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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에 ‘식민지 여성’의 자리가 있을까?(2)

 

국제법 문서들을 대할 때마다,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을 겹쳐 읽는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말과 몸을 다시금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인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천황’의 유죄가 선고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국제법의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 일본에서 이뤄진 김학순의 증언 영상 최초 공개. 1991년 12월 9일 도쿄 YMCA에서 열린 <김학순상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金学順さんの話を聞く集い) 주최. (영상: KBS <시사직격- ‘위안부’ 공개 증언 30년 김학순, 다시 우리 앞에 서다>, 2021년 8월 13일 방송 캡처)


그 중에서도 1998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제출된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의 최종보고서인 <맥두걸 보고서> 4장은, 유독 위안부 생존자 한명 한명의 증언을 상기하면서 읽게 된다. 이 장에 ‘개인 추궁의 책임’이란 소제목이 붙어 있듯이, ‘강간수용소(위안소)’ 범죄를 개개인이 마주한 책임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령책임 뿐 아니라 복종책임을 묻는다는 것

 

<맥두걸 보고서>의 다른 부분과 비교해 보면 4장에는 특히 ‘역사’가 강조되어 있다. 역사는 아카이브를 구성할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왔지만, 위안부 생존자들은 또 다른 존재들의 소문자 역사가 있음을 증명하며, <맥두걸 보고서> 안에서 웅성거린다. 그 웅성거림은 강간 수용소를 묵인했던 자들에게 ‘책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국제법의 언어적 한계 속에서 이 물음을 표현해 보자면 ‘명령책임’과 ‘복종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4장 첫 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역사는 넓은 범위의 행위자들이 무력충돌 중의 국제범죄 수행을 돕고 모든 수준에서 책임 있는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이 국제범죄의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74항). 이어서 음모, 선동, 청부, 방조, 교사와 함께, 하급자의 명령복종과 상급자의 명령책임까지 전쟁범죄로 명시한다.

 

복종책임에 대해서는 “범인이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행위했다는 것은 형벌 감경에 있어서 고려될 수 있을지언정 범죄에 대한 항변(defense)이 될 수 없다”(75항)고 못 박는다. 명령책임에 대해서도 명령체계가 확실히 갖춰져 있었는가의 유무와 상관없이 “명령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밝힌다.(77항)

 

이처럼 4장에서는 말단 관리나 사병부터 최고위 관료나 장교까지 골고루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틀을 마련한다. 조시현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강간을 포함한 젠더기반 범죄를 교사, 방조, 고문한 죄로 안토 프룬디지야에게 유죄 판결을 한 것, 르완다 시청건물에서 투치 여성에게 조직적 강간을 방관한 아카예수 시장을 처벌한 것 등을 예로 들어 이 관점을 구체화하고 있다.

 

강간 수용소를 알았던 그 누구도 명령책임과 복종책임에 대한 물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4장은 실로 무서운 질문을 담고 있다. 그리고 강간 수용소가 식민지배 하에서 운영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무서운 질문은 구조적 고통의 핵심과 마주하게 한다. 식민지배 하에서 명령책임과 복종책임이 얼마나 복잡한 위치에서 발생했는가를, 어떻게 하면 책임 당사자에게 면제부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수면 위로 드러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명령책임을 지닌 고위관리에 대한 형사처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복종책임의 경우, 식민지배 하에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한다.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군인, 군속, 노동자가 되었던 피식민지인들은 식민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감시 하에 서양 포로를 관리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이나, 학살 명령 등을 통역했던 대만인 통역병이 전형적이다. 이 구조적 폭력이 지닌 강제성의 차이를 명확히 하면서도, 피식민 남성 중 일부도 강간 수용소를 ‘이용’했다는 점을 마주할 수 있는 ‘책임’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또한 인도네시아로 동원되었던 위안부 중에는 『유수명부』에 “임시간호부, 간호부, 용인”으로 기입되어 있어, 기록상으로는 ‘위안부 피해자’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온 몸을 전유당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군 문서에서는 마치 일본군의 ‘용역’처럼 보이는(마치 가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듯이 보이는), 이 억울한 기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처럼 ‘개인책임’이라고 할 때에도 젠더와 식민지배에 대한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가에 따라 그 ‘개인’에 대한 규정과 가해/피해의 법적 근거와 적용이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남방 제5육군병원부대 유수명부: 위안부를 ‘임시 간호부, 간호부, 용인’으로 둔갑시켜 기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수명부. (출처: 한혜인, 「일본군 귀환기록과 『유수명부』 속 ‘위안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편,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19.8, 162쪽)


