저에게는 쌍둥이 자매 같은 소설”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어에서 자람』(台湾生まれ 日本語育ち, 하쿠에이샤, 2018년) 2016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작. 201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하쿠에이U북스로의 출간에 맞춰 일부 증보함. 일본어, 대만어, 중국어와 깊숙하게 마주하며 대만인들의 ‘국어’를 고찰한 에세이.

 

*『가운데 아이들』(真ん中の子どもたち, 슈에이샤, 2017) 2017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대만과 중국 혈통인 세 남녀가 중국 상하이의 어학원에서 만난다. ‘모국어’란, ‘국경’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정체성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을 그렸다.

 

*『루로한의 지저귐』(魯肉飯のさえずり, 추오코론신샤, 2020) 오다 사쿠노스케상 수상작. 대만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모카는 구직에 실패하고 ‘이상형’의 남성과 결혼하는데… 요구 당하는 ‘평범함’과 ‘모국어’가 다른 엄마와 딸의 갈등에 깊숙이 발을 들인다.

 

*『나와 당신 사이-지금,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私とあなたのあいだ いま、この国で生きるということ, 아카이시쇼텐, 2020) 작가 기무라 유스케와의 왕복 서간. 나라와 민족, 여성에 대한 차별, 가질 수 없는 자와 가지지 않는 자 등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는 두 사람. 자아내는 말이 날카롭고 아름답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구리하라 준코 기자가 정리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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