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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파업과 성희롱 집단소송>(下) 사라진 230명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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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는 26일 롯데호텔 여직원 40명이 “회사 임직원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며 회사와 임직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 19명에게 모두 29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하고, 원고 21명에 대해선 청구를 기각했다.> (국민일보, 「직장性희롱 회사도 일부 책임" 롯데호텔 여직원 19명에 2900만원 손배판결」, 2002년 11월 26일)

 

법원은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있어 회사의 관리 책임과 가해자들의 범법을 (일부이지만) 인정했다. 당시로선 고무적인 일이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호텔롯데 성희롱 회사 배상책임 판결을 환영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이 판결이 “직장 내 성희롱 추방 계기 되길” 바라며 “회사 책임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2002년 5월 29일, 당시 롯데호텔 직장내 성희롱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알린 매일노동뉴스 기사의 일부


그런데 판결문에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법정 투쟁을 시작할 때는 소송인이 270명을 넘었다.(관련 기사 中편 참고 https://ildaro.com/9131하지만 2년 후인 2002년에 나온 판결은 40명의 원고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 수가 230명이나 차이가 난다.

 

판결문에서 사라진 230명은 어디로 갔을까.

 

복귀 이후,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은 일터

 

2000년 8월 22일,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74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일터로 돌아간다. 6월 29일 강제진압을 당한 이후에도 명동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한 달 반을 더 싸운 것이다. 임금 10% 인상, 단체협약에 노조 활동 탄압(일반중재) 조항 삭제, 입사 3년이 지난 계약직 직원 정규직 전환 등이 파업의 결실이었다.

 

파업을 이유로 회사가 해고한 이들도 대다수 복직된다. 다만 위원장을 포함한 노조 집행부 5명은 복직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나긴 파업을 겪은 노조는 지도부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해고된 계약직 직원들은 지켜냈다. 파업 참가를 이유로 회사는 130명의 계약직 직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지만, 노조는 협상을 통해 이들을 모두 복직시켰다. 이후 파업 참가 여부와 관계 없이 3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노사는 파업 관련 고소고발을 철회할 것도 약속한다. 그런데 노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철회되지 않은 소송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성희롱 대책위원회가 제기한 집단소송이다.

 

“보통은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고소고발한 거를 노사가 클리어하게 취하하고 들어오잖아요. 근데 성희롱 문제는 그렇게 맞바꿔 먹으면 안 된다 해서. 취하를 안 하고 들어온 거예요.”(김금주 당시 롯데호텔노조 조합원, 현 롯데면세점노조 위원장)

 

▲ 당시 롯데호텔 파업에 참여한 김금주 씨는 현재 롯데면세점에서 일하고 있으며, 롯데면세점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교섭 테이블에서 협상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노조 안팎에서 나왔다. 한편으론 우리가 이 정도 ‘무기’는 들고 복귀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 덕에 소송은 취하되지 않아, 2년 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기업의 책임을 명시한 판결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판결이 나기까지였다. 일터로 복귀한 여성들은 자신이 고소한 상사와 한 부서에서 일해야 했다. 호텔은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피해자를 분리할 생각이 없었다. 출근은 매일 해야 했는데, 판결은 수년 후에 나온다.

 

“파업 직후라, 회사가 탄압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피해자들도 분리 조치가 안 된 거고. 회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인사고과잖아요. 문제 제기한 여성 직원들은 진급 안 시키고. 이런 게 눈에 보이는 거죠. 직원들이 대책위에 소송을 취하하러 오기 시작했어요. 아니면 혼자 몰래 취하를 하거나.”

 

사무실 내부에서 은밀히 일어나는 불이익과 눈총을 견디지 못했다. 성희롱 문제에 입 다문 동기가 자신보다 높은 고과를 받고 승진하는 일을 봐야 했다. 박탈감이 컸다. 그렇게 230명은 소송을 취하한다. 이 중 적지 않은 수가 직장을 떠났다.

 

성희롱을 당해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옛날 일이라 치부할 것도 없다. 2016년, 서울여성노동자회 실태조사 결과는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을 말해준다. 일터에서 성희롱을 겪은 여성 10명 중 7명이 퇴사한다고 했다. 심지어 피해자 본인이 폭언이나 파면, 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당한 비율도 57%나 된다.

 



▲ 2016년 한국여성노동자회 설문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56%가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출처 한국여성노동자회)


최근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문제가 최종 판결을 받았다. 8년만에 나온 결과였다. 성희롱은 물론, 신고 후 불이익 조치에 따른 사업주 처벌(벌금 2천만 원)을 이끈 의미 있는 법정 투쟁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당사자는 입장문을 통해 승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불안을 전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민사소송에서는 우리 측 주장이 모두 인용되고 형사소송도 회사에 최고 벌금형으로 종료되어 속시원하지 않냐”며 축하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회사의 괴롭힘에서 오히려 저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 되었던 소송이 종료된 것이 저는 두렵기만 합니다. 회사가 또 어떻게 저를 괴롭히기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8년 만의 최종 판결 공동논평 중에서

 

그럼에도 싸운 까닭은 “사내 성희롱을 신고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있었다. 이 마음을 지키고, 다가올 불안을 잠재울 방안은 ‘함께’일 수밖에 없다. 피해 당사자를 ‘홀로’ 두어서는 안 된다. 2018년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진 이후, 반복적으로 깨닫는 교훈이다.