국제법의 적용이 젠더기반 폭력을 처벌함으로써 ‘끝난 일’이 되지 않으려면, 범죄가 행해진 구체적 상황이 무엇인지를 촘촘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때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이 중요해진다. 그/녀/들의 증언은, 지배와 (성)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법적 기준이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서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법정 밖의 ‘처절한 정원’: 가해와 피해와 속죄

 

맥두걸이 든 사례 중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에 대한 유죄 판결을 보자.(83항) 그는 프랑스 비시(Vichy) 정부의 고위관리였으며, 유태인 수천 명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사무를 담당한 죄로 1998년에 10년형과 벌금형을 받는다.(김유석, 「해외논쟁:프랑스, 1천5백여명 유대인 학살한 최고령 파퐁 석방 논란」, 『교수신문』, 2002년 10월 12일)

 

사진2: 모리스 파퐁 (Maurice Papon). 프랑스의 나치 괴뢰 정권 부역자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죄로 1999년 10월 22일에 투옥되었다. 이는 처음 의혹이 나온 지 18년만이자 고발당한 지 16년만이었다. 투옥되기 전까지 그는 전후 드골 정부의 고위 관료로 승승장구했으며, 체포 후에도 자신은 단지 공무원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출처: 「나치부역자 모리스 파퐁의 곡예」, 『한국일보』, 2019년 10월 22일)

 

이 재판을 다룬 미셸 깽(Michel Quint)의 소설 『처절한 정원』(Effroyables Jardins)은 모리스 파퐁에 대한 재판이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끝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골자를 지탱하는 것은 처음과 끝에 나오는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지만,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왜 주인공의 아버지가 평생 어릿광대짓을 했는가를 ‘증언’하는 순간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모리스 파퐁의 범죄행위에 가담했느냐고? 아니다. 명령책임과 복종책임의 당사자였냐고?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아버지는 프랑스 나치 정권에 대항했던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나치 정권의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삼촌은 아버지가 평생 어릿광대짓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증언’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듣는 그 ‘증언’의 순간은 전쟁과 파시즘의 참혹함에 관통 당한 아버지와 삼촌의 생애 전체를 끌어안으며 빛난다. “아직도 삼촌이 말하는 모습과 문장들이 생생하게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삼촌의 이야기는 자신이 겪었던 잔인한 순간들의 그림자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의 문을 나에게 열어준 것이다. 삼촌은 내면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던 전부를, 잔인한 발자국들로 짓밟혀 피범벅이 된 처절한 정원을 나에게 내어 주었다. 삼촌이 전해준 그 생생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미셸깽)

 

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은 비시 정권 당시 레지스탕스로 아버지와 삼촌이 철도역 변압기를 폭파했고, 그 일로 다른 누군가가 아버지와 삼촌 대신 죽어야 했음을 알게 된다. 저항 활동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가해와,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생 어릿광대가 되어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품위 있는 방법으로 인류가 진 빚을 갚으며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는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의도치 않았지만, 전쟁과 식민지배라는 ‘처절한 정원’에서 만나 가해와 피해를 주고받게 된 자들이, 이 처절한 관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법적 단죄의 틀을 넘어 묘사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효없는 질문을 남긴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전쟁과 파시즘과 식민지배와 가부장제와 젠더기반 폭력에 연루된 ‘우리’는, ‘책임’에 대한 물음을 현재 과연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을까?

 

▲ 미셸 깽 저, 이인숙 역, 『처절한 정원』, 문학세계사, 2018 (리커버 에디션) 표지와 프랑스 에디션 표지.


소설 마지막에서는 아버지의 어릿광대짓을 한없이 창피해하던 아들이 다시금 어릿광대가 되어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빛나는 권위의 상징인 법정이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줄 것인지 보려고 합니다. 피고의 이름이 뭐냐고요? 마치 갑자기 들려온 메아리처럼, 또는 갑자기 얻어맞은 따귀처럼 그의 이름은 거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내일이 되면 그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가 앗아간 생명들의 이름만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습니다.”(미셸 깽)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삼촌과 아들의 이야기이다. 위안부의 증언은 소녀에서 시작하여 할머니로 끝날 뿐, 사회가 젠더기반 폭력에 부여한 부끄러움과 수치로 인해 할머니에서 어머니와 고모와 딸의 이야기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국제법에 젠더를 기입하는 것은, 위안부 생존자들 각 개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로만 쉬쉬거리며 그녀들의 딸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담은 정조대처럼 계승되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수치라는 세상의 낙인을 뚫고 증언한 생존자들의 힘과 그녀들을 감싸고 있었던 ‘여성들’ 사이의 연결을 담은 이야기로서 말이다.

 

위안부 생존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김숨의 소설 『한명』(현대문학, 2016)의 각주가 서지사항이 아니라 증언자들의 이름이라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 이름들은 위안소에서 불려 졌던 이름(일본식 가명)과 다르며, 그녀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위안부’라는 집단명과도 다르다. 생존자이자 증언자임을 당당히 새기고 있는 그 이름들은, 성폭력과 성노예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녀/들의 삶 전체로 들어가는 문이자, 국제법을 변형시켜 온 힘이다.

 

국제법과 위안부의 증언을 겹쳐 읽기

 

8월 13일은 김학순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93년에 나온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들』의 「해설」은 초기 위안부 증언이 역사적 실증자료를 대체할 법적 ‘증거’가 되어야 했던 정황을 보여준다. 위안부의 피해 사실을 증명 하려고 해도, 일본과 미국에서 발굴된 ‘극비’ 문서 일부가 있을 뿐이고,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일본군과 정부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증언-해설/15쪽), 생애사적으로 증언에 접근할 때조차도 법적 처벌의 증거에 적합해야 했다.

 

증언 속 사실이 아닌 ‘환상’, 범죄 입증에 불필요한 ‘사족’, 트라우마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오류’는 이야기될 수 있는 공통장을 갖지 못했다. 윤순만의 증언에서 자살하려는 그녀를 지켜준 꺼먹소의 등장(『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4: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237쪽. 이하 ‘증언:권수-증언자/쪽’으로 표기), 송신도의 증언에서 갈매기나 개에게 마음을 붙이는 모습(『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248쪽), 김복동의 증언에서 “아주 노오픈 사람”인 “별이 시(세) 개”나 단 요시모토가 그녀를 “이쁘게 봤”고, 그래서 “외로운데 사랑해 주니께 아주 정이 좀 갔지, 나도”라고 말하는 장면들(증언:4권-김복동/243-245쪽)이 그렇다.

 

김복동의 증언을 정리한 김수아는, 처음에는 자신이 사실 확인에 집착하고 있어서, 증언의 여러 정황에서 처참한 위안부 생활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요시모토와의 기억을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이야기하거나, “위안소에 있었던 것조차 부인”하거나, 군인은 세 명만 접촉했다고 하는 것에 당황했다고 한다.(증언:4권-김수아/258-259쪽) 그러나 점차 김복동이 남에게는 “스스로 용인이 되는 것만”을 제한하여 말했으며, 그것을 벗어난 면담자의 질문에 “무척 힘들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쓴다.