 



▲ 2013년 6월에 시작한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조치’와 ‘성희롱 피해’ 관련 소송이 8년만인 올해 6월에 최종 판결을 받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카드뉴스)


롯데호텔 대책위 활동에서 아쉽게 평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복귀 후 대응책을 촘촘하게 짜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대책위 활동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들여와서 소송 과정이나 조합원들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을 계속적으로 모니터링했어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고. 조합원들이 피해 사례를 직접 신고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대책위를 통해 마련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점이 안타깝죠.”(임혜숙 당시 금속연맹노조 여성국장)

 

노조가 아무 대책 없이 노사합의를 하고 복귀했던 것은 아니었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조치, 가해자에 대한 징계위원회 회부 등 처벌 규정’ 등을 명시한 별첨 문서가 남겨졌다. 하지만 이를 이행할 ‘현장’의 힘이 부족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파업을 주도한 지도부를 잃었다. 이 어려운 처지는 노조 안에서 ‘여성 문제’인‘ 성희롱 대책위의 활동을 후순위로 미루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집단적 대응이 아니었다면,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을 테다. 마찬가지다. 집단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소송 이후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그런 경우 개인의 선택지에 ‘소송 취하’가 놓인다.

 



▲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조치’에 관한 한국여성민우회 카드뉴스 중


집단소송을 통해 얻은 것은 ‘조심할 필요’

 

그럼에도 분명, 롯데호텔에서 성희롱은 ‘문제’ 취급받았다. 롯데호텔은 더는 여성(노동자)들을 지나칠 수 없게 됐다. 불이익과 탄압을 감수하고 여성들이 사측에게서 얻어낸 것은 ‘조심할 필요’였다. 위계의 세상엔 “말 한마디도 더 조심하는 사람과 조심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영)이 있다. 파업과 집단소송은 롯데호텔에서 ‘조심할 필요 없는 사람들’의 수를 크게 줄였다.

 

집단소송에 따른 불이익을 견디지 못하고 여성들이 직장을 떠났지만, 동시에 롯데호텔은 여성이 오래 근무하기에 더 나아진 직장이 됐다. 교섭에 들어가지 않아 임금 불이익을 받아온 면세점 여성 직원들의 임금 인상이 있었고, 여성들의 팀장 진급 시기도 예전보다 빨라졌다. 출산과 육아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그녀’들이 일터를 바꾼 것이다.

 

파업과 대책위 활동은 이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세상에 ‘보여진다’는 것은 권리 투쟁의 첫 선언이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투명인간을 사용하여 얻어지는 이윤과 편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그렇게 싸움은 시작된다.

 

전투경찰들 앞에서 “우리가 구호를 외쳤잖아요”

 

2000년 롯데호텔 여성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성희롱 대책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끊임없이 자신들을 보지 않으려 하는 세상에 대고 외쳤다.

 

이들의 외침을 들으려 했지만, 나 또한 놓치고 지나친 장면이 있어 가져온다. 전투 경찰이 파업 대오를 해산하겠다며 새벽에 쳐들어온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말했다.(관련 기사 上편 참고 https://ildaro.com/9123)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그이는 말했다.

“걔네들 들어와서 너무 무서웠어요, 그때는. 그랬는데 진압을 당하고 저희도 이제 걸어서 내려와야 하잖아요. 한 줄씩. 솔개부대가 중간중간 서 있는 계단을 36층부터 걸어 내려오는데. ‘야 이거 뭐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이렇게 당해야 하지?’ 그래서 우리가 36층을 내려오면서 구호를 외쳤잖아요.”(김금주)

 

분한 마음에 무장한 검은 장정들이 줄지어 선 계단을 내려오며 팔을 치켜세우고 구호를 외쳤다. 유치장에 들어가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런 밥 못 먹겠다며 ‘짜장면을 시켜달라’ 했단다. 우린 잘못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고, 이런 대접받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유치장에서 짜장면 비벼 먹고, 씻고, 조사를 받고, 하룻밤을 잤다.

 

물론 무서웠다. 그 순간 무섭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군가는 울고, 소리를 지르고, 구호를 외치고, 항의하고. 뭐든 했다. 파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당시 롯데호텔 파업에 참가했던 최미숙(좌) 씨와 김금주(우) 씨. 현재는 롯데면세점 소속으로, 노조에서 각각 회계감사와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생각했다. 앞에 있는 이가 남성이었다면, 내가 무서웠겠다는 말을 이토록 쉽게 내뱉었을지. 롯데호텔 파업을 조사하며 강제진압 이야기가 담긴 글을 숱하게 읽었지만, 팔뚝에 힘을 주고 구호를 외치며 계단을 한 발 한 발 밟아 내려오는 여성들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녀’들의 이런 모습을 전해주지 않았다.

 

세상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보고 싶은 것과 다른 모습은 지우거나 치우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이리 말했다. “여성을 보려는 의식적 노력이 없으면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지나치기 마련”이라고. 그 ‘무의식’은 선별과 은폐를 동반한 굉장히 ‘의식적’ 행위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렇게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여성들을 지나쳤다.

 

여기는 성희롱이 발 못 붙이는 사업장이야

 

성희롱 대책위 활동에 관한 기억을 듣기 위해 찾아갔을 때, 김금주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얼마나 의미가 큰 투쟁이었는지 직원들한테 알리는 작업을 훨씬 더 공을 들여서 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요. 아쉽죠. 그랬어야 ‘여기는 성희롱이 발 못 붙이는 사업장이야’ 라고 다음에 들어올 여성 사원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20년이 지난 후에도, 롯데호텔 성희롱 대책위 활동을 글로 남기는 이유다. <끝>

 

*참고 및 인용 자료

-최윤정, 『산업재해로서의 직장 내 성희롱』, 푸른사상, 2019

-이라영, 『폭력의 진부함』, 갈무리, 2020

-민주노총, 『롯데호텔 파업 백서』, 2000

-정지현, <롯데호텔 여성노동자들의 오래된 미래> 오늘보다 38호, 2018.3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싸우고 견뎌내고 살아가는 일을 기록한다.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등을 썼고 [회사가 사라졌다』(공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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