 

김학순의 증언에는 일본군이 토벌대로 나간 사이 ‘성욕’을 채우러 온 조선인 은전장수에게 애원하여 도망치게 된 경위가 나타나 있다.(증언:1권-김학순/40-41쪽) 이 장면은 위안부로 가기 전에도 위안소에서도 도망 나온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끊임없이 젠더기반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난민 여성들이 본국에서도, 이동 중에도, 정착 후에도 겪는 젠더기반 폭력과도 겹쳐진다.

 

그러나 김학순이 증언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에 원폭 피해자 할머니와의 만남과 공감이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증언:1권-김학순/44쪽) 김학순의 증언 이후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은 확산되기 시작했고, 위안부 생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결속했고, 2000년 ‘여성법정’으로 이어졌으며, 현재까지도 젠더기반 폭력에 노출된 곳곳의 여성들을 접속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 <1993년 UN 인권위원회 인권과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회복의 권리에 관한 연구>(반 보벤 보고서)는 아카이브814에서 원문과 번역문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archive814.or.kr/Archives/Type/view/13674


국제법과 증언을 겹쳐 읽는 것은 무엇을 가능하게 할까? 자코토(조시현) 선생님을 통해 ‘배상, 보상’의 폭넓은 의미를 생각하게 된 인상적인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1993년 제출된 반 보벤의 보고서와 1996년에 제출된 장 주아네 보고서를 기반으로 ‘불처벌에 대한 대응과 피해자 권리’라는 측면을 살펴보았다. 특히 반 보벤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의 형식과 형태를 재해석했는데, ‘비화폐적 배상’을 논하는 15항의 “만족과 재발 방지”(Satisfaction and guarantees of non-repetition)의 함의는 놀라웠다.

 

피해자의 마음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뭘까? 만족과 재발 방지란 금전적 배상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부분, 즉 사회적·도덕적 복지와 정의를 판결하고 평화를 향한 대의를 공표하는 끝없는 과정을 의미한다. 특히 <반 보벤 보고서> 15항의 (b) 항목인 “Verification of the facts and full and public disclosure of the truth”(사실 확인 및 진실의 전면적 공개)에서는 위안부 범죄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을 공적으로 게시함으로써 진실로 만드는 행위’를 요청하고 있다.

 

증언을 진실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법의 언어로 증언을 선별하여 범죄자를 처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명령책임과 복종책임과 같은 개인에 대한 추궁은,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를 드높고 깊게 세운다. 이는 ‘위안부’에 부여된 낙인과 부끄러움의 정동을 넘어, ‘사실’을 공통장에 공표하고 ‘진실’로 만드는 것이자, 나아가 ‘감정적이고 사적으로 보이는 진실’들을 ‘공통의 진실’로 만드는 일이다. 국제법과 증언을 겹쳐 읽는 것은 이러한 시효 없는 공통장의 구축을 향해 있다. (3편에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가와다 후미코 편저, 안해룡외 1명 역,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바다, 2016년, 248쪽

-미셸 깽 저, 이인숙 역, 『처절한 정원』, 문학세계사, 2002

-조시현, 「무력분쟁하의 여성폭력에 대한 국제인권법」, 『전쟁과여성인권 콜로키움 6강』 강의문, 2011.6.17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한국위원회증언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4: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2001년

-한혜인, 「일본군 귀환기록과 『유수명부』 속 ‘위안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편,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19.8

 

[필자 소개] 신지영.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교수. 1945년 전후 동아시아 유민의 이동과 코뮌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난민·장애·동물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역사 속 동아시아 마이너리티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연구 및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소명, 2012), 『마이너리티 코뮌』(갈무리, 2016), 『동아시아 속 전후일본(東アジアの中の戦後日本)』(臨川書店, 2018, 공저), 『난민, 난민화되는 삶』(갈무리, 2020, 공저), Pandemic Solidarity(Pluto Press, 2020, 공저) 등이 있다.

 

일다의 책 『나의 살던 북한은』

 

나의 살던 북한은

북한 출신 여성이 들려주는북한의 음식과 술, 대중문화, 가정과 양육, 노동과 일상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만약에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만나서 생활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